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 틴에이저] 기성세대 ‘내로남불’에 실망한 ‘탈권위 세대’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10.16 10:00
  • 호수 156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소년 운동 확산시킨 3가지 기폭제, 어른·탈권위·스마트 기기

청소년이 거리에서 외치는 구호는 사실 구문(舊聞)이다.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그 문제’와 ‘그 답’으로, 새롭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들이 청소년들의 구호 앞에 특별대책을 내놓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러나 그레타 툰베리가 그랬듯 청소년들은 ‘알아서 할게’라는 어른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비단 환경뿐만이 아니다. 교육과 노동, 각종 인사(人事)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가 관리하는 ‘모든 것’이 청소년들의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현 세대 정책 결정권자들의 말을 믿을 수 없어 거리로 나온다는 10대들. 시사저널과 만난 사회학자 등 전문가들은 정치인과 기업가 등 권력 정점에 선 기성세대 인물들의 ‘내로남불’(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태도)이 청소년들의 인내심을 고갈시켰다고 진단한다. 스마트 기기를 쥔 채 권위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라난 10대들이, 과거보다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어른들을 ‘디스’(폄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일러스트 정찬동
ⓒ 일러스트 정찬동

매스미디어 속 ‘엉망진창 어른들’

“다 엉망인 것 같아요. 누구는 뭐 깨끗하겠어요?” 서울 광화문에서 조국 법무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지난 10월9일. 서울 용산역 인근에서 만난 고등학교 1학년 김하민군(16)은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서초동 시위와 광화문 시위 중 어느 곳을 갈까 고민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조국 법무장관과 검찰 모두 ‘평등하게’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이 된다고 했다. 그의 옆에 선 최민환군(16)은 ‘조국 사태’에 대해 얼마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뉴스에 나오는 것 정도 알고 있는데, 사실 언론도 믿지 못하겠어서 요즘은 뉴스를 잘 안 본다”며 “요즘은 전부 다 ‘구라’(거짓말의 속어) 같다. 솔직히 기자님은 정치인이나 검찰 말 다 믿느냐”고 되물었다.

최근 연일 보도되는 고위 공직자의 각종 비리 의혹과 시끄러운 정국은 청소년들에겐 공해다. 가뜩이나 입시 탓에 지친 일상인데, 매스미디어를 통해 마주하는 기성세대의 민낯도 스트레스다. ‘존경할 만한 어른’보다는 ‘지탄받고 있는 어른’을 더 자주 접하는 게 10대들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들에게 어른은 ‘꼰대’(낡은 제도와 생각을 고집하는 이들)와 동의어가 됐다. 결국 이런 어른들이 만들어낸 법과 제도가 청소년들에게 공감을 얻기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학교에서는 ‘하면 안 된다’고 배웠던 행동들을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을 봤을 때, 청소년들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세상이 공정하게 돌아간다는 믿음이 깨지게 되는 것”이라며 “어른들의 위선적인 모습과 모순된 행동을 보면서 자라난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를 불신하게 될 것이다. 결국 어른들이 (10대들의 분노를) 자초한 셈”이라고 진단했다.

 

표현의 자유를 익힌 ‘거침없는 10대’

일각에서는 온라인 ‘게시판 문화’가 오프라인 시위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신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개진하고, 때로는 ‘악플’(공격성 댓글)을 서슴없이 다는 10대들이, 이제 온라인을 넘어 광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최근 10대들은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채널이 굉장히 다각화돼 있다. 인터넷 뉴스 댓글난부터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 등 다양한 곳에서 자신의 주장을 쉽게 적고 표현할 수 있게 됐다”며 “그렇다 보니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데 있어 거침이 없고, 누군가와 논쟁을 벌이는 데 있어 두려움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과거와 비교해 청소년들이 ‘권위’보다 ‘권리’에 익숙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은 것도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거의 10대들은 어른의 권위를 부모님과 선생님의 ‘회초리’로 배웠다. 이 강압적인 주입식 교육이 10대들의 단체행동을 제약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했으나, 현 세대는 명확히 이를 폭력으로 인식한다. 대신 ‘체벌받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 등이 당연한 권리라고 인식하며 자라는 청소년이 많아졌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별로 제정한 ‘학생인권조례’의 영향이 컸다.

부모들의 달라진 양육법이 10대들의 자율성을 북돋워줬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 부모 10명 중 6명은 자녀를 키울 때 체벌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가 아동과 청소년을 자녀로 둔 전국 40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체벌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자녀를 양육할 때 신체적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의 60.7%가 “체벌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또 ‘벌 세우기’를 자녀 훈육수단으로 사용하는 부모는 10.8%에 그쳤고, 대신 부모 10명 중 5명이 훈육 방법으로 ‘말로 야단치기’나 ‘칭찬과 보상’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도 ‘스마트’하게 전파하는 ‘알파세대’

향후 중앙정치에 미치는 10대들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이란 게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청소년들이 주장을 개진하는 방법이 점점 ‘스마트’해지고 있어서다.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이 국경을 넘어 한국까지 번진 것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처럼 연대를 조직하고, 광장에서 시위를 계획하는 청소년들은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메시지를 전파한다. 시위 현장의 모습이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의 ‘라이브 중계’ 기능을 활용해 생중계되면서, 청소년들의 호응을 보다 손쉽게 유도하고 있다.

홍콩 시위의 주축 역시 SNS 활용에 능한 10~20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출생한 세대)였다. 2014년 우산혁명에 이어 송환법 반대 시위에서도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조슈아 웡(23), 아그네스 차우(23)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언론 CNBC는 “(시위) 리더들은 20대에 불과하지만 이 세대 전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거대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알파세대’가 교복을 입게 되면 청소년 시위의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알파세대란 2011~15년에 태어나 인공지능(AI), 로봇 등 기술적 진보에 익숙한 세대를 일컫는다. 현재 교복을 입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보다 스마트 기기 활용에 훨씬 더 친숙하고 능할 수밖에 없다.

☞ ‘기성세대에 분노하는 10대’ 특집 연관기사

[앵그리 틴에이저] “우리도 시민이다!”…펜 대신 피켓 든 10대들  

[앵그리 틴에이저] “청소년 시위는 정치인들 정신 차리게 하는 자명종”   

[앵그리 틴에이저] 비행기 대신 기차 타고, 고기 소비 줄이고…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