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 틴에이저] “우리도 시민이다!”…펜 대신 피켓 든 10대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6 10:00
  • 호수 1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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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툰베리’ 청소년 3인 인터뷰…환경.노동.인권 등에서 변화 이끌어

“여러분이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9월23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단에 선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날 선 연설이 유엔본부에 울려 퍼졌다. 툰베리는 화가 나 있었다. 연설 중간 “어떻게 감히!”(How dare you)라는 말을 섞어가며 앞에 앉은 ‘적’들을 노려봤다. 툰베리의 분노는 ‘헛된 말’(empty word)로 환경 위기를 외면한 어른들을 향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바꾸지 않고, 기술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모든 미래 세대의 눈이 여러분을 향해 있다. 여러분이 책임을 회피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4분20여 초 동안의 격정 어린 연설을 마무리했다. 장내에는 박수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미래 세대’ 리더의 경고장을 받아든 세계 각국 ‘현(現)세대’ 리더들의 표정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 EPA 연합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 EPA 연합

이제 10대들의 목소리는 학교 안 울타리에 머물지 않는다. 청소년들의 불만은 더 이상 일기장에만 적히지 않으며, 그들이 지식을 얻는 창구는 교과서에 한정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법과 질서에 과감히 ‘물음표’를 찍은 뒤, 어른들의 반성과 개혁을 요구하는 10대들의 목소리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앵그리 틴에이저’(angry teenager·분노한 10대)가 또래를 넘어 중앙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과연 10대들의 분노는 어떻게 해석되고, 또 어떻게 해소될 수 있을까. 시사저널은 환경·노동·인권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의 툰베리’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만나 그들이 바라보는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귀를 기울였다.

9월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청소년 기후행동 소속 학생들이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9월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청소년 기후행동 소속 학생들이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어른들은 ‘내 미래’를 살아주지 않는다”

10대들의 목소리에 국경은 없다. 툰베리가 전 세계를 돌며 기후 위기를 말하는 사이,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김유진양(17)이 기후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청소년 기후행동’이라는 환경단체에 속해 있는 그는 기후 위기를 알리고 정부 대응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청소년 기후행동은 지난해 8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낀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단체다. 현재 유진양을 비롯해 약 60명이 활동하고 있다.

유진양의 스케줄은 빼곡하다. 여느 정치인이나 아이돌 못지않다. 지난 9월2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청년 기후 정상회의’에 한국 청년 대표로 참석해, 전 세계의 청년들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방법론을 토론하기도 했다. 귀국 뒤에는 9월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기후 위기를 위한 결석 시위’를 직접 기획·진행했다. 당시 유진양과 손을 잡고 시위에 나선 청소년만 주최 측 추산 500여 명에 이른다. 여느 또래라면 입시를 챙기고 수학 공식을 외울 나이에 유진양이 ‘펜’ 대신 ‘피켓’을 든 이유는 무엇일까. 10월2일 서울 중구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 유진양을 만났다. 강행군 탓인지 유진양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러나 그녀가 힘주어 말하는 마디마디에서는 뚜렷한 주관이 느껴졌다.

“7살 때부터 꿈이 동물학자였어요. 자연스럽게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지요. 알면 알수록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죠. 그런데 내가 본 이 문제들이 실제 ‘객관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결국 환경문제라는 건 세대 간 불평등인 것 같아요. 어른들이 자라온 환경과 지금 청소년들이 자라나는 환경은 다르잖아요? 정책을 결정하는 어른들 탓에 우리 인생의 미래가 결정되는 건 불공정한 일이죠. 그렇다면 내가 전력 사용을 줄이고, 육류 섭취를 줄이는 작은 실천을 뛰어넘어서 조금 더 큰 변화에 동참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진양과 인터뷰하는 사이, 우산을 털며 한 학생이 들어왔다. 유진양과 함께 청소년 기후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연재양(17)이었다. 간식으로 사온 빵을 보며 환하게 웃는 연재양의 모습은 영락없는 10대였다. 그러나 기성세대에게 기후 문제를 제기하게 된 계기를 묻자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직 꿈이 없어요.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제가 만약 일을 한다면 그 일이 저만의 이익이나 돈을 위한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속 가능한 삶’과 생태계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에너지, 또 기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저는 어른들, 또 각국 정상들이 저희들이 말하는 위기를 정말 위기라 생각하는지 의문이에요. 기대를 놓지 않으려 하지만….”

