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공백, 단 8일 만에 메운 이광재의 존재감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1.10 11:00
  • 호수 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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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 취약점인 중도 확장성 고민 해결 적임자로 급부상
‘강원도’ ‘친기업’ ‘범친노’로 사면 동시에 대망론 떠

정치적 족쇄가 풀리기 무섭게 이광재 전 강원지사의 존재감이 빠르게 치솟고 있다. 이 전 지사는 지난해 12월30일 정부 ‘신년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돼 공직선거 출마 자격을 회복했다. 2011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지사직을 상실한 후 8년 만이다. 당장 여권에선 3개월 남은 21대 총선에서 이 전 지사가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벌써 이 전 지사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원을 비롯해 수도권 여러 곳이 그의 출마 예상 지역으로 거론된다. 그가 이번 총선을 발판 삼아 물 흐르듯 차기 대선 가도를 밟게 될 거란 관측 또한 적지 않다.

정작 이 전 지사는 다시 정계에 발을 내딛는 데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해외출장 직전인 1월6일, 시사저널과 단독 인터뷰를 가진 이 전 지사는 끝내 정치 관련 질문에는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다(시사저널 1월7일자 ‘해외 출장길 오른 이광재 인터뷰 “MS·아마존·애플 등 참관 예정”’ 기사 참조).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조속한 복귀를 고려하고는 있지만, 정치권 내에 여전히 자신을 견제하는 시선이 많다고 판단해 주변 여러 반응을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이 전 지사는 6일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여시재 일정으로 약 3주에 걸친 해외출장길에 올랐다. 여시재 측은 “사면이 갑작스러웠을 뿐 아니라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아직 계획을 구상한 바 없지만, 인터뷰 등 본격적인 일정은 귀국 후 2월초부터 소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에는 이미 험지 출마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어느 정도 내비친 것으로 전해진다.

ⓒ 여시재
ⓒ 여시재

“강원 선거, ‘이광재 브랜드’로 치러질 것”

이광재 전 지사의 총선 역할론에 대해선 벌써부터 다양한 얘기가 돌고 있다. 다만 보수 성향이 강해 더불어민주당이 꾸준히 열세였던 강원 지역은 8석 모두 이 전 지사의 크고 작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시재에서 주최한 토론회를 통해 이 전 지사와 교류해 온 황희 민주당 의원은 “강원 지역 선거는 ‘이광재 브랜드’로 치러질 것”이라며 “지난 10년간 강원에서 이광재 이상의 존재감을 보이거나 지역을 변화시킨 정치인이 없었다. 지역에서도 이 점을 기억해 그의 사면을 학수고대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의 한 관계자 역시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호남은 정세균·이낙연, 영남은 문재인, 충북은 노영민, 충남·세종은 이해찬으로 선거를 치를 예정이었다. 비어 있던 강원은 원래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을 필두로 치르려 했지만 진행이 잘 안 됐다. 지금은 이 전 지사를 최대한 띄워 8석 중 최소 5석을 차지하겠다는 판단을 그간 해 왔던 것으로 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이 전 지사가 특정 지역에 직접 출마하기보다 지역 선거 전체를 관리할 선대위원장으로 추대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당에선 이 전 지사가 수도권 주요 지역에 출마해야 한다는 쪽으로 점점 더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분위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역구였던 서울 광진을이 주로 거론된다. 최근 민주당 차원에서 이 전 지사의 광진을 출마를 가정해 이미 한 차례 여론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지사의 자택이 위치한 종로 출마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강원 원주갑 출마를 준비 중인 심기준 민주당 의원은 “강원도 좋지만 이 전 지사의 존재감이라면 서울 광진이나 종로 출마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며 “특히 종로를 지역구로 둔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와 종종 얘기를 나눴을 때, 정 후보자가 자신이 더 이상 종로를 못 맡을 상황이 왔을 때 다음 사람을 떠올린다면 이광재라고 자주 언급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민주당 지도부를 비롯해 여권에서도 이 전 지사의 몸집이 다시 빠르게 커지는 게 싫지 않은 분위기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물론 김경수 경남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친노·친문 대권주자들이 줄줄이 낙오한 데 대한 고민도 이 전 지사가 덜어줄 거란 기대가 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당시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서 ‘좌희정 우광재’로 함께 불려온 안 전 지사와 비교했을 때, 이 전 지사가 여권을 좀 더 결집할 수 있을 거란 평가도 나온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민주당 사정에 밝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여권에선 이광재 전 지사를 안희정 전 지사와 같은 ‘비문(非文)’으로 보기보다는 ‘범친노’로 분류한다. 현재 이낙연 총리, 이재명 경기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 등은 모두 친노의 적자가 아니고, 친문 주자는 전부 추락한 상황에서 당내 친문들은 범친노의 결집을 노리고 있을 것”이라며 “이 전 지사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이번 사면 결정 과정에서도 청와대 내 친문 인사들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지사가 비교적 친기업적 중도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 역시 대망론이 뜨는 이유 중 하나다. 지금의 여권 대선주자들 대부분이 중도 확장성에서 취약점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전 지사가 노무현 정부에서 일할 당시 삼성경제연구소와의 적극적 공조를 주도했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또한 제도권 정치에서 물러나 있는 동안 여시재 활동을 통해 친기업 기조를 자주 내비쳐 왔다. 지난 1월6일 출국 직전 시사저널과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그는 “미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기업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며 지역과 기업, 학교(대학) 간의 협업을 거듭 강조했다.

