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터무니’ 없는 용산미군기지에서 ‘터무늬’ 있는 평화공원으로
  • 김정헌 화가 前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1.23 11:00
  • 호수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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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군사에 반하는 ‘평화의 무늬’ 기본으로 해야
미래세대 위한 평화의, 평화에 의한, 평화를 위한 ‘터무늬’ 되길

어떤 자리나 집터가 자연과 어우러져 제대로 자리 잡고 거기서 잘 살기를 누구나 바란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터무니’의 어원은 보통 ‘터의 무늬’에서 유래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람이 사는 집이나 터만이 아니고 우리는 황당하거나 근거가 없을 때, 상황이 이치에 전혀 맞지 않을 때 흔히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용산미군기지야말로 ‘터무니’ 없는 역사를 지녀 왔다.

알다시피 우리의 역사는 대부분 강대국의 침략으로 얼룩졌다. 특히 수도 한복판인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용산미군기지 터가 그렇다. 그야말로 ‘터무니’가 없는 일이 60년가량 지속돼 왔다.

2018년 6월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미군기지 전경 ⓒ 시사저널 최준필
2018년 6월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미군기지 전경 ⓒ 시사저널 최준필

용산공원은 오랫동안 외국군의 기지 및 주둔지로서의 역사를 가지고,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 잡아 왔다. 한강을 동서 축으로 북한산으로부터 비원, 창덕궁과 종묘를 거쳐 남산과 용산을 이어 관악산에 이르는 남북 생태축을 고려해 만들어진 한양도성은 용산에서 그 맥이 끊겨 전혀 삶의 무늬가 만들어질 수 없는 고립된 사막으로 존재해 온 것이다.

지난해 12월 여기에 머물던 미군이 이 기지를 떠나 평택으로 완전 철수가 확정돼 이 빈 기지를 둘러보기 위해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여러 문화예술인들과 같이 둘러보게 됐다. 나는 철조망이 쳐진 기지 옆을 지나 6년을 이 근처의 중·고교를 다녔기 때문에 참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또한 이 기지를 2000년 초에 옮긴다는 것이 확정됐을 때 문화연대(그 당시 문화연대 대표로 있었다)가 중심이 돼 이 땅을 되찾아 이를 생태·문화적인 삶의 중심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해 왔던 인연이 있다. 당시 용산미군기지를 돌려받아 생태문화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문화연대의 주장에 처음부터 정부 당국은 무관심했지만 시민들이 자발적이고 폭넓은 공감대를 만들어냈고 이는 지금도 국토부 등 정부 당국의 개발 중심 용산공원 추진에 반대하는 중심축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 기지를 국가공원으로 만들려는 계획에 앞서 제대로 된 ‘터무늬’를 만들기 위해 몇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1. 이 땅의 역사에 주목하면서 이 땅에 평화의 ‘터무늬’를 새겨야 한다. 

이 땅은 알려져 있다시피 전쟁과 침략을 당한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만들어질 이 땅의 ‘터무늬’는 전쟁과 군사에 반하는 ‘평화의 무늬’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 

2. 이 땅은 서울의 중요한 생태축이다. 

이 땅은 동서로 흐르는 한강과 북한산에서 창덕궁, 종묘를 거쳐 남산에서부터 용산을 거쳐 관악산에 이르는 남북의 생태축을 만드는 중요한 지역이다. 

그러므로 이 땅은 생태녹지축을 복원하는 맥락으로 ‘터무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앞으로 개발되는 이 공간에는 최소한의 시설과 지하화를 통해 생태녹지축의 보존 및 순환체계를 고려해서 ‘터무늬’를 형성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3. 이 땅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 땅을 국가공원으로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도 시민이 주요한 주체가 돼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이 공원을 앞으로 사용할 시민은 미래세대일 수밖에 없다. 이 미래세대를 위해 이 땅의 개발은 미뤄지거나 최대한 천천히 가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땅의 ‘터무늬’는 미래세대를 위한 평화의, 평화에 의한, 평화를 위한 ‘터무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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