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박인비도 ‘도쿄행’에 사활 걸었다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6 16: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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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골프 국가대표 경쟁 점입가경…박인비 “티켓 위해 상반기 최소 15개 대회 출전”

“내가 나를 너무 혹사시킬까봐 걱정이다.”(고진영), “상반기에 모든 것을 집중해 올림픽 출전 티켓을 반드시 따내겠다.”(박인비)  

흔히들 세계 최강인 한국 여자 양궁이나 여자 쇼트트랙은 올림픽에서의 경쟁보다 국가대표 선발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한다. 그에 못지않은 종목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여자 골프다. 한국의 여자 프로골퍼들은 올 7월 열리는 도쿄올림픽 출전 티켓을 위해 우리끼리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골프는 다른 종목과 달리 국가대표 선발에서 자국 선수끼리 예선전이 없다. 올해 6월말까지 산정한 세계랭킹으로 정한다. 세계랭킹 15위까지는 국가별로 최대 4명의 선수에게 티켓이 주어지고, 100위 이내까지는 국가당 2명이 출전할 수 있다.

아직 2020 시즌이 시작되지 않은 1월10일 현재 여자 프로골프 세계랭킹을 보면 1위 고진영, 2위 박성현, 5위 김세영, 7위 이정은6, 13위 김효주, 15위 박인비 순이다. 15위 안에 무려 6명이나 포함돼 있다. 그 뒤를 이어 18위 유소연, 20위 양희영, 21위 허미정, 24위 임희정, 25위 신지애, 27위 최혜진, 29위 배선우, 30위 이다연, 31위 장하나 등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가히 한국 여자 골프는 세계 최강 중의 최강인 셈이다.

고진영과 박성현은 부상 등 큰 이변이 없는 한 올림픽 출전 티켓을 사실상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남은 2장의 티켓을 놓고 나머지 선수들은 1월16일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개막하는 다이아몬드 리조트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부터 6월28일 펜실베이니아에서 끝나는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까지 경기를 치러봐야 안다. 이 기간 동안 LPGA투어는 모두 20개가 열린다. 미국에서 2개 대회를 치른 뒤 ‘아시안 스윙’이 시작된다. 호주에서 2개가 열리고 태국·싱가포르·중국을 거친 뒤 다시 미국 본토로 날아간다.

박인비 ⓒ 뉴스뱅크이미지
박인비 ⓒ 뉴스뱅크이미지

고진영·박성현만 사실상 확정적…남은 2장 놓고 5명 경쟁

여유가 있는 고진영·박성현과 달리 김세영·이정은6·김효주·박인비·유소연·양희영·허미정은 언제든지 랭킹이 뒤바뀔 가능성이 있다. KLPGA에서 뛰는 임희정·최혜진·이다연·장하나와 JLPGA에서 뛰는 신지애·배선우는 상대적으로 LPGA투어 선수들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LPGA 메이저대회가 3개나 있어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모두 세계적인 선수들이라 성적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빙’의 점수 차인 김세영·이정은6·김효주·박인비 등 4명이 남은 두 자리를 놓고 다툴 후보로 보인다. 여기에 2017년 LPG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관록의 유소연도 상승세를 탈 경우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해 4승으로 상금왕 등 LPGA 타이틀을 휩쓴 고진영은 금메달을 정조준하며 이미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스프링스로 건너가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단점 보완에 주력하고 있다. 고진영은 태국에서 열리는 올 시즌 5번째 대회인 혼다 LPGA 타일랜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걸림돌이 있다. 지난해 말 하이트진로와의 메인스폰서 계약이 끝나면서 아직 스폰서를 잡지 못한 것. 따라서 첫 대회까지 스폰서가 나서지 않을 경우 심적 부담감을 안을 수도 있다. 출전 티켓은 사실상 확보했지만 목표로 하는 올림픽 우승에 이 부분이 어떤 영향을 줄지가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성현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건너가 동계훈련을 시작했다. 박성현은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LPGA투어 6번째 대회인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을 첫 출전 무대로 잡았다. 이는 지난해 자신이 처음 우승한 대회에서 다시 정상에 오르고 이 분위기를 올림픽까지 이어가겠다는 각오로 보인다.

ⓒ 연합뉴스·뉴스뱅크이미지
ⓒ 연합뉴스·뉴스뱅크이미지

홈코스 이점 안은 일본팀이 올림픽 최대 ‘메달 장벽’

내색은 하지 않지만 급한 것은 박인비다. 지난해 우승 없이 시즌을 보낸 탓에 그 어느 때보다도 랭킹을 끌어올리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이벤트 행사를 마친 뒤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라스베이거스에 동계훈련 캠프를 차리고 강훈에 들어갔다. 4년 전 손목 부상으로 슬럼프에 빠졌지만 예상을 뒤엎고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박인비는 올림픽 2연패의 대위업을 겨냥해 내심 ‘독한 마음’으로 중무장했다. 개막전부터 출전해 초반 4개 대회에 모두 나간다. 박인비는 “컨디션은 좋다. 무리하지는 않겠지만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상반기에 최소 15개 대회는 출전할 계획이다. 금메달 2연패 꿈을 꼭 이루고 싶다”고 전했다.

지난 시즌 최종전인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으로 피날레를 장식하며 시즌 3승을 올린 김세영도 올림픽 금메달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애미에 베이스캠프를 차린 김세영은 4년 전 올림픽에 출전했던 국가대표 4명 중 현재 유일하게 2대회 연속 국가대표 가시권에 들어 있다. “체력에 자신이 있다”는 김세영은 “올림픽 출전 순위를 유지하기 위해 개막전부터 나간다”고 밝혔다. 이정은6은 국내에서 ‘지옥훈련’으로 체력단련을 마쳤다. 전남 해남에서 고교 시절부터 7년째 해 오고 있는 강훈을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 6일씩 소화한 것. 이정은6은 이 훈련을 마치고 태국으로 건너가 샷을 다듬으며 동계훈련을 마무리한다. 호주에서 올 시즌 3번째로 열리는 ISPS 한다 빅오픈에 출전한다.

이렇듯 한국 여자 프로골퍼들이 올림픽에 ‘올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개 높은 몸값의 프로선수들은 올림픽이 열려도 프로리그 자체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이 갖는 의미는 역시 남다르다. 금메달을 획득해 국위를 선양하고 ‘스포츠 영웅’으로 칭송받고 싶은 문화가 한국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세계랭킹으로 올림픽에 나갈 정도의 기량을 가진 선수라면 이미 ‘부(富)’는 어느 정도 축적해 남부럽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이 선수를 하는 동안 한 번 올까 말까 한 올림픽 출전 기회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스포츠 관계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여자 골프와 달리 남자 골프선수들의 올림픽 금메달 경쟁은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50위 이내에 임성재(34위)·안병훈(42위) 2명만 들어 있어 국가대표 경쟁도 사실상 확정된 셈이다. 7월24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 골프는 8월6일부터 8일까지 4일간 72홀로 일본 명문 골프장 사이타마현 가스미가세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다. 대회 직전까지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에비앙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들로선 홈코스의 이점을 안고 일본에서 활약하는 일본 선수들이 가장 큰 ‘메달 장벽’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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