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을 찾다 [최보기의 책보기]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6.1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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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자의 기쁨》ㅣ박성기 지음ㅣ마인드큐브 펴냄ㅣ388쪽ㅣ1만8000원
《여행은 재즈다》ㅣ강성일 지음ㅣ말글 펴냄ㅣ255쪽ㅣ1만4000원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이 선언됐던 즈음,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코로나19가 잔인한 바이러스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먼저 전염 시킨다”며 개인 방역수칙을 잘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코로나19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고, 사람들의 피로감 역시 극에 달했다. 이 피로감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반가운 책 두 권을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여행은 걸으면서 하는 독서,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라는 명언과 딱 맞아떨어지는, ‘여행을 읽는 책’들이다.

공교롭게도 지난주 ‘최인아 책방’ 대표 최인아씨의 ‘길을 잃었거든 홀로 오래 걸어 보시라’는 동아일보 칼럼 제목이 눈에 쏙 들어왔다. 14년 전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중 마침내 길을 찾았다는 회고담이었다. 이 칼럼을 읽고 나니 아주 오래 전에 접했던 류태영 건국대 농학박사의 자전적 이야기가 기억났다. 가난했던 60년대에 청년이 나아갈 길을 찾아 새벽기도에 몰입하다 농업 부국 유학이라는 답을 얻어 주소도 모르는 덴마크 왕실에 편지를 보내 뜻을 이뤘다는 사연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생생한 사례로 청춘인 필자의 도전정신을 자극했었다. 이들을 볼 때 길과 기도는 길을 잃은 사람이 길을 찾는 방법임이 분명하다.

신간 《걷는 자의 기쁨》 저자 박성기는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로부터 ‘박대장’으로 불리는, 20년 경력의 자유도보 여행가다. “박대장과 함께 걸은 달마고도, 은비령, 자작나무숲, 함백산은 그대로 내 영혼의 소울로드였다”는 박경희 교사의 고백에서 그가 이끄는 걷기 여행의 내공이 읽힌다. 여행이 전업은 아닐 터인데 더구나 사진과 문장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추측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 걷기 황홀한 우리나라 35개의 길을 엄선해 사진과 문장으로 소개하는데 역사, 문학, 풍경, 인심이 적재적소에 어우러지는 인문학적 여행기의 정수를 보는 듯하다. ‘사십 리 걸음걸음마다 봄볕 구도(求道)의 길, 해남 달마고도’에서 시작된 길은 ‘여름이 길을 잃은 정선 덕산기 계곡’, ‘가을의 전령이자 한국의 차마고도 정선 새비재’를 거쳐 ‘무채색 겨울을 연출하는 한탄강과 인천 소래 염전길’에서 발길을 멈춘다.

스테디셀러 《여행은 재즈다》 저자 강성일은 전업 여행 전문가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기록한 그 역시 전문가답게 잘 잡은 사진과 시원시원한 문장이 영락없이 ‘가이드스럽다’. 박성기와 달리 그는 우리나라 24개의 ‘느린 섬’들을 걸었다. 슬로우 시티(slow city) 한국 대표주자인 청산도에 정박한 배가 관매도를 거쳐 중국 상해의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서남쪽 끝 섬 가거도를 거쳐 추자도에 이른다. “나바론 하늘 길은 나바론 요새를 떠올리게 하는 아찔한 절벽이다. 그 위에 가파른 길을 따라가 용둠벙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섬 전경은 가히 압권이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펼쳐지는 기암괴석과 절벽의 위엄에 눈과 마음이 즐겁다. 한 걸음 한 걸음 아껴 걷다가도 다음 풍경을 볼 기대감에 걸음이 빨라진다. 발아래 세상이 모두 내 것이다. 천상천하 절세 비경이다. 날개가 있다면 뛰어내려 독수리처럼 배회하며 섬 전체를 휘휘 날아다니고 싶다”는 섬은 과연 어느 섬일까? 그 섬에 가고 싶다.

언젠가는 반드시 카메라와 연필 한 자루, 노트 한 권을 담은 배낭을 메고 느릿느릿 걸어야 할 길과 섬 59곳을 챙겨놓았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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