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호 "한·러 관계 외교적으로 잘 활용 못 하고 있다"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19.06.11 16:09
  • 호수 15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간 30주년 특별 기획] 대한민국, 길을 묻다 (20회)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②
국내 최초 여성 대사 이인호가 기억하는 러시아 대사 시절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⑫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⑬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⑭이종찬 전 국회의원 ⑮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⑯박관용 전 국회의장 ⑰송기인 신부 ⑱차일석 전 서울시 부시장 ⑲ 임권택 감독 ⑳ 이인호 교수

1996년 여성 최초로 대사에 임명돼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는 이인호 교수 ⓒ 연합뉴스
1996년 여성 최초로 대사에 임명돼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는 이인호 교수 ⓒ 연합뉴스

1956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한국 여성 최초로 하버드대 박사학위를 받은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그 후 10여 년 외국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교수로 지내던 1996년, 그는 또다시 여성 최초로 핀란드와 러시아 대사직을 연이어 맡았다.

당시 김영삼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핀란드 대사 제안을 받을 때만 해도 이 교수는 내심 아쉬움이 많았다. 자신이 전공한 러시아 대사직을 원하던 상황에서 생경한 핀란드 대사라니, 취임 직전까지 수락 여부를 두고 고민이 깊었다.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여러 외부 활동도 요구받던 상황이라 국내 업무에 피로를 느끼던 차였어요. 외국 생활을 오래 했던 내게 대사직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당시 여성계의 권유와 지원도 적극적이어서 가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핀란드 대사로 있던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다. 대통령이 바뀌면 보통 대사직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데, 이 교수는 오히려 자신이 원하던 러시아 대사 자리로 곧장 옮겨 갈 수 있었다. 이 교수는 “러시아로 가라고 했을 때 정말 기뻤어요. 김대중 대통령 덕이 컸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꿈꾸던 일을 제대로 시작해 보기도 전에 그에게 큰 어려움이 닥쳤다. 때마침 IMF가 터지면서 예산이 대폭 줄어버린 것이다. “환율이 갑자기 두 배가 되니까 직원들 월급도 겨우 줄 정도로 어려웠어요. 러시아 곳곳을 굉장히 잘 알고 있었고 인맥도 많아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많았는데, 충분히 활동하지 못해 지금까지 아쉬워요.”

"탈북민 7명 문제 마무리 못한 점 아쉬워"

러시아 대사 기간 중 그에게 여전히 묵직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다. “2000년 북한 사람 7명이 러시아 국경을 넘어 탈출하려다 잡혔어요. 내가 빨리 난민 신청을 하게 해서 그들이 다시 북한으로 못 들어가게 해야 한다고 재촉했죠. 그런데 북한이 난리 치고 중국도 가세하고 아주 분위기가 험악해져 계속 줄다리기만 하며 시간을 지체했어요. 그러던 중에 내가 대사직에서 급하게 물러나게 돼 버린 거예요. 그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나가서 두고두고 아쉬웠는데, 이후에 들어보니 결국 그들은 북한으로 다시 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슬픈 기억이에요.”

이 교수는 오늘날 한·러 관계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1990년대에 우리가 러시아를 대할 때 약간 오만하게 굴었어요. 러시아 입장에서, 북한은 사실상 자기들이 지배하는 나라와 다름없었기 때문에 극진하게 대우받는데 우리는 그와 반대로 나오니까 북한에 더 가까워지는 수밖에요. 지금도 러시아는 우리와 협력해 주고받을 게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그걸 외교적으로 십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