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위험을 이겨내는 투자법
  • 홍춘욱 EAR 리서치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0 17:00
  • 호수 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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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주’와 ‘선진국 자산’을 담아라

2020년 5월 소비자물가 -0.3%. 지난 6월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5월 소비자물가 동향’ 보도자료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0.3%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은 지난해 9월 0.4% 하락해 사상 처음 마이너스를 기록한 이후 8개월 만이다. 역사상 두 번째 일이 벌어진 셈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급락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석유류 가격의 하락 때문이다. 그러나 식료품과 에너지 제품의 물가를 빼고 보더라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단 0.1%에 그치고 있다. 1999년 12월(+0.1%) 이후 가장 낮다. 즉, 최근의 물가 하락을 유가 급락에 따른 일회성 사건으로 보기 어려운 면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지난해부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자주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디플레이션 위험’이 높아진 것은 우리 경제가 불황의 늪에 빠진 탓이 크다. 오른쪽 아래 ‘그림’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갭(Gap)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GDP 갭이 2012년 이후 마이너스로 전환한 후 소비자물가도 정책 당국의 목표 수준(+2%)을 밑도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GDP 갭은 실제 GDP와 잠재 GDP의 격차를 나타낸다. 특히 경제 내 ‘과잉 재고’가 존재하는지 잘 보여준다.

‘디플레 악순환’ 빠진 韓, 더 깊은 日

실제 GDP는 말 그대로 경제의 실제 수요를 의미한다. 반대로 잠재 GDP는 일종의 생산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자동차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이 자동차 회사는 연간 100만 대의 생산능력, 즉 생산 캐파(Capacity)가 연간 100만 대에 이르는 꽤 큰 회사다. 그런데 경기가 좋아 120만 대의 주문이 왔다면? 아마 재고가 동나고 또 몰려드는 주문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가격을 인상할 것이다. 경제 전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GDP 갭은 플러스를 기록하게 된다. 결국 물가는 상승할 것이다.

반대로 연간 주문량이 고작 80만 대에 그친다면 어떻게 될까? 20만 대에 이르는 재고를 처분하기 위해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더 나아가 파트타임 근로자를 해고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판매 부진이 2년 혹은 3년간 이어지며 재고가 계속 쌓인다면 어떻게 될까? 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 여건마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경제가 이런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지난 8년에 걸쳐 재고가 계속 쌓인 상황인데, 코로나19 충격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에 나서면서 경제 전반의 수요가 굉장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대로 디플레 압력을 방치한다면 우리 경제도 지난 30년 동안의 일본처럼 ‘디플레 악순환’에 빠져들 위험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여기서 ‘디플레 악순환’이란 물가 하락에 대한 기대로 소비자들이 제품 구입을 미루며 이게 다시 기업의 파산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의 수요가 위축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추월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잘한 탓도 있지만, 일본 경제가 ‘디플레 악순환’의 수렁을 빠져나오지 못한 영향도 크다고 볼 수 있다.

디플레 위험이 부각되는 시기에 각 가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필자가 보기에 디플레 시대의 핵심적인 투자 키워드는 다음의 두 가지다. 하나는 ‘성장’, 다른 하나는 ‘해외’다.

먼저 성장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디플레 위험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가운데 정책 당국은 적극적인 경기부양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정책 중 가장 우선적으로 금리 인하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금리 인하는 주식시장 참가자들의 시선을 ‘성장주(Growth Stock)’로 돌리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성장주란 현재의 자산 가치에 비해 미래의 성장성이 높아 시장 평균에 비해 비싸게 거래되는 기업들을 뜻한다.

디플레 국면에 성장주가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가치는 미래에 벌어들일 수익을 합한 것이다. 미래의 수익을 현재의 가치로 계산하기 위해 흔히 ‘이자율’이 사용된다. 그런데 디플레 시대에는 이자율이 제로 수준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장금리가 10%일 때는 내년에 벌어들일 1만원의 현재가치는 9000원으로 볼 수 있지만, 금리가 제로 수준일 때는 1만원으로 계산될 수 있다. 따라서 미래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은 금리가 낮을 때 두각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성장 잠재력’이라는 부분도 디플레 시대에 투자자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인이다. 디플레로 대부분의 기업이 제품 가격을 인하하고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매년 매출이 늘어나는 기업이 있다면 이는 매우 ‘희소한’ 존재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따라서 디플레 국면에는 성장주 투자 비중을 예전보다 높일 필요가 있다.

선진국 자산도 ‘올인’보다는 ‘분산투자’

디플레 시대 투자의 두 번째 키워드는 ‘해외’다. 만에 하나 디플레 여건이 장기화된다면, 우리 원화 가치는 어떻게 될까? 외국인 투자자들은 성장 잠재력이 떨어진 한국에 그냥 투자할까? 아니면 투자금을 회수할까?

이 질문을 던져보면 금방 환율의 방향을 예상해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정부도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벤치마킹해 적극적인 원화 약세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디플레에 맞서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인하하고 재정지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원화 자산 투자의 매력이 떨어진다면, 이는 한국 경제 입장에서도 크게 나쁠 게 없다. 왜냐하면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야 외채가 많아 환율 상승의 충격이 컸지만, 지금은 순채권 국가로 전환했기에 환율 상승으로 인한 해외 투자자금의 ‘환차익’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환율 상승으로 수입물가가 오르며 디플레 위험이 완화되고, 수출기업의 경쟁력도 개선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따라서 미국 등 선진국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려 나가는 것은 디플레를 대비한 ‘보험’으로서 나쁜 선택이 아닐 것이다. 물론, 국내에 비해 투자 정보가 부족하기에 개별 종목에 ‘올인’하기보다는 시장 전체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보다 더 안정적인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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