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연 차명계좌 폭로자 “盧재단, 유시민 비판하자 징계위 열어”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5 16:00
  • 호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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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명계좌 운용한 노무현재단 전 직원 김하니씨…"대의 위한 원칙 무시 싫었다"

“거기는 사자바위고요, 맞은편의 저쪽이 부엉이바위예요. 저 위에서 사진 찍으면 마을 전경을 한번에 다 담을 수 있어요. 제가 몇 장 갖고 있는데 좀 보내드릴까요? 아, 저작권을 노무현재단이 갖고 있어서 힘들려나….”

김해 봉하마을 이곳저곳을 소개하는 김하니씨(35)의 설명엔 머뭇거림이 없었다. 장소에 얽힌 역사를 말할 땐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했다. 김씨는 봉하마을 관련 사업을 기획하는 노무현재단에 몸담은 바 있다. 또한 재단 산하 연구소인 한국미래발전연구원(미래연) 재직 시절 차명계좌를 운용한 장본인이다.

시사저널은 김씨로부터 차명계좌 거래 내역 등을 입수해 지난 5월29일 단독 보도한 바 있다.(1598호 “[단독] 윤건영, 법인통장 별개로 ‘직원통장’ 만들어 운용했다” 기사 참조) 파장은 컸다. 보도 이후 윤 의원은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고발됐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김씨를 허위로 인턴 등록시켜 월급을 준 혐의로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6월8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만난 김하니씨. 마을 내 부엉이바위를 배경 삼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6월8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만난 김하니씨. ⓒ시사저널 이종현

“당신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첫 보도가 나가기 전부터 김씨는 “나도 공범”이라며 자신의 실명을 공개해도 좋다고 밝혔다. 단 인터뷰는 극구 사양해 왔다. 그러던 김씨가 “이젠 못다 한 얘기를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며 시사저널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기자는 6월8일 김씨를 봉하마을에서 만났다. 그는 노무현재단에서 2018년 말부터 일하다 올해 3월 퇴사했다. “재단 내에 만연한 부조리를 참지 못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 부조리란 뭘까.

“직격타는 이번 코로나 사태 때다. 2월 중순 신천지 교인 중 확진자가 발견되면서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됐다. 곧 대구·경북을 향한 혐오가 들불 번지듯 퍼졌다. 이런 상황에서 영향력 있는 스피커들은 혐오 분위기를 방임하거나 조장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 지역감정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하던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대구·경북 지자체장이 신천지 폐쇄 안 하고 애걸복걸한다’는 식으로 얘기했다(2월25일 유튜브 ‘알릴레오’ 생방송 중). 너무 창피하더라. 그 지역에도 재단의 후원 회원들이 있고, 후원하지 않더라도 심적으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아니, 다 떠나서 국민의 생사가 걸린 문제 앞에서 그런 말을….”

말이 끊겼다. 김씨가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가명으로 가입했던 페북(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유시민 이사장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2주 뒤에 노무현재단 측에서 해당 글을 비롯한 몇몇 게시물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누군가가 내 페북을 장기간 캡처해 제보했던 것이다. 징계위에 불려갔다. 이 과정에서 ‘하니씨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나는 튕겨져 나온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상의 권고사직으로 받아들였다. 금요일에 사직서를 냈다. 다만 ‘징계위 결과를 보고 인수인계를 마무리한 뒤 떠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틀 만인 일요일에 사직서가 수리됐다고 들어서다. 노무현재단과의 관계는 그걸로 끝이었다.” 

처음에 김씨는 유 이사장에 대해서만 언론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 4월초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의 계좌 내역이 공개된 걸 보게 됐다. 이 전 대표는 유 이사장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씨는 이때 미래연 차명계좌를 떠올리게 됐다. 미래연은 친노(親盧) 인사들의 거점과도 같았던 곳이다. 김씨는 노무현재단에 입사하기 9년 전인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이곳에서 일했다. 그는 “미래연의 설립 배경을 모르면 왜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6월8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만난 김하니씨. ⓒ시사저널 이종현

"노무현재단의 무가치한 울타리 경쟁"

“노무현 대통령은 늘 민주주의의 발전상을 모색하고자 했다. 하지만 배타적이고 세력 다툼을 일삼는 민주당의 태도가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했다. 이를 극복하고자 미래연을 만들었다. 여기서 연구진들은 다양한 가치와 정책을 연구했다. 포용적이면서도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이후 미래연을 품은 노무현재단이 그 가치를 이어갈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나의 페북 글을 토대로 내 편이니 네 편이니 하며 편을 갈랐다. 무가치한 울타리 경쟁 아닌가.”

갈등의 징조는 미래연에서도 엿보였다고 한다. 김씨는 “미래연에 처음 들어갔을 때 회삿돈은 부족했지만 회계 처리만큼은 분명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실장들이 월급을 못 받을 때는 법인통장에서 차입금으로 잡아 우선 변제 대상에 올려뒀다. 

틈이 생긴 건 2011년이었다. 기획실장으로 부임한 윤건영 의원이 그해 5월 김씨에게 “하니씨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라”라고 지시한 게 시작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불법인 걸 알았지만 거절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윤 의원이 권위적이진 않지만, 짜증 섞인 어투로 감히 반박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고 했다. 

그렇게 윤 의원은 법인통장과는 다른 차명계좌만의 회계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 안의 거래 내역은 윤 의원에게 직보됐다. 김씨는 “어느새 나도 차명계좌를 제2의 미래연 통장처럼 여기게 됐다”고 했다. 

 

“오만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김씨는 2011년 12월 미래연에서 나왔다. 왜 그랬을까. 대화 중 ‘노무현의 정신’이라는 말이 나오자 김씨는 다소 정색하며 “노무현의 정신이란 말 자체가 우상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은 자신의 가치를 추구했을 뿐”이라며 “그 가치를 승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소위 친노들이 ‘대의를 위해 원칙은 무시해도 된다’고 여기는 게 싫었다”고 밝혔다. 

지난 5월23일,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11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 김씨도 있었다. 일반 추모객이자 노무현재단의 전 직원 신분으로. 그런데 몇몇 재단 직원들은 김씨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한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어요.” 김씨가 읊조렸다. 그는 노무현 묘역을 가리켰다. 목소리엔 다시 힘이 들어갔다. 

“내가 왜 그 수모를 겪고도 추도식에 갔는지 말해 줄까요? 노무현 당신 명예회복 시켜주려고요. 색안경을 쓴 사람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나쁜 사람들은 그들에게 색안경을 씌운, 노무현의 이름을 악용하는 일부예요. 우리가 완벽하리라 생각했던 문재인 정부도 완전체가 아닙니다. 자기 잣대로 선악을 가르는 오만한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저도 여기까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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