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불매운동과 오버랩되는 《봉오동 전투》의 “대한독립만세”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7 10: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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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 위기 누가 극복했나…역사의 주역 ‘민초’ 사극 통해 재조명
정덕현 문화 평론가
정덕현 문화 평론가

최근 사극은 잘 가보지 않았던 시대로의 여행을 떠나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시대 중 단연 주목되는 건 구한말이다. 일제강점기와 연결되면서 우리에게는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시대. 과연 지금 사극들은 그 시대의 민초들을 어떻게 담아내려 하고 있을까.

지난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특별했던 건 지금껏 사극들이 자주 담으려 하지 않았던 구한말을 배경으로 가져왔다는 점이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라는 시기가 사극의 소재가 되지 않았던 건 여러모로 논쟁적인 지점들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일제와의 대결구도를 그려내면 자칫 지나친 ‘민족주의적’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구한말을 배경으로 근대화 과정의 신문물과 신여성, 댄스홀 같은 걸 소재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시대의 아픔을 외면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과거 KBS 《경성스캔들》은 독립운동과 멜로라는 코드를 접목하려 했지만 양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건 작품이 그 균형을 맞추지 못했다기보다는 아직까지 대중 정서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tvN

다시 호명된 의병, 동학군 그리고 독립군

《미스터 션샤인》은 과감하게도 멜로와 의병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엮어냈다. 고애신(김태리)과 유진초이(이병헌)의 멜로를 이제 막 신문물이 들어오는 구한말을 배경으로 담아내면서도, 남모르게 의병활동을 하는 고애신을 통해 의병들의 불꽃 같은 삶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유진초이, 구동매(유연석), 김희성(변요한)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특히 전혀 의병과는 무관해 보이는 인물들이 의병이 되어 가는 과정을 담았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미국으로 도망쳤다가 미군이 되어 돌아온 유진초이, 백정의 자식으로 일본으로 넘어가 낭인이 되어 돌아온 구동매 그리고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주의 자식이지만 친일 행각을 벌이는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김희성. 멜로의 사적 관계가 의병 같은 대의를 추구하는 공적 관계로 확장되어 가는 인물들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저잣거리에서 인력거를 끌거나 빵을 만들거나 양장점에서 옷을 만들고 전당포를 운영하는 민초들도 눈앞에서 쓰러져가는 이웃들을 보며 하나둘 의병이 되어 갔다. 구한말을 지나치게 낭만적 풍경으로 담아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미스터 션샤인》은 그럼에도 의병이라는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큰 성과를 거뒀다. 역사 교과서에 박제된 사진 한 장 정도로 남아 있던 의병을 고스란히 재현해 낸 장면은 의병들이 색다른 존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민초들의 초상이라는 걸 얘기해 줬다.

최근 종영한 SBS 사극 《녹두꽃》은 지금껏 사극이 잘 다루지 않았던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가져왔다. 당대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최무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드라마는 백이강(조정석)이라는 동학군의 별동대장을 주인공으로 세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서자로 태어나 이방인 아버지 명에 따라 동네 사람들을 수탈하며 살아가던 그는 전봉준을 만나면서 삶의 전기를 맞게 된다. ‘거시기’로 불리며 아무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살아가던 그는 동학군의 별동대장이 되면서 비로소 ‘사는 맛’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동학농민혁명의 마지막 전투가 된 우금치 전투는 무려 2만여 명이 죽음을 맞이했지만 드라마는 이들이 왜 기꺼이 그 죽음을 향해 달려갔는가를 백이강이라는 인물을 통해 감동적으로 담아낸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처럼 살다 가겠다는 뜻이었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울림을 보여줬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쇼박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쇼박스

영화 《봉오동 전투》 역시 이 전투의 영웅으로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홍범도 장군을 전면에 세우지 않는다. 대신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황해철(유해진), 발 빠른 독립군 분대장 이장하(류준열) 그리고 황해철의 오른팔인 백발백중 저격수 마병구(조우진)가 주인공들이다. 실제로 1920년 봉오동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대패시킨 이 역사적 전투는 전투의 현장에서 죽기 살기로 뛰어다닌 인물들에 의해 생생한 생명력을 얻는다. 여기서도 독립군은 정식으로 훈련을 받은 군인들이 아닌, 자발적인 민초들이었다.

사극이 되살린 구한말 민중들, 그리고 지금

우리 역사에서 국난의 위기가 있을 때마다 나라를 구해 낸 건 민초들이었다. 임진왜란은 물론 구한말 때도 우리는 동학군, 의병, 독립군이라는 이름으로 민초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이름조차 남기지 않고 우리네 강토 곳곳에서 초개같이 제 한 목숨을 던졌다. 물론 역사는 이들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것은 권력자들의 이름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니 말이다. 최근 사극들은 역사가 소외시킨 실제 역사의 주역들을 재조명하고 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 주인공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 아니라 어느 집 애기씨로 태어났으나 ‘꽃’이 아닌 ‘불꽃’의 삶을 살겠다며 의병이 된 이와 그를 지키려다 제 목숨 또한 불꽃으로 기꺼이 던져버린 또 다른 의병이다. 《녹두꽃》 주인공은 동학농민운동을 전면에서 이끌었던 전봉준이 아니라 서자로 태어나 ‘거시기’로 불리며 살다가 제 이름을 찾아 짧지만 사람다운 삶을 살고 간 동학군 별동대장이다. 마찬가지로 《봉오동 전투》 주인공은 홍범도 장군이 아니라 어쩌다 나라 잃은 세상에 살다보니 독립군이 된 인물들이다.

SBS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SBS
SBS 드라마 《녹두꽃》의 한 장면 ⓒSBS

구한말이라는 사극에서 그간 잘 그려내지 않던 지점을 선택하고, 그 안에서 영웅이 아닌 민초의 역사를 재현해 내려는 노력이 지금 이뤄지고 있는 건 우리가 ‘대중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녹두꽃》의 동학농민군들이 들었던 횃불은 최근 광화문을 채우는 촛불의 연원지처럼 여겨지고,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들이 외치는 “대한독립만세”는 아베 정권이 만들어낸 경제전쟁에서 ‘불매운동’을 통해 들려오는 ‘경제 독립’의 목소리로 들린다. 역사는 결국 몇몇 영웅들이 만들어낸 게 아니라 당대의 민초들의 힘이 모여 만든 것이라고 이들 사극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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