10대들의 목소리가 환경으로만 쏠리는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을 뿐, 청소년들이 연대를 조직해 목소리를 내는 분야는 다양하다. 대표적인 분야가 ‘노동’이다. 다수 청소년들에게 이른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사치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 벌이에 나선 청소년 중 상당수가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한다. 연장근로수당과 주휴수당은 꿈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생긴 게 ‘일하는 청소년 연대’다. 청소년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청소년들이 만들어가는 노동조합이다. 올해 1월 설립됐으며 조합원은 15명, 후원회원은 8명이다. 내년 초 정식 노동조합 설립을 목표로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 중이다. 연대 위원장을 맡은 고등학교 3학년 권혁진군(18)이 일선에서 조합원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동하는 청소년은 우리 사회에서 어색한 단어예요. 대부분 사람들은 10대를 청소년이라 부르기보다 학생이라고 부르죠. 학생은 당연히 학업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생각이 청소년과 노동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져요. 공부하는 학생을 청소년 세대를 지칭하는 언어로 사용해 왔기에 기성세대는 청소년 노동을 따로 조명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이 탓에 청소년들의 노동권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만한 단체도 역부족인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당사자, 즉 청소년들이 머리를 맞댈 공간이 절실합니다.”

‘청소년 기후행동’에 소속된 오연재(왼쪽)·김유진양 ⓒ 시사저널 고성준
‘청소년 기후행동’에 소속된 오연재(왼쪽)·김유진양 ⓒ 시사저널 고성준

“우리보고 ‘기특하다’고 말하지 말라”

정치와 과학은 엘리트의 영역이다.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소수만이 권위를 갖는다. 다만 국가와 정당, 기업과 산업, 법과 제도의 톱니바퀴가 촘촘하게 맞물려 돌아가다 보니, 전문가들조차 명확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문제들이 산적했다. 이 탓에 ‘아직 덜 배운’ 청소년들이 기성세대를 향해 내뱉는 날 선 구호를 ‘선동’이라 치부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기존 제도권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 하지 않은 채, 감정적으로만 대처한다는 비판이다. 청소년들이 조직을 구성하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어른 코스프레(흉내 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툰베리의 경우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훈수를 들어야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0월2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포럼 러시아 에너지 주간에 참석해 “당신들을 실망시킬지 모르지만 나는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에 공감이 가지 않는다”며 “세상이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것을 툰베리에게 설명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아프리카나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사람들은 스웨덴 정도의 부를 갖춘 나라에서 살고 싶어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른들은 아이들을 어떤 극단적인 상황에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툰베리의 유엔총회 연설이 나온 뒤 자신의 트위터에 “밝고 멋진 미래를 기대하는 아주 행복한 어린 소녀로 보였다”고 적었다. 툰베리를 환경운동가가 아닌, 단지 꿈 많은 소녀로 묘사하며 조롱한 셈이다.

과연 10대들은 어른들의 이 같은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혹여 이 같은 훈계가 10대들의 분노를 더 끓어오르게 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마주한 10대들이 내놓은 대답은 비이성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았다. 어른들이 어디를 때릴지 알고 있었다는 듯, 차분히 논리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유진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맞아요. 청소년은 경험이 부족해요.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죠. 당연히 청소년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20~30년 동안 법이나 정치를 했다는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인 대책을 바라는 모습은 옳은 건가요? 청소년들을 탓하기 전에 지금껏 세계 지도자들이 보인 행보가 얼마나 신뢰받기 힘들었는지 기성세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재양이 한숨을 가볍게 쉰 뒤 답을 이었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을 만났을 때의 일화를 들려줬다. 조 장관은 9월17일 서울시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을 만나 기후변화에 대한 의견을 나눈 바 있다.