이 전 지사의 인맥 또한 그가 중도층을 포용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여시재 이사진만 봐도 홍석현 전 중앙일보·JTBC 회장을 비롯해 안대희 전 대법관, 이명박 정부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김도연 전 포항공대 총장 등 중도보수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 중 이 전 지사의 대표적인 중도보수 인맥으로는 홍석현 전 회장이 꼽혀 왔다. 홍 전 회장은 여시재 출범 때부터 그와 함께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향후 이 전 지사가 ‘큰일’을 도모할 때 홍 전 회장이 앞장서 중도 결집을 돕는 등 지원 사격을 할 거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 전 지사와 홍 전 회장의 관계가 알려진 것만큼 두텁지는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홍 전 회장 측 핵심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과거 이 전 지사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당시 홍 전 회장을 주미대사로 천거하면서 인연을 쌓기 시작해 여시재 출범 때도 함께했다. 그러나 일찍이 홍 전 회장은 이 전 지사가 주도하는 여시재에서 자신의 역할이 크게 없을 거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한반도평화만들기 재단을 따로 만들어 운영하게 됐다”면서 “홍 전 회장은 진즉에 이 전 지사를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존재로 봤으며, 따라서 둘은 필요에 따라 손잡는 관계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노무현정부 당시 ‘좌희정 우광재’로 불린 이광재 전 강원지사(오른쪽)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정치적 입지가 엇갈리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노무현정부 당시 ‘좌희정 우광재’로 불린 이광재 전 강원지사(오른쪽)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정치적 입지가 엇갈리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이광재-오세훈, 총선 이어 대선에도 만날까

1년이 10년처럼 달라지는 정치권을 8년이나 떨어져 있던 만큼, 이광재 전 지사의 정치 감각이 다소 떨어졌을 거란 일각의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시사저널이 만난 이 전 지사의 측근들과 정치권 관계자들은 그가 정치활동의 발목이 묶여 있었음에도 여시재를 통해 정계 복귀 후 요구될 철학이나 주 전공을 마련해 왔다고 평가한다. 이원재 전 여시재 이사는 “(이 전 지사는) 아이디어가 많다. 지난 시간을 국가 장기 비전에 대한 내공을 쌓는 시기로 사용한 듯하다”고 말했다.

실제 이 전 지사가 이끈 여시재는 2015년 정식 출범 후 동북아 외교 및 한반도 통일 문제, 미래 산업 등 다방면의 현안들을 연구해 왔으며 여기엔 이 전 지사의 관심사와 의지가 절대적으로 반영돼 왔다고 전해진다. 특히 남북관계에서 향후 강원이 상징적인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여시재에서의 그의 행보가 정치적으로도 도움이 되리란 것이다. 피선거권 상실 시기인 2014년 발간한 저서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 서두에서도 그는 “세계 역사에서 ‘대한문국(문명화된 대한민국)’이 되려면 첫째로 통일, 둘째로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 전 이사에 따르면 그는 최근 저출산·고령화와 부동산 문제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이 전 지사의 측근들은 노무현 정부 당시 그가 국정상황실장으로서 국정 운영 전반을 주도한 경험 역시 큰 강점으로 꼽는다. 황희 민주당 의원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까지 민주 정부가 3기에 이르는 동안 민주주의나 국토균형발전 이슈에서 가장 도약점이 된 때가 2기 노무현 정부였는데, (이 전 지사는) 이때 이 대부분을 디자인했던 인물로서 전략가 기질이 많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정치적 스킨십이나 대중 소통력 부분은 그의 약점으로 지적됐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다소 학구적이고 샤이(shy)한 성향이 강해 전형적인 참모 스타일에서 아직 채 벗어나지 못한 면이 보인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시절 이 전 지사와 함께한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이 전 지사는 예전부터 본인의 세를 만들지 않고 그저 자신의 아이디어에 따라 정치를 하는 스타일이어서 리더십은 다소 부족하다”며 “앞으로도 그의 주변 인물보다 그가 어떤 메시지를 제시하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전 지사가 향후 대선주자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할 경우, 현재 ‘여권 이낙연 대 야권 황교안’으로 굳어지는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전 지사가 비교적 젊은 리더 이미지를 갖춘 동시에 중도를 강조하는 만큼, 한국당 역시 그의 대항마로 젊고 개혁적인 이미지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지금보다 더욱 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전 지사가 총선에서 오 전 시장이 일찍이 출마 의사를 밝힌 서울 광진을에 출마할 경우 전국에서 가장 관심받는 빅매치가 성사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에선 승산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역에서 오래 민심을 얻어온 추 장관이 이 전 지사에게 지역구를 물려주는 모양새를 연출한다면 승부가 크게 어렵지 않을 거란 예상이다. 그러나 한국당 역시 ‘광진을만큼은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한국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이번 사면에 대해 우리 당에 비판적인 시선은 많지만, 이 전 지사가 일찌감치 도지사 자리로 갔었기 때문에 지금 여의도 정치권에서 그와 크게 척을 진 사이는 없는 것으로 안다. 때문에 이 전 지사의 등장을 당에서도 여러모로 신경 쓰고 있다”면서도 “다만 오세훈 전 시장과 광진을에서 맞붙게 될 경우 1년 가까이 바닥 민심을 훑어온 오 전 시장을 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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