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하나은행 수뇌부,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 중 골프·술자리
  • 김종일·오종탁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0 14:00
  • 호수 159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술자리 동석한 한 지점장 쓰러져 입원…회사 차원 진상조사·징계 전무

하나은행 최고위급 임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온 나라에서 진행되던 중 모여 골프를 치고 술자리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는 정부 차원에서 코로나19 대응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한 이후 국민 모두가 방역망에 구멍이 나지 않게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때였다. 

시사저널이 하나은행 안팎을 취재한 결과를 종합하면 하나은행의 A부행장, B부행장, C전무, D전무 등 핵심 임원들은 지난 5월2일 토요일에 함께 모여 골프를 쳤다. 이들은 이후 경기도 모처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술을 곁들여 식사했다. 이 자리에 동석했던 한 지점장이 사고로 쓰러지는 불상사까지 발생했지만, 하나은행 측은 진상조사나 재발 방지책 마련 등 어떠한 후속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하나금융그룹 명동 사옥 ⓒ시사저널 박정훈
하나금융그룹 명동 사옥 ⓒ시사저널 박정훈

회식 등 단체활동 금지 강조했지만 무용지물

앞서 하나은행은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대비해 전 직원에게 사회적 거리 두기를 철저히 준수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두 차례 공지한 바 있다. 지난 2월말 ‘(필독 공지) 코로나19 조치사항 안내’라는 이름으로 공지된 공문에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단체활동을 자제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다수가 모이는 회의, 연수 등으로 인한 감염 우려에 따른 단체활동 지양’ ‘회식 금지, 단체 모임 금지’라는 문구가 명시됐다. 

하나은행은 3월초 비슷한 내용의 공지를 한 번 더 했다. 코로나19 확산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유의사항을 공문과 게시판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안내했음에도 이를 준수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문서 제목이 ‘코로나19 대비 회의 자제 및 회식 등 단체활동 금지 재안내’다. 공문에는 재차 ‘회식 및 동호회 등 단체활동 금지’가 적시됐다. 직원 간 감염 위험 차단을 위해 회의 및 연수를 적극 자제하라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하나은행은 이 공문에서 회사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는 구체적이면서 분명한 경고도 내놓았다. 회식 및 동호회 등 단체활동과 같은 금지사항을 어긴 것이 확인되면 해당 영업그룹 및 본부부서 운영 리스크 성과평가 시 차감(사례별 3점 차감) 항목으로 반영하겠다는 내용을 적시한 것이다. 하지만 타의 모범이 돼야 할 고위 임원들은 정작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에 골프와 술자리를 즐긴 사실이 드러나면서 하나은행 전사 차원의 방역 노력도 무색해졌다.   

5월2일 당시 골프 후 이어진 식사자리에서는 불상사까지 발생했다. 이 자리에는 골프를 친 네 명의 고위 임원 외에도 E지점장과 지역대표로 불리는 지역영업본부장 몇 명이 더 참석했다. E지점장은 2층 식당에서 1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계단으로 내려가던 중 쓰러져 머리를 바닥에 부딪쳤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바닥에 누워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E지점장을 발견한 한 손님이 이런 사실을 식당 직원에게 알렸다. 식당 직원은 곧장 119에 신고했고, 이후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E지점장을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 E지점장은 한 달이 넘은 6월초까지도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 

하나은행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행동요령을 공지한 공문 ⓒ시사저널 임준선
하나은행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행동요령을 공지한 공문 ⓒ시사저널 임준선

하나은행 “E지점장이 보고 위해 먼저 연락”

이와 관련해 하나은행 측은 “고위 임원들이 휴일에 E지점장을 불러낸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E지점장이 보고 등 공적 업무를 위해 먼저 고위 임원에게 연락해 식사 자리에 찾아갔다는 설명이다. 

E지점장은 사고 후 5월21일자로 다른 자리로 발령이 났다. 하나은행이 당시 사고를 파악하지 않고선 낼 수 없는 인사다. 하지만 이 불상사와 관련해 하나은행 내부에서는 그 어떤 진상조사도 실시되지 않았다. 조사가 없었으니 징계나 재발 방지책 마련도 전무했다. 시사저널이 하나은행에 확인한 바로도 하나은행은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에 고위 임원들이 회사 지침을 어긴 것이나 E지점장의 불상사 등에 대해 진상조사 등을 실시한 적이 없다. 

시사저널은 해당 사고와 관련해 당시 동석했던 고위 임원들에게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입장을 물었지만 대부분 어떤 대답도 내놓지 않았다. D전무만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날 먼저 자리를 떠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다. D전무는 ‘회사 차원의 조사를 받은 게 있느냐’는 질문에는 “이게 제가 조사받을 사안인가요?”라고 되물었다. 

시사저널은 지성규 하나은행장에게도 공식 입장을 질의했지만 “홍보팀에 연락하면 정확히 알려드릴 것”이라고만 밝혔다. 하나은행 홍보팀 관계자는 “당시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거의 끝나가던 시점”이라면서도 “정부가 권고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어긴 점은 비난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다만 하나은행은 E지점장의 사고와 관련해서는 회사 측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하나은행 내부 일각에서는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E지점장의 동료들이 동요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하나은행 한 관계자는 “전 직원이 회사 방침에 따라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키려고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 시기에 정작 회사의 고위 임원이라는 사람들이 모여 골프를 하고 술자리를 가졌다. 마땅히 비난받고 응당한 징계도 받아야 한다”면서 “그런데 정작 회사에서는 그 어떤 조치도 내놓지 않고 있다. 과연 고위 임원이 아니라 말단 직원이 회사 지침을 이렇게 어겼더라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내부 관계자는 “휴일에도 상사를 찾아가 일을 해야만 하는 사내 문화가 과연 지속 가능하며, 정상적인 것인지 이번 기회에 꼭 고위층이 되돌아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회사 설명대로라면 E지점장은 업무 도중 불상사를 당한 것으로 산재 처리가 돼야 마땅한 일”이라면서 “업무 도중 사람이 다쳤는데 어떠한 조사도 없이 그저 개인의 일로 치부하고 넘기려 하는 회사가 무섭고 진절머리 난다”고 말했다.

은행 외부의 시각도 다르지 않았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에 골프를 하고 여러 명이 모여 회식 자리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온 나라가 화상회의 등 비대면으로 일을 하는데 왜 하나은행의 최고위층만 유독 정반대로 했는지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하나은행은 취재가 계속되자 은행 측의 협조로 E지점장이 재활의학과가 있는 더 큰 병원으로 옮긴다고 전해 왔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