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15일 열리는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8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서는 검찰 고위직 출신으로 정치권에 도전하는 인물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안대희 전 서울고검장,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 이금로 전 수원고검장 등이 바로 그들이다. 여야(채 전 총장·이 전 고검장은 민주당, 안 전 고검장·윤 전 고검장은 한국당)로 나뉘어 있는 데다, 하나같이 과거 검찰 내에서 그 위상이 만만치 않았던 인물들이어서 총선 판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단연 주목을 받고 있는 이는 채 전 총장이다.
사실 채 전 총장의 총선 출마는 아직 가능성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정작 본인이 이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채 전 총장의 출마설이 끊임없이 거론된다. 마치 “반드시 출마해야 한다”고 구애를 하는 듯한 양상도 펼쳐진다. 왜일까.
군산,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불명예 사퇴로 채동욱 거론
민주당 입장에서는 채동욱 카드가 여러 면에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적폐청산’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 맞아떨어진다. 전직 검찰총장으로서 인지도 면에서도 떨어지지 않는다. 채 전 총장이 현재 몸담고 있는 법무법인 서평의 이재순 대표변호사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 역시 채 전 총장 출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대표변호사는 채 전 총장의 서울대 법대 동기로, 채 전 총장과 막역한 사이다. 특히 이 대표변호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사정비서관을 지냈으며,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법률멘토단으로 활동했다. 이 때문에 서초동 안팎에서는 이 대표변호사와 채 전 총장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 개혁의 조언자 역할을 맡고 있다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
민주당의 A중진의원은 “당에서 전북 군산 출마자로 채 전 총장을 1순위에 놓고 검토했다. 비례대표를 주는 방안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호남에서 참패했다. 군산 역시 바른미래당(당시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가져갔다. 민주당에서는 이 지역 탈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군들은 경쟁력이 다소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출마 예상자로는 지역위원장으로 선출된 신영대 전 청와대 행정관을 비롯해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김윤태 고려대 교수, 문택규 전 전북도당 공명선거 실천위원장, 조성원 변호사, 채정룡 전 군산대 총장, 황진 군산중앙치과 원장 등이다(시사저널 8월5일자 ‘[2020총선-호남] ‘2016 녹색 열풍’ 재현될 수 있을까’ 기사 참조). 당초 강력한 출마 후보자로 예상됐던 김의겸 전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불명예 사퇴하면서 민주당은 부랴부랴 대안 찾기에 나섰다. 채 전 총장은 서울 태생이지만 5대 종손인 부친은 군산 출신이며, 현재 친척들도 군산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민주당은 채 전 총장의 지명도라면 군산뿐만 아니라 전북 지역 전체로 청색 바람을 확산시킬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는 듯하다.
채 전 총장이 출마할 경우 ‘적폐청산’이 총선에서 다시 이슈로 부각될 수도 있다. 채 전 총장은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고, 그 직후 터진 혼외자 논란으로 사퇴했다. 혼외자 논란의 배경에 박근혜 정부의 공작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채 전 총장의 혼외자 첩보를 인지하고 국정원 정보관에게 지시해 학교생활기록부를 확인한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여권이 채 전 총장 출마설을 거론하는 데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과도 연관돼 있다는 지적이다. 윤 총장은 ‘양날의 검’으로 통한다. 정치권의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야당은 물론 여당에 대한 수사도 진행할 ‘강골’이라는 것이다. 여당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김조원 신임 민정수석이나 법무부 장관으로 유력한 조국 전 민정수석은 비(非)검찰 출신으로 검찰 조직을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채 전 총장은 특수통으로 검찰 내에서 명망이 높을 뿐만 아니라 윤 총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과거 대검 중수부 시절부터 윤 총장과 특수수사를 함께 했다. 박영수 당시 중수부장(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특별검사) 아래에 채 전 총장이 수사기획관으로 있었고,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부부장검사였던 윤 총장이 중수부로 파견됐다. 이들이 맡은 사건이 1000억원대 현대차 비자금 사건이었고, 기어이 정몽구 회장의 구속을 이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박영수-채동욱-윤석열’로 이어지는 검찰 내 특수통 계보가 만들어졌다.
2012년 말 초유의 검란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채 전 총장과 윤 총장은 함께했다.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중수부 폐지를 추진하자 특수통 검사들이 반기를 들었다. 대검 차장이었던 채 전 총장은 대검 간부들과 한 전 총장을 향해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윤 총장은 당시 이 같은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는 공보 역할을 담당했다. 이듬해인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고 채 전 총장이 특수통으로는 이례적으로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채 전 총장은 특수통 검사를 중용했고, 이로 인해 ‘채동욱 키즈’라는 말이 생겨났다.
“채동욱, 네거티브 우려에 지역구 출마 주저”
채 전 총장은 윤 총장에게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의 수사팀장이라는 중책을 맡겼다. 채 전 총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팀장을 수사팀장으로 앉히기 위해 서울에서 가까운 지청장(여주지청장)으로 발령내 달라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현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요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로 채 전 총장은 사실상 강제 퇴임했다. 민주당 중진 A의원은 “채 전 총장은 온몸으로 외압을 막다가 불명예 퇴진했다. 윤 총장으로선 채 전 총장에게 부채 의식이 없을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명예 퇴진 후 한동안 잊혔던 채 전 총장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것 또한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되면서부터다.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된 2017년 5월, 채 전 총장은 오랜 침묵을 깨고 법무법인 서평의 변호사로 돌아왔다. A의원은 “채 전 총장의 본적이 군산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군산에서 활동한 경험이 별로 없다. 지역 밀착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비례대표에 올리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 채 전 총장 본인도 네거티브 등에 대한 우려 때문에 지역구 출마를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