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몽규 HDC그룹 회장, 中企 갑질로 국감 증언대 설까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0 17:00
  • 호수 156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 정부 제1호 ‘뉴스테이’ 수주 과정 논란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올해 국정감사에서 증언대에 설 위기에 처했다.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수주 과정에서 중견 유통업체인 엔터식스를 상대로 갑질을 벌였다는 논란 때문이다. 수주 요건 충족을 위해 엔터식스를 끌어들였고, 사업을 따내자 팽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사업 배제의 배경에 대해 엔터식스 측은 현재 “현대산업개발이 계열사인 HDC아이파크몰을 통해 직접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하고, 현대산업개발은 “엔터식스의 재무상태 때문”이라고 맞서고 있다.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는 향후 국감장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HDC현대산업개발 본사가 위치한 용산아이파크몰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 ⓒ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HDC현대산업개발 본사가 위치한 용산아이파크몰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 ⓒ 시사저널 이종현·연합뉴스

공모 참여 위해 끌어들였다 ‘팽’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은 오는 10월2일부터 진행되는 국정감사와 관련해 정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돼 국감 증언대에 설지 주목된다.

정 회장 증인 신청의 단초는 ‘서울남부교정시설(옛 영등포교도소) 부지 뉴스테이 개발사업’이다. 문재인 정부 제1호 뉴스테이로 10만5000㎡ 부지에 주택(2214가구)과 판매시설 등 주상복합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사업비가 1조3000억원으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였다. LH와 HUG가 출자해 설립한 토지지원리츠가 부지를 매입하고, 이를 민간사업자와 HUG가 출자해 설립한 뉴스테이 임대리츠에 임대하는 형식으로 사업이 진행된다.

엔터식스에 대한 갑질 논란은 사업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 시작은 2016년 2월 현대산업개발이 엔터식스에 사업 참여를 요청하면서다. 1·2층 판매시설 상가임차인으로 함께 공모에 참여해 달라는 것이었다. 공모 참가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다. LH 공모지침서에는 판매시설 면적(4만5872㎡)의 50% 이상에 대한 상가임차인 입점확약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다. 평가배점도 1000점 만점에 350점으로 가장 높았다. 유통사업자를 파트너로 확보하는 것이 사업 수주의 핵심인 셈이었다.

엔터식스는 다른 건설사들에서도 ‘러브콜’을 받았다. 엔터식스 외엔 사실상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LH는 상가임차인의 조건으로 ‘최근 3년간 연간 총매출액 1000억원 이상’이라는 상한을 내걸었다. 이에 부합하는 국내 유통업체는 엔터식스를 비롯해 현대·롯데·신세계·애경·이랜드가 전부였다. 그러나 현대·롯데·신세계 등 백화점업계 빅3는 주상복합에 입점하지 않는다. 애경그룹(AK플라자)도 국가 공모사업엔 참여하지 않고 이랜드그룹(NC백화점)은 신용도 하락으로 출점이 제한된 상태였다. 결국 공모에 출사표를 던지기 위해선 엔터식스를 파트너로 확보하는 것이 필수인 상황이었다.

엔터식스를 확보한 현대산업개발은 공모에 단독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이후 2016년 12월 HUG의 1차 기금심사에 통과한 데 이어 2017년 12월 사업 인허가가 떨어졌다. 그 직후인 지난해 2월 현대산업개발은 얼굴을 바꿨다. 사업을 함께 진행할 수 없다는 구두 통보를 해 온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현대산업개발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엔터식스는 현대산업개발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자사에 갑질을 했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신청된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그동안 재벌 총수 증인 채택은 ‘국감의 꽃’이라고 불렸다. 이들의 증인 채택 여부가 국감의 흥행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함 의원이 정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건 엔터식스 사업 배제 배경에 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정황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실제 함진규 의원실에 제출된 현대산업개발 임원과 엔터식스 임원 간 통화 녹취록에는 엔터식스 사업 배제의 배경과 여기에 정 회장의 뜻이 담겼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양자 간 통화는 엔터식스가 사업에서 배제된 이후인 지난해 4월10일 이뤄졌다. 대화는 사업 배제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대체 사업지를 제안하며 회유하는 말로 시작된다. 다음은 현대산업개발 임원의 발언이다.

“우리는 관계를 좋게 끌고 나가서, 하여튼 대체사업지가 됐든 뭐가 됐든 잘 보상을 해드리고 좋게 가려고 지금 마음을 먹고 있기 때문에. (실무자에게) ‘좋은 구간으로 해서 지금 이 정도 규모 이상으로 해서 좋은 데 좀 넣어드려라’ (중략) 이렇게 얘기는 다 해놨는데, 하여튼 시간 나실 때 오셔서 차나 한 잔 하면서 자료도 구체적으로 보면서 한번 말씀을 해보자고요.”

이때 현대산업개발 임원이 제안한 사업지는 GTX 공모사업이었다. 당시 현대산업개발은 이 사업의 사업주관사로 선정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대화 과정에선 엔터식스가 사업에서 배제된 이유도 드러난다. 뉴스테이 사업의 수익성 악화 등이 주된 이유였다.

“사업성이 지금…. 또 사업승인 받으면서 전부 민원 때문에 까졌잖아요. 층수도 줄이고, 세대 수도 막 열 몇 세대 줄이고 그래가지고, 우리도 지금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까 (수익이) 거의 똔똔 아니면 까지게 생겼어요. 그 공사비에서 몇 푼 건지러 들어갔다가.”

결국 악화된 수익성을 보완하기 위해 현대산업개발이 엔터식스를 배제했다는 것이다. 다음 현대산업개발 임원의 발언에는 엔터식스를 사업에서 배제하는 결정에 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으며, 어떤 식으로 악화된 수익성을 보전하려는지에 대한 정황이 담겼다.

“우리는 복합개발을 (진행하려는데), 이제 우리 회장님도 그, 하여튼 건설업이 지금 이제 재미가 없으니까. (회장님이) 어떻게 다른 사업도 한 번 연구해봐라. 그러는데 우리는 건설 중에도 또 아파트밖에 없잖아요. (중략) 이 사업도 아파트기 때문에 또 한다고 한 건데….”

결국 ‘복합개발’을 통해 수익성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산업개발 임원이 언급한 복합개발은 무엇일까. 현대산업개발은 2017년 복합개발사로 새로운 도약을 선포했다. 기존 시공 중심에서 물류와 유통, B2C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엔터식스가 맡기로 했던 상가임대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아이파크몰 통해 직접 사업 참여 의혹

공교롭게도 현대산업개발은 건설사 중에선 드물게 유통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 HDC아이파크몰이 바로 그곳이다. 엔터식스가 현대산업개발이 직접 상가임대업을 영위하기 위해 자사를 배제했다고 주장해 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현대산업개발이 엔터식스를 사업에서 배제한 지 1년7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대체 사업자를 확보하지 않은 점도 이런 주장에 무게를 싣는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애초에 아이파크몰이 사업에 참여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리란 것이다. 그러나 아이파크몰의 재무상황을 살펴보면 그 배경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아이파크몰은 1999년 설립 이래 2013년까지 15년간 적자를 냈고, 2005년부터는 줄곧 자본잠식 상태였기 때문이다. 공모 당시에도 자본잠식 규모가 800억원대에 달했다. 사실상 공모에 참여하기 어려웠던 상황인 셈이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현재 엔터식스의 공백을 메울 방안을 검토 중인 상황”이라며 “향후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