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만남의 격(格)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16 11:00
  • 호수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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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행정관과 육군참모총장의 카페 만남, 정치권 논란
‘만남의 격’은 지켜져야

#1: IT업계에서는 ‘프로토콜(protocol)’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보통 ‘통신규약’이라고 번역되는데 통신기기들 사이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는 공통의 규칙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프로토콜’이란 단어는 외교 분야에서 가장 흔하게 쓰인다. 이 단어는 사전에 ‘의정서, 협약, 조약의 원문’과 ‘(외교상의) 에티켓, 의례’라고 나온다. 이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프로토콜론(protokollon)’으로 ‘proto(처음)’와 ‘kolla(접착제, 풀)’의 합성어다. 두루마리 형태로 된 문서의 작성 날짜가 써 있는 첫 페이지이거나 그 문서의 케이스 바깥에 풀로 붙여진 쪽지(보통 그 문서의 콘텐츠 요약문)를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라틴어, 불어로 들어와 ‘문서의 서문’→‘문서의 (요약이 아닌) 원본’→‘외교문서’로 뜻이 발전해 오다가 19세기경부터 ‘외교상의 예절, 의전’ 등으로 확장됐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 전후 수습을 위해 비엔나에 모인 강대국들이 외교상의 의전 절차도 합의했는데, 이는 1960년대 초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으로 다듬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거의 모든 국가가 가입해 있는 조약으로 외교의 프로토콜을 망라하고 있다. 요즘 이 단어는 외교 분야를 넘어서 쓰이기도 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상식적으로 지켜져야 되는 예의나 격식’을 뜻하는 듯하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담당 공무원을 방문할 때 그 담당자의 ‘급’에 따라 맞는 ‘직급’의 사람을 보내는 것 등이다. 

#2: 고려시대 ‘무신의 난’은 잘 알려진 우리 역사의 한 대목이다. 의종 24년(1170년)에 상장군 정중부와 휘하 장수들이 일으킨 쿠데타로, 무인들을 하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들의 분노로 벌어진 일이었다. 이전에 정중부 자신도 한 궁중행사에서 의종이 그의 멋진 수염을 칭찬하자 김부식의 손자 김돈중이 촛불로 그 수염을 태운 사건을 당한 바 있었다. 그해에 의종이 무관들끼리 맨손 무예를 겨루도록 했는데, 이소응이라는 연로한 장군이 지친 나머지 젊은 장수에게 졌다. 이를 본 한뢰(韓賴)라는 (젊은) 문신이 “네가 대장군이냐”면서 뺨을 후려친 것이 방아쇠가 됐다. 그날 밤 무신들에 의해 한뢰도 목이 잘렸고, 곧 김돈중도 잡혀 죽었다.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청와대 행정관이 재작년 9월 군 인사를 앞두고 육군참모총장을 외부 카페에서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치권 안팎이 시끄럽다. 그 행정관(당시 34세)은 2017년 4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 단 두 달 만에 청와대 행정관으로 임용됐다. 이에 대해 ‘잘못된 만남’이라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고 무신의 난에 빗대어  ‘(수염을 태울 때) 김돈중은 그리 새파랗지 않았다’는 논평도 나왔다.

문제가 커지자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지침을 받아 일하는 행정관이 육군참모총장과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 “꼭 ‘격식’을 맞춰, 일을 하는데 사무실을 방문해야 하나?”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군 내부에서는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 ‘격식’도 절차도 갖추지 않고 육군 최고 책임자를 밖으로 불러낸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야권도 청와대 행정관의 위세가 대단하다며 비꼬았다.

이들의 만남이 문제가 되는 것은, 청와대의 인사개입은 논외로 치더라도 ‘프로토콜’ 즉 ‘만남의 격’이 지켜지지 않아서일 것이다. 특히 오랜 유교의 전통 속에서 나이와 직급이 만남의 절차에서 중요시되는 이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현 정부는 대통령의 ‘탈권위’ 행보로 초기에 큰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청와대 인사들이 ‘탈권위’를 ‘탈예의’나 ‘탈격식’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결국 프로토콜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프로토콜이란 그 어원대로 그 사람의 ‘콘텐츠’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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