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가家 상속세 출혈 KCGI와 힘겨루기 최대 변수
  • 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song@sisajournal-e.com)
  • 승인 2019.04.18 08:00
  • 호수 153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양호 회장 지분 상속세만 1770억원대…KCGI 대응 여력 약화 불가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4월8일 새벽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한진그룹 일가의 상속 문제가 불거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조 회장의 보유 지분 가치(상장사는 최근 한 달간 평균 주가, 비상장사는 자산 및 수익 가치 평가로 산정)는 약 3540억원으로 상속세율 50%를 고려하면 상속세는 약 177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조 회장이 보유한 부동산과 기타 자산까지 합하면 상속세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진칼 2대 주주인 KCGI와 힘 대결을 벌여왔던 조양호 회장이 별세하면서 한진그룹 지배구조가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된다. ⓒ 시사저널 이종현
한진칼 2대 주주인 KCGI와 힘 대결을 벌여왔던 조양호 회장이 별세하면서 한진그룹 지배구조가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된다. ⓒ 시사저널 이종현

부인·자녀 지분 다팔아도 부족

조 회장 일가가 동원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 규모는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상속세만 수천억원대 규모임을 감안할 때 보유 현금으로만 상속세를 충당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법적 상속권리가 있는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3명의 자녀(조원태 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가진 한진그룹 계열사 지분을 모두 팔더라도 1770억원을 마련하지 못한다. 더구나 그룹 지배력 약화 탓에 한진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한진칼의 지분을 팔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의 3남매가 한진칼 지분을 온전히 물려받으면서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는 주식담보대출이나 배당 확대 등의 방법이 점쳐진다. 박광래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유족들이 상속 자금을 마련할 방법은 크게 주식담보대출과 배당”이라며 “조 회장 일가가 보유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을 경우 평가액인 1217억원의 50%인 609억원 수준에 그치는데 나머지는 배당을 확대해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물론, 조 회장 일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 자체는 결국 해결 가능한 문제다. 과세 당국이 분납을 허용하면 5년 동안 상속세를 나눠 낼 수 있어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조 회장 지분 중 한진칼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 지분(750억원가량)을 매각하는 방법도 있다. 여기에 조 회장이 한진그룹 계열사로부터 받는 퇴직금 일부도 상속세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증권업계 일각에선 조 회장의 동생인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이 백기사로 나설 가능성도 제기한다. 

조 회장 일가에 닥친 더 큰 문제는 상속세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한진칼의 2대 주주인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의 영향력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KCGI는 지난해 11월부터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며 한진그룹과 힘겨루기를 펼쳐왔다. 하지만 최근 조 회장 사망에 따른 수천억원대 상속세 이슈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진칼과 ㈜한진 등 계열사에서 배당 증액에 나설 경우 한진칼과 ㈜한진의 지분을 갖고 있는 KCGI 역시 배당 수익이 증대하게 된다”며 “이 배당금을 이용해 기존 차입금을 갚을 수도 있지만 한진칼 지분을 더 늘리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조 회장 일가가 주식담보대출이나 계열사 보유 지분, 부동산 매각만으로 상속세를 낸다고 하더라도 향후 경영권 안정을 위한 지분 확보 싸움에서 지분 매입 여력이 떨어지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며 “상속세 납부 과정에서 최악의 경우 한진칼 지분을 팔 수도 있다. 여러모로 KCGI에는 유리해진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했던 고 조양호 회장 ⓒ 사진공동취재단
2016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했던 고 조양호 회장 ⓒ 사진공동취재단

우호 주주 확보가 성패 가를 듯

이에 따라 한진칼에 대한 KCGI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KCGI는 이미 지난 4월4일 투자목적회사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한진칼 지분 46만9014주를 추가 확보했다. 이로써 KCGI의 한진칼 지분율은 기존 12.68%에서 13.47%로 늘었다. 이는 한진칼에 대한 공세를 늦추지 않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앞서 KCGI는 단기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진칼의 가치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진칼에 투자한 KCGI의 1호 펀드는 환매 제한 10년, 최장 만기 14년으로 설정된 펀드다.

KCGI는 당초 한진칼 지분 매입 목적에 따라 한진칼에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 가치 제고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내년 조원태 한진칼 사장의 사내이사 연임 건으로 한진칼을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 회장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조 사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임기는 내년 3월로 끝난다. KCGI가 조 사장의 연임을 막을 경우 한진칼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KCGI가 유리해진 상황을 계속 이어 나가기 위해선 우호적인 주주 확보와 여론 형성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KCGI는 3월29일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해 동료 연기금, 기관 및 소액주주들이 노력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며 석태수 한진칼 대표의 연임 등을 반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한진칼이 올린 의안 모두가 통과되면서 우호 세력 확보에 한계를 드러냈다. 한진칼 계열사인 한진 주주총회에서도 2대 주주인 KCGI의 영향력은 판을 뒤집기에는 부족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