“장관을 만난다고 해서 정말 기대가 컸어요.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준비해 갔죠. 각국 나라들과 맺은 협약을 정부가 지키고 있지 않다는 점, 또 30년 뒤 우리나라가 마주할 현실의 문제를 지적했어요. 그런데 장관은 저희가 제시한 대안에 대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도 ‘잘될 거니 걱정 마라’ 같은 교과서식 답변만 내놓더라고요. 저희가 설득하려고 그 자리에 갔던 것은 아닌데 말이에요. 지구를 위한 행동인데, (어른들이) 같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혁진군은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청소년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했다. 청소년들이 무언가를 외치는 그 장면만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 정작 그 내용은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목소리를 내는 청소년들을 향해 건네는 ‘기특하다’ ‘멋있다’ 등의 칭찬이 불쾌하다고 했다.

“성인이 노동조합운동을 할 때 기특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기특하다는 것은 결국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혜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말인데, 청소년을 보호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해요. 청소년은 내일을 위한 존재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존엄한 인격체입니다. 청소년을 미래를 위한 주역, 순수해야만 하는 존재, 어른들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로 보는 태도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의 목소리를 소외시키고 맙니다.”

 

청소년과 어른, ‘목소리의 무게’는 동등해

청소년들은 이제 어른들의 품이 아닌 옆에서 목소리를 내길 원한다. 특히 자신들과 직결된 문제에서만큼은 어른들이 마련한 제도나 해법에 안주하길 원치 않고 있다. 이에 선거 연령을 낮춰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지도자를 직접 뽑고자 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투표권을 갖게 되면 더 이상 청소년들의 외침을 무시하거나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란 주장이다. 실제 선거권 연령 18세 하향과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이 지난 8월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가결되자,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촛불청소년연대) 등 전국 청소년 관련 단체들이 잇따라 ‘환영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사회구성원 5분의 1에 달하는 18세 이하 청소년을 시민의 자리에서 배제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참정권을 요구하는 10대를 향한 어른들의 시선은 대부분 곱지 않다. 촛불청소년연대에서 활동 중인 학생들이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며 연대 활동에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모님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알게 될 경우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외출 금지나 반성문 등의 처벌을 가하기도 해서다. 촛불청소년연대에서 ‘양말’이라는 별명을 쓰는 A양(17)은 “(활동을) 부모님이 알게 될까 눈치가 보여서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실제 많은 학생들이 학업이나 수능에 대한 압박감 탓에 시위 등에서 제약을 받곤 한다”고 전했다.

유진양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10대들의 분노를 불신하는 어른들을 향해 되묻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기성세대는 청소년을 딸·아들처럼 봐요. 아직 덜 성숙하고 덜 완성된 의견을 내는 아이들로요. 그래서 뭔가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물론 청소년은 미숙해요.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가 다른 세대의 목소리와 동등한 무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미래 세대지만,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이니까요.”

‘일하는 청소년 연대’ 위원장 권혁진군 ⓒ EBS 사진캡처
‘일하는 청소년 연대’ 위원장 권혁진군 ⓒ EBS 사진캡처

대한민국 정부 상대 ‘집단소송’ 준비하는 10대들

한편 청소년 기후행동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량 5위, 증가율 1위(2015년 기준)다. 청소년 기후행동은 정부가 기후변화와 관련해 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안일한 대책 탓에 환경이 악화됐고, 결국 이 피해는 10대들이 고스란히 받게 될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에 청소년 기후행동은 변호사들의 조언을 얻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올 12월 집단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 10월9일 기준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힌 청소년은 총 1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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