[한강로에서] 뿔 없는 코뿔소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4 10:59
  • 호수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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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참여정부 때도 5년 내내 경제 파탄, 경제 위기로 언론들이 도배를 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이런 지형에서 오는 어려움을 각오하고 일을 해야 하는 숙명이 있다.” 김 장관의 이 발언에는 언론의 비판 공세는 역대 ‘민주당 정부’가 떠안아야 했고, 또 떠안아야 하는 숙명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김 장관이 말한 ‘비판적 지형’의 본질을 이루는 숙명이 문재인 정권에는 분명히 있다. 그것은 추운 겨울 광장을 밝혔던 촛불들의 바람이자,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며 적폐청산을 바랐던 민심의 지향점이기도 한 ‘도덕성’이라는 숙명이다. 오래 쌓인 국가적 폐단들을 찾아 도려내고 새로운 살을 입히려면 이전 정권보다 투철한 도덕성을 갖춰야 함이 마땅하다. 스스로 도덕적이지 못하면 적폐청산이 아무리 큰 성과를 낸들 제대로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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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도덕성을 앞세워 개혁의 동력을 든든히 채워야 할 집권 3년 차의 문재인 정부가 지금 크나큰 시험대에 올라 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소속이었던 김태우 수사관의 민간인 사찰 의혹 제기에 이어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폭로까지 이어지며 큰 논란에 휩싸였다. 최근에는 청와대 행정관이 군 인사자료를 분실해 비난이 일기도 했다. 잇단 내부 폭로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는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하고 나섰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중은 민간인 사찰 등을 둘러싼 사실관계를 떠나 어느 때보다 투철한 도덕성을 갖춰야 하는 현 정권의 청와대가 구설에 휘말린 것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판국에 “문재인 정부에는 민간인 사찰 DNA가 없다”는 발언처럼 자칫 오만한 태도로 비칠 수 있는 대응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전 정권에서는 더한 일도 아무렇지 않게 벌어졌었는데 왜 분명한 증거도 없는 폭로에 휘둘리느냐’는 식의 인식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도덕성이 이 정권에 안겨진 숙명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의 평원에는 뿔이 없는 코뿔소들이 있다.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는 뿔을 미리 잘라버림으로써 코뿔소들의 생명을 지켜주려는 정부 당국의 고육지책이 빚어낸 풍경이다. 코뿔소들은 자신의 신체에서 가장 위용 있는 부분을 내어주는 대신 안전을 얻었다. 뿔 없는 코뿔소처럼 지금 청와대에 필요한 것은 자신들의 기세를 뒷받침해 온 뿔을 스스로 깎아내는 비장함이다. 뿔이 잘려나간 자리에 한층 드높은 도덕성의 기치를 세워 올려야 한다. 그것이 신임 노영민 비서실장을 비롯한 2기 청와대 참모들에게 주어진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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