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사랑상품권, 농축협 사용 제한 놓고 ‘논란’
  • 호남취재본부 조현중 기자 (sisa612@sisajournal.com)
  • 승인 2020.04.21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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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군·농축협·소상공인 ‘삼각 갈등’
“이제 풀 때 됐다” vs “아직 때가 아니다”
“해제할까, 말까”…고민하는 해남군

순항하던 전남 해남군의 지역상품권 발행사업이 얽혀들고 있다. 지역상품권인 해남사랑상품권의 사용처를 두고 지자체와 지역 협동조합, 소상공인 간에 갈등을 빚고 있다. 골간은 해남사랑상품권의 농·축협 판매장에서 사용을 계속 금지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다. 지역 농·축협 측은 지난 1년 동안 법 규정에도 없는 역차별을 당했다며 이제는 상품권 사용 제한을 전면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지역 소상공인과 사회단체는 유통공룡으로 변질된 농·축협에 상품권 이용을 허용할 경우 지역 상권 파괴나 교란이 불 보듯 뻔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애초 지역상공인 지원이라는 지역상품권 도입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양 측의 대립각이 커지면서 해남군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해남사랑상품권 ⓒ해남군
해남사랑상품권 ⓒ해남군

“역차별 당하고 있다” 해남군 성토

해남군은 지난해 4월 해남사랑상품권 발행 당시 농수축협 판매장에서의 사용을 제한했었다. 먼저 시행한 인근 강진군의 경우 농·축협 사용 제한을 하지 않자 지역 상품권의 60% 이상이 농·축협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자 화들짝 놀란 해남군이 지역농협협의회를 설득한데 따른 것이다. 그 결과 전남 도내 22개 시군 중에서 해남군만이 유일하게 사용처를 제한하게 됐다. 하지만 관내 11개 단위농협 조합장들로 구성된 지역농협협의회는 그동안 줄기차게 사용 제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 오고 있다. 이들이 이끄는 읍면 단위조합은 대형 유통업체인 하나로마트와 농자재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농협협의회 측은 발행 초기 1년만 시범적으로 시행해보자는 명현관 군수의 제안에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양보했다며 이제는 해제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또 해남읍 등 일부 상인들의 배만 불릴 뿐 면 지역 상권 활성화는 물론 농민 후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등 현실과 동떨어진 조치라고 항변하고 있다. 지역농협 한 관계자는 “일부 기동력있는 젊은 층들만 읍내에 나가 옷 구매 등에 상품권을 이용할 뿐이다”며 “심지어 연로한 일부 농민은 마땅한 사용처를 찾지 못해 ‘장롱’에 묵혀두는 통에 상품권 깡의 표적마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상품권 사용제한에 따른 농민고객의 소비경로 이탈로 해남읍농협 등 3곳을 제외하고 일선농협이 부도직전의 경영난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협의회는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상품권 환전 등 취급업무를 포기하는 한편 임직원은 물론 농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집회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농·축협, 본연 역할보다 잿밥에 눈멀어” 

