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여론조사는 살아 있었다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4.19 10:00
  • 호수 1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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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총선의 ‘여론조사 무용론’ 어느 정도 불식시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역대 선거 사상 가장 높은 사전투표율(26.69%)을 기록했고, 최종 투표율은 66.2%였다. 최종 투표율 상승은 예견되었던 일이다. 사전투표율이 높았고 진영 간 대결 구도가 펼쳐지면서 유권자들의 투표 의지가 불타올랐다. 지금까지의 선거 중에서 이번처럼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결 구도가 치열한 적은 없었다. 선거 막판에는 조국 전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까지 선거판에 소환되면서 진흙탕 막장 선거 장면까지 연출했다. 총선 결과는 깜깜이 기간에 들어가기 전 선거 여론조사가 보인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선거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대체로 적중했다. 총선 여론조사가 투표 결과까지 잘 예측할 수 있었던 배경에 몇 가지 중요한 지표가 있었다.

4월15일 서울 영등포 다목적배드민턴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 사무원들이 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4월15일 서울 영등포 다목적배드민턴체육관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 사무원들이 개표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대통령 지지율과 안심번호가 정확도 높여

우선 선거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는 ‘대통령 지지율’이다. 선거는 구도다. 선거의 성격이 무엇인가에 따라 기본적인 판세는 결정된다.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에 치러지는 선거는 십중팔구 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야당은 ‘정권 심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예외였다. 지난 2월 코로나19 국면이 본격화하자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은 코로나19 대응과 직결되었다. 대구와 경북에서 확진자가 늘어나고 마스크 대란이 발생하면서 대통령 지지율은 추락하기 시작했다. 누가 보더라도 이번 총선은 미래통합당의 승리로 보였다. 그러나 유럽과 미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문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에 찬사가 쏟아지면서 국면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치솟았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4월7~8일 실시한 조사(전국 1000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응답률 12%,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 혹은 잘못 수행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잘하고 있다’는 긍정 평가 57%,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는 35%였다. 긍정과 부정 평가만을 놓고 100%로 환산하면 긍정적인 평가가 60% 정도 된다. 이를 300명 국회의원 수에 대입하면 180석 정도가 나오는데 이번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시민당이 얻은 의석과 거의 일치한다(그림①). 즉 대통령 지지율 영향이 절대적인 선거였다.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신뢰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결국 여론조사의 대통령 지지율은 정확했고, 그것을 기준으로 한 선거 여론조사 역시 틀리지 않았다.

총선 여론조사가 적중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안심번호’ 때문이다. 4년여 전 총선에서 예상이 빗나갔던 가장 큰 이유는 ‘표본 추출’ 문제였다. 지역구의 휴대폰 가상번호 사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서 유선전화 번호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대표성 있는 표본 추출이 어려웠다. 결국 지난 20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는 정확하지 못했고, 총선은 ‘여론조사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비켜가지 못했다. 실례로 정세균 후보와 오세훈 후보가 맞붙었던 종로구는 많은 여론 조사에서 서울시장 출신인 오 후보가 우세한 결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는 정반대로 정 후보의 낙승으로 끝났다. 종로구에서 주로 휴대폰으로 접근 가능한 30대와 40대의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이유다.

첨예한 ‘진영 대결’이 숨은 표를 최소화해

이번 선거에서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지역은 광진을 선거구였다. 공교롭게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한 지역이다. 발표가 가능했던 시점까지 이 지역의 여론조사 판세는 고민정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는 결과였다. 물론 공표된 조사는 안심번호(휴대폰 가상번호)와 일부 유선전화 표본 조사로 이루어졌다. 이 결과를 놓고 지난 대선 투표 후보를 묻는 질문에 문재인 후보가 많았다는 점을 거론하며 숨은 표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여론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투표 결과는 총선 여론조사 결과와 거의 대동소이했다(그림②). 안심번호를 사용하게 되면서 표본 추출의 대표성이 확보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마지막으로 ‘진영 대결’이 총선 여론조사의 적중률을 높인 이유가 된다. 이번 선거 내내 뚜렷하게 드러난 정서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진영 대결 프레임이다. 제3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가 거의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로 나타났다. 첨예한 진영 대결 구도는 고스란히 여론조사 결과로 반영된다. 양극단으로 나누어지는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처럼 여론조사에서 숨은 표로 불릴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적극 지지층이 전면에 부각된 선거였다. 그러므로 총선 여론조사 결과와 투표 결과가 매우 비슷한 모습이다(그림③). 왜냐하면 선거 여론조사는 적극 지지층의 응답 결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을 선거구로 가보자.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후보와 미래통합당 나경원 후보의 전쟁이었다. 이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의 여론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고, 나 후보는 미래통합당 지지층의 여론이 고스란히 반영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이 지역에서 더 높았다. 선거 결과는 이 후보의 당선이었다.

선거가 끝나면 선거 여론조사에 대한 평가로 홍역을 치른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총선은 여론조사의 무덤’이라는 신문 헤드라인이 달리고 여론조사 무용론을 침이 튀도록 역설한다. 글쎄, 반드시 그랬을까. 선거 여론조사는 조사 시점의 선거 판세 분석이고 참고 자료일 뿐이다. 몇 주 뒤 또는 며칠 뒤의 투표 결과를 예측하는 조사가 아니다. 그럼에도 입맛에 맞도록 여론조사를 요리조리 난도질한다. 선거 결과는 연령대별 투표율의 결과이고 전화조사에 응하지 않은 유권자들까지 포함된 결과다.

아무튼 이번 총선에서 선거 여론조사의 적중률은 높았다. 안심번호 사용으로 표본의 대표성을 높였다. 진영 대결 구도로 적극 지지층이 투표장에 가면서 응답 환경에서 숨어 있는 표를 감안할 필요조차 없었다. 외부 변수 또한 대통령 지지율이 절대적이었다. 거듭 강조하지만 선거 여론조사는 판세 분석을 참고하는 자료이지 투표 결과 예측 조사가 아니다. 출구조사도 그랬지만 여론조사 결과도 모두 다 완벽한 정확성이 확보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선거 판세를 살펴보는 데 선거 여론조사만큼 과학적인 수단은 없다. 정치적으로 과도한 해석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적어도 이번 총선에서 선거 여론조사는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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