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이 주도했던 상반기, 하반기는 부동산이다 [최준영의 경제 바로 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1 10:00
  • 호수 16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저금리 시대에 통화 가치는 계속 하락
안전자산 찾는 수요 증가…서울 아파트 매력↑

자산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 IMF가 코로나19로 1930년대 대공황 수준의 경기 침체가 닥쳐 세계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란 충격적인 보고서를 냈는데, 주식시장은 정반대로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다. 한국의 경우 상당수 종목은 3월19일 바닥을 치고 지속적으로 상승해 5월 들어 대부분 전고점을 회복했다. 게임과 포털 등 비대면 관련주 선호가 이어지다 최근엔 현대자동차와 같은 전통적인 제조업까지 상승세를 나타냈다. 미국에선 인터넷 기업은 물론 부도 위기에 내몰린 항공 및 렌터카 업체마저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몇 배씩 오르고 있다. 넘치는 유동성은 기업의 현금 흐름이나 이익 분석 등을 뒷전으로 미루고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넉넉하게 공급하기 시작한 달러는 미국과 선진국을 넘어 신흥국으로 넘어가면서 추락하던 이들 국가의 통화 가치를 강세로 돌려놓고 있다. 세계적으로 하루 10만 명 단위의 확진자 증가 추세가 이어지는 등 코로나19로 인한 충격이 계속되고 있지만 자산시장은 이미 코로나 사태는 끝난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 위기 시 전통적 선호자산인 금 가격조차 하락세다. 미국 달러 역시 약세로 전환하고 있다. 각국에서 코로나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완화된 금융·재정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런 흐름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freepik
ⓒfreepik

서울 내 6억~9억원 아파트 크게 늘어

통상 자산시장의 흐름은 주식시장에서 시작해 원자재와 부동산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변화의 흐름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은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현장에서 전해지는 소식, 특히 청약시장의 뜨거운 모습을 보면 예상과 달리 하반기는 상반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주택시장은 작년 말부터 시행된 고가주택에 대한 강력한 대출 규제와 높아진 세금 부담 등으로 급매물이 나오면서 평균적으로 안정세를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대출 규제가 없는 서울의 저가 아파트와 지방의 비규제 지역을 중심으로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주택시장의 전반적인 모습을 변화시켰다. 

가점제로 진행되는 청약시장에서의 벽을 절감한 30대 수요층이 기존 주택 매수에 나서면서 2017년 8월 약 85만 가구(63%)에 이르던 서울 시내 6억원 이하 아파트는 2년 반이 지난 올해 5월 38만7000가구(31%)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9억원 이하 아파트의 경우 올해 들어 단 한 차례도 하락하지 않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 시내 6억원 초과 9억원 이하 아파트는 2017년 8월 24만 가구(18%)에서 2020년 5월 35만8000가구(28.8%)로 증가했다.

대출 규제가 약하거나 없는 수도권 남부와 서부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세도 지속되고 있다. 수원 광교는 서울 잠실을 뛰어넘는 매매가격을 기록하며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 오랫동안 미분양에 시달리던 안산, 시흥 등 수도권 서부 지역도 강한 상승세다. 지방도시의 상승세도 무섭다. 청주는 전국 최고 수준의 가격 상승률을 보였다. 제조업 쇠락으로 어려움을 겪던 구미, 창원, 포항, 거제 등의 주택가격도 들썩이는 중이다. 

이에 정부는 칼을 빼들었다. 6월17일 접경지와 환경보호 구역 등 일부를 제외한 경기 전역과 함께 대전·충북 청주까지를 부동산 규제지역으로 묶고, 주택 매매·임대 사업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원천 금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변경된 제도가 시행되기 전에 막차를 타겠다는 수요가 몰리면서 미분양으로 고생하던 인천 및 검단 신도시의 신규 분양 경쟁률은 두 자릿수를 훌쩍 넘어서고 있다. 강세장 초반의 분위기가 역력하다. 

 

여의도와 마포·신길·당산 가격 차이 거의 없어

코로나 쇼크는 컸지만 이는 주로 자영업과 여행, 항공 등 특정 산업에 집중됐다. 다른 산업의 급여생활자들의 충격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잠재적인 주택 구매 수요층으로 간주되는 월 7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가구 비중은 30%에 이른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에 대한 부담은 어느 때보다 적다. 

시장은 대출 규제의 ‘마지노선’까지 가격을 밀어올리고 있다. ‘9억원-12억원-15억원’으로 구분된 대출 규제가 6개월 동안 시행되자 각각의 대출 규제선까지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투기과열지역과 투기지역의 주택 가격은 특정 가격대에 조밀조밀 모여 있는 분포를 보이고 있다. 통상 큰 가격 차이를 보이던 서울 여의도와 주변 마포·신길·당산의 주택가격은 단위 면적당 가격으로 보면 격차가 거의 없는 상황이 됐다.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 따른 화폐 가치의 하락은 수요의 감소나 주택의 신규 공급보다 빠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가격 상승의 압력은 매우 커진다.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경제활동의 중단과 위축은 수요 자체를 소멸시켜 디플레이션을 초래한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30년째 이어지고 있는 일본을 보면서 인플레이션보다 디플레이션을 훨씬 두렵고 경계해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됐고, 이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대규모 재정투자로 인한 정부 부채의 급증을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적절한 인플레이션을 통한 부채의 실질가치 하락이다. 이에 자산시장에서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나타난다면 금리 인상을 통한 적극적인 대처보다는 일정 기간 이런 현상을 방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통화량 증가에도 통화 유통 속도가 과거보다 낮아진 상태라 일각에서 주장하는 급속한 인플레이션이나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출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통화 가치의 하락이라는 흐름은 모두가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한 자산을 찾기 위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으며, 그 대상이 부동산이 될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정기예금 금리가 0%대가 된 상황에서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사회적 분위기 형성 역시 자산시장의 상승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증권시장이 2020년 상반기 흐름을 주도했다면, 하반기는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과 원자재가 그 흐름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크다. 면밀한 관찰과 신중한 판단, 그리고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