해남사랑상품권 사용처 확대 반대 집회 ⓒ해남군소상공인연합회
해남사랑상품권 농축협 사용반대 기자회견 ⓒ해남군소상공인연합회

이를 바라보는 지역사회단체들의 시선은 차갑다. 여기엔 지역농협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 판단이 깔려있다. 이들은 집단행동에 나섰다. 해남군소상공인연합회·YMCA ·공무원노조·해남군청 비정규직노동조합·민중당 해남군위원회·해남군농민회는 지난 8일 농협중앙회 해남군지부 앞에서 해남사랑상품권 농·축협 사용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농·축협이 상품권을 갖고 지역 소상공인들과 경쟁하는 건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해남군 최대의 경제조직이라 할 수 있는 농·축협이 농민수당 도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역상품권의 농·축협 사용을 지속적으로 요구, 농민들을 부추겨 군을 압박해 왔다”면서 “구매사업, 판매사업 등 농·축협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 보다는 잿밥에 눈이 멀어 당초 취지와 다르게 역행하는 농·축협의 모습에 매우 실망스럽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농·축협 사용 제한을 하지 않은 타 시·군의 경우 지역 상품권의 60% 이상이 농·축협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지역화폐 발행 취지가 무색해진 경우가 현실인 만큼 해남군이 해남사랑상품권의 농·축협 사용을 허용하게 되면 지역경제 선순환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농·축협 사용 허용은 본래 목적인 소상공인 지원 취지와는 맞지 않아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해남군 또한 어떠한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역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상공인 살리자’ 도입취지 퇴색 우려

해남군소상공인연합회도 주민들의 소비 경로가 자리잡을 때까지 아직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특히 논의 시기의 적절성 여부를 문제 삼고 있다. 정우선 해남소상공인연합회장은 ”가뜩이나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역 소상공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하필 이 시기에 시비를 벌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추가 반대집회를 열 계획이지만 코로나19 전염을 우려한 경찰 측의 집회불허로 열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처럼 양 측의 입장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평화로운 해결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중간에 낀 해남군은 양 측의 대립각이 커지자 해법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군은 농협에 비료·농약 등 농자재에 한해서 상품권 사용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해남군 관계자는 “당초 합의 도출과정에서 규제 대상이 아닌데도 정무적 판단으로 조합장들의 협조를 이끌어 낸 만큼 농협에 대한 제한을 계속 유지할 명분은 없다”며 “농민수당으로 풀리는 돈이 70~80억원인데 비해 해남사랑상품권 발행액이 1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여 소비통로 문을 넓힌다고 해도 소상공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계속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것은 농자재 부분의 해제 가능성은 열어둔 것이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입장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다음 달 중에는 사용처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해남에서 지역상품권 사용처를 놓고 벌이지고 있는 논란은 역설적으로 해남사랑상품권의 ‘매출 파워’가 그만큼 막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역상품권 발행 사업은 민선 7기 해남군의 핵심 소상공인 지원시책이다. 이는 지역자금의 관외 유출을 막고 지역 내 소비촉진을 통해 소상공인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난해 4월 17일 150억원 규모로 발행을 시작한 해남사랑상품권은 군이 ‘지역경제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자평할 정도로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해 연말 기준 8개월여 만에 149억원을 판매, 전남도내 최단 기간 최대 판매액을 기록했다. 올해는 더욱 날개를 달아 4개월 만에 381억여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다. 군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올해 목표 발행액을 당초 300억원에서 1050억원으로 대폭 증액했다. 

해남사랑상품권 발행 선포식 ⓒ해남군
해남사랑상품권 발행 선포식 ⓒ해남군

‘중간에 낀’ 해남군, 논란 번질까 촉각

현재까지 등록된 해남사랑상품권 가맹점은 음식점, 옷가게, 이·미용실, 병원, 약국, 주유소, 택시 등 2660곳이다. 이는 영광군 1832곳, 완도군 1722곳, 무안군 1720곳, 나주시 1621곳, 화순군 1463곳에 비해 가맹점 수가 2배에 달한다. 도입 취지에 걸맞는 성과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해남사랑상품권 구매 및 환전 내역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만4231명이 단체 306곳에서 530여억원을 구매해 도·소매업, 음식점, 전통시장 등에서 사용했다. 이는 일반적인 생활비 지출 수준과 유사해 해남사랑상품권이 군민 실생활에서 중요한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해남사랑상품권이 출시 1년 만에 지역경제 활성화의 중요한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게 해남군의 자평이다. 명현관 해남군수는 발행 1년을 맞아 “지역자본의 역외 유출을 방지하고 소상인 매출 증대를 위해 해남사랑상품권 발행을 시행한 이래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남군은 사용처 논란이 자칫 지역상품권 발행 사업 자체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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