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연·민우회·정의연은 여성 정치인 ‘3대 등용문’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6.08 08:00
  • 호수 1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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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 논란 일으킨 ‘윤미향 두둔’에 일부 여권 지지층 반발도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5월29일 당선인 신분으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향한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나섰지만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정치권 안팎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른바 ‘윤미향 해법’을 놓고 여권 지지층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모습이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는 윤 의원 사퇴를 촉구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윤 의원을 감싸면서 공정과 정의가 훼손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인순 민주당 최고위원이 윤 의원과 직접 접촉하며 해명에 적극 개입한 사실이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비판의 목소리는 여권 내 여성단체 출신 인사들로까지 옮겨가고 있다.

남 의원이 윤 의원을 적극 돕는 배경에는 여성운동을 함께한 인연 때문이란 시각이 많다. 남 의원은 국내 대표적 여성단체인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에서 사무국장-사무처장-공동대표를 맡은 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비례대표 9번을 받고 국회로 들어왔다. 남 의원은 여연 대표 시절인 2008년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연의 전신)의 수요시위를 ‘올해의 여성운동상’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윤미향 사태의 한편에 젠더 갈등도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일부 강성 친문 지지자들은 “당이 일부 여성단체 출신 의원들의 목소리에 휘둘리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5월30일 민주당 게시판에 글을 올린 한 권리당원은 “여성운동계는 민주진보진영에서는 상당한 축으로 기능하며 그 수장들의 눈부신 정치적 자리 획득과 카르텔을 형성했다. (중략) 그나마 미약하던 내부 성찰 즉, 반성적 내부 비판은 아예 상실됐다”고 비판했다.

윤미향 민주당 당선인이 5월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 활동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윤미향 민주당 당선인이 5월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 활동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DJ, 1987년 이후 여성 정치인 등용

한국 여성운동은 민주주의 역사와 함께한다. 여연은 민주화 열기가 한창이던 1987년 출범했다. 21개 진보적 여성운동단체들이 한데 모여 만든 단체가 바로 여연이었다. 이듬해 열린 13대 총선 때부터는 현실정치 참여에 적극 나섰다. 1세대 여성운동가인 이희호 여사와 함께 정치활동을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서 한국민중신학의 선구자이자 민주화 인사인 안병무 한신대 교수의 부인 박영숙 여연 부회장을 평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전격 발탁했다. 이후 여연을 비롯해 여성운동단체는 진보정치를 떠받드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초대 대표인 이우정 한신대 교수는 14대 의원(민주당)으로 활동했으며 이미경 공동대표(4대)는 15대 때 국회에 들어가 19대까지 내리 5선을 지낸 뒤 현재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대표와 함께 여연 대표를 지낸 한명숙 전 총리는 17·19대 의원을 비롯해 초대 여성부 장관, 환경부 장관 등을 지냈다. 정치권에선 한 전 총리를 ‘친문계의 대모’로 평가하고 있다.

6대 공동대표인 이경숙 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은 17대 때 열린우리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비례대표의원으로 활동했다. 또 남인순 의원은 이 단체의 8대와 9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활동한 권미혁 전 의원도 여연의 10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18·20대 의원을 지낸 박선숙 전 의원은 여연 정책위원, 17대 의원인 이승희 전 의원은 여연 정책실장을 맡았다. 20대에 이어 이번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정춘숙 민주당 의원도 여연 여성인권위원장 출신이다.

정부로 간 이도 많아 10대와 11대 공동대표를 지낸 김금옥 전 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을 지냈다. 지은희(5·6대), 정현백(7·8대) 전 공동대표는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여성부 장관에 올랐다. 남인순 의원과 함께 9대 공동대표를 지낸 박영미 대표는 이번 21대 총선에서 부산 중·영도 출마를 준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여성민우회(민우회)도 여성 정치인을 다수 배출한 산실이다. 민우회 출신 정치인으로는 18대 의원을 지낸 최영희 전 부회장과 전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낸 유송화 정책실장, 문재인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낸 김은경 전 민우회 환경위원장이 꼽힌다. 20대 국회에서 민생당 소속으로 활동한 박주현 전 의원은 민우회에서 정책자문위원을 지냈다. 18대부터 21대까지 내리 네 번 당선된 김상희 민주당 의원도 민우회 공동대표 출신이다. 윤미향 의원을 배출한 정의연·정대협 출신 공직자는 이미경·이경숙 전 의원과 지은희 전 장관 등이 있다.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활동한 강혜숙 전 의원은 정대협 실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도 정대협 활동가 출신이다.

청와대 비서관·장관으로 가는 경우도 많아

여성단체 출신들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권 내에 분명 존재한다. 2017년 탁현민 청와대 선임행정관과 관련해 논란이 불거졌을 때 정현백 여성부 장관이 탁 행정관의 사퇴를 건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잠시 갈등이 불거졌었다. 탁 행정관은 2007년 쓴 책에서 여성 혐오적 관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성계의 사퇴 압박을 받은 끝에 이듬해 청와대를 나왔다. 한때 강성 친노 블로거로 활동하다 지금은 반문(反文)으로 돌아선 시사평론가 유재일씨는 2017년 말 펴낸 책 《문재인과 친노죽이기》에서 이 사태를 지적하면서 “여성계가 자신들의 득표력보다 과도하게 정치적 지분을 챙기고, 대중이 원치 않는 영향력을 과대 대표된 상태로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작 정의연과 관련된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김상희 의원은 정의연 회계부정 논란과 관련해 “시민단체의 경우 회계 등을 기업처럼 전문가가 붙어서 수행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며 두둔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일부 여권 인사들의 시각에 대해서는 함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한 단체들조차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양순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정의연과 윤미향이 권력화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면서 “정부의 위안부 지원 예산 상당수가 정의연으로 몰리면서 오늘의 문제를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자신의 SNS에 “여성단체에서는 처음부터 철저히 ‘진영’의 관점에서 이 문제에 접근했다. 여성단체들이 우르르 윤미향과 한패가 됐고, 그로써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은 △문제 상황에 대한 인지 △그에 기초한 새로운 운동의 노선과 방식 △개혁을 추진할 주체 등 세 가지가 다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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