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여 무상급식비, 학생들에게 안 가고 딴 데로?
  • 인천취재본부 주재홍·이정용 기자 (jujae84@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4 10:00
  • 호수 1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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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등 일부 광역단체, 휴교기간 무상급식비 예산 전용 의혹 제기

무상급식은 2001년 경기도 과천시가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처음 도입했다. 이를 계기로 2011~14년 전국의 초·중·고교로 전면 확대됐다. 올해 5월을 기준으로 전국 17개 광역시·도 전체가 초·중학교에서 무상급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중 13개 시·도는 고등학교도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 무상급식의 취지는 헌법상 보장된 모든 국민의 교육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국민들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일부 시·도에서는 무상급식에서 더 나아가, 교육에 필요한 수업료 지원과 도서 구입비 등도 무상 지원하는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인천시 남동구 논현고등학교 교사들이 고3 학생들의 등교를 하루 앞둔 5월19일 급식실에서 방역을 하고 있다. ⓒ인천시교육청
인천시 남동구 논현고등학교 교사들이 고3 학생들의 등교를 하루 앞둔 5월19일 급식실에서 방역을 하고 있다. ⓒ인천시교육청

7개 시·도, 학생 1인당 10만원 이상 지원

올해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전국의 학교들이 휴교하면서 학생들을 위한 무상급식이 40~50일간 멈췄다. 농림축산식품부와 17개 시·도는 ‘학생 가정 농산물 꾸러미’ 사업에 잔여 급식비를 활용하기로 했다. 급식 중단으로 판로가 막힌 농가를 돕고, 급식을 먹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복지 차원이었다. 하지만 일부 시·도에서는 ‘학생 가정 농산물 꾸러미’ 사업을 빌미로 잔여 무상급식비를 모두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이 사용하지 않은 잔여 무상급식비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인천시와 인천 내 10개 군·구 등은 최근 잔여 무상급식비 133억원을 세입으로 잡아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잔여 무상급식비를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사용할 수도 있는 길을 열어뒀다는 의미여서 논란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올해 2월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자 3월초 개학을 연기했다. 이어 3월23일부터 전국의 초·중·고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약 572만5000명에 달하는 전국의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이 등교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가 비교적 잠잠해진 5월20일 고교 3학년 학생들이 등교를 시작한 후 27일부터 유치원과 초·중·고교 등의 교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전국 17개 광역시·도교육청의 무상급식비가 고스란히 남게 됐다. 인천시의 경우 유치원생의 1인당 급식비는 약 2400원이고, 초등생은 2340원, 중·고교생은 2890원이다. 이를 감안하면 전국 시·도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휴교령 기간의 학생 1인당 무상급식비는 약 8만~10만원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잔여 무상급식비를 학생들에게 모두 되돌려준 시·도가 8만~10만원을 ‘농산물 꾸러미’와 ‘재난지원금’으로 지급했다.

시사저널이 농식품부로부터 입수한 ‘학생 가정 농산물 꾸러미 지역별 추진현황’에 따르면, 전국 17개 시·도는 올해 6월까지 잔여 무상급식비 4322억5000만원을 들여 초·중·고교생들에게 쌀과 온누리상품권, 농협몰포인트, 재난지원금 등 현물이나 쿠폰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는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들의 소득 안정을 도모하고, 가정에서 학습하는 학생들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추진됐다. 여기에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고려한 것이다. 

제주는 잔여 무상급식비뿐 아니라 학생 복지에 사용될 예산 전부를 ‘교육희망지원금’ 명목으로 학생 1인당 30만원씩 지급한다. 이는 전국 17개 광역단체의 학생 지원금 중 가장 많은 규모다. 제주는 학생들의 등교가 중단되면서 남게 된 무상급식비 23억원과 방역비 68억원, 원격수업환경 조성비 52억원, 학교 행사 취소와 방과 후 활동비 등 총 240억원을 모두 모아 재난지원금 형식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앞서 제주는 농식품부가 권고한 ‘학생 가정 농산물 꾸러미’ 사업과 비슷한 ‘지역 농산물 소비촉진 장려사업’을 올해 3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울산과 부산은 학생 1인당 1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학교 휴교에 따른 잔여 무상급식비와 교육청의 예비비 등 자체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서울과 대전, 세종, 경기는 학생 1인당 10만원 상당의 농산물 꾸러미와 농협몰포인트를 지급할 계획이다. 울산·부산·서울·대전·세종·제주·경기 등 7개 시·도는 등교가 중단되면서 남게 된 무상급식비 전액을 학생들에게 되돌려주는 셈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유치원 등원을 하루 앞둔 5월26일 충남 아산 배방유치원에서 급식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유치원 등원을 하루 앞둔 5월26일 충남 아산 배방유치원에서 급식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천 등 10개 시·도는 5만원대 이하에 그쳐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인천을 비롯해 대구·광주·전남·전북·충북·경남·강원·충남 등 10개 시·도는 학생 1인당 3만~5만5000원을 지원한다. 이미 전남은 4만원 상당의 농산물 꾸러미를 전달했고, 전북도 3만2000원 상당의 농산물 꾸러미를 지원했다. 전북 관계자는 “휴교령으로 일선 학교들의 수업일이 줄어들면서 잔여 급식비가 남게 됐다”며 “여름방학 때 수업을 진행한다면 사용하지 않은 무상급식비를 써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3만2000원 상당의 농산물 꾸러미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전남교육청 관계자는 “일부 학교가 조기 개학하면서 정상적으로 무상급식비를 지출했다”며 “농산물 구입 단가가 평소보다 높아져 4만원 상당의 농산물 꾸러미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강원은 5만5000원, 충북은 5만원, 광주는 3만5000원, 인천은 3만3000원, 경남·경북·충남은 3만원 상당의 농산물 꾸러미를 학생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대구는 온누리상품권 3만원을 지급한다.  특히 인천시의 경우, 초·중·고교생 31만8000명에게 공급돼야 할 234억원 상당의 무상급식비가 남게 됐다. 인천시는 이 중 101억3000만원을 오는 6월초쯤 학생 1인당 친환경쌀 10㎏을 공급하는 ‘쌀 꾸러미’ 사업에 투입할 예정이다. 학생 1인당 소요되는 예산은 배송비를 포함해 약 3만원이다. 남아 있는 133억원 상당은 인천시와 인천시교육청, 10개 군·구에 무상급식비 분담 비율에 맞춰 오는 6월 진행하는 추경에 편성하기로 했다. 이는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편성된 예산을 다른 곳에 사용하겠다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학생 1인당 10만원 이상을 지원하는 시·도에 비해 3만~5만5000원을 지원하는 시·도들이 잔여 무상급식비를 전용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무상급식비가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편성된 만큼, 남아 있는 예산도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정호 인천시의원은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돼야 할 예산이 다른 용도로 쓰인다면, 행정사무조사 사안”이라며 “인천시와 인천시교육청, 군·구에 133억원의 예산 전용에 대한 해명을 요청하고, 학생 복지에 쓰일 수 있도록 교육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로 남게 된 무상급식비를 세입으로 잡아놓았다”며 “추경 편성 여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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