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엔 닫아걸고, 홍콩엔 푸는 영국의 ‘이민 빗장’
  • 방승민 영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5 08: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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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주도한 영국 보수당, 의외로 홍콩 시민 대상 이민법 완화에 ‘찬성’

중국 정부가 강제로 홍콩에 국가보안법을 도입할 의사를 밝히자, 영국 정부는 홍콩 시민들에 대한 이민정책 완화를 통해 중국에 반기를 들었다. 작년 중국의 송환법 개정과 이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장기화하자, 10만 명가량의 홍콩 시민이 청원을 통해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영국 정부에 요청했던 바 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이 청원을 거절했다. 홍콩 반환 협정에 어긋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후 중국이 ‘홍콩 반환 협정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홍콩의 자치를 위협하는 보안법을 강제로 도입하려 하자 영국은 1년 만에 입장을 바꿔 적극적으로 개입할 의지를 표명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5월8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밖에서 ‘보살피는 이들을 위해 박수를(Clap for Carers)’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5월8일(현지시간)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밖에서 ‘보살피는 이들을 위해 박수를(Clap for Carers)’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콩 시민 수용, 영국 경제에도 도움 될 것”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중국의 억압에 대응해 300만 명의 홍콩 시민에게 영국 이민 빗장을 풀 의향이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현재 ‘재외 영국 시민 여권(BNO·British National Overseas)’을 소유하고 있는 홍콩 시민은 35만 명이며, 추가로 250만 명의 홍콩 시민이 이 여권을 신청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 현재 BNO는 1997년 홍콩 반환 이전 출생자들에 한해서만 신청이 가능하다. 따라서 존슨 총리는 중국 정부가 국가보안법 도입을 강행할 시, 영국 정부는 이민정책을 수정해 자격을 갖춘 홍콩 시민에 대해 현재 6개월까지 영국에 체류 가능한 기간을 12개월까지 늘리고, 이후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6월15일 영국 보수당은 홍콩 시민에게 적용되는 영국 이민법 완화에 대해 당내 투표를 진행했다. 기본적으로 반(反)이민 정책을 펼치고 있는 보수당임에도 56.6%가 BNO를 소유한 홍콩 시민에 한해 정식 영국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에 찬성했다. 또한 62.6%가 이들에 대한 영국 재정착 기회를 부여하는 것에 찬성했다. 두 안 모두 과반수를 넘겼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라고 영국 일간지 익스프레스는 보도했다.

표면적으로 영국 정부는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 대한 중국 당국의 억압에 대해 홍콩 시민들에게 도움을 제공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입장이다. 전 영국 보수당 의원이자 잉글랜드 동남부 유럽연합 회원이었던 대니얼 하난은 텔레그래프지를 통해 “홍콩인들이 중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을 영국 영토 안에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그는 “홍콩 시민들을 영국 사회에 수용하는 것은 그들의 안위는 물론 영국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영국의 홍콩 시민에 대한 이민법 개정에 크게 분노한 점을 주목하면서, “중국의 분노는 그동안 자국 경제에 이익을 가져다주던 홍콩의 부가 유출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마이클 휴즈는 홍콩의 미래가 암담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장밋빛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중국에 홍콩은 중국 본토 시장과 국제 자본시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만일 미국이 홍콩에 대한 특별 지위를 해제한다면 중국은 홍콩의 경제 발전에 더욱 주력할 것이며, 본토 기업들이 홍콩 시장에 진입하도록 독려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 집권당이자 브렉시트를 주도한 보수당이 홍콩 시민들에 대한 수용책을 제시하자 영국 국민들은 이에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추세다. 그러면서 반이민 정책을 지지하던 ‘브렉시트 추종자’들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홍콩보다 문화적·지리적으로 인접한 유럽인들이 영국에 정착하는 것은 반대했으면서 홍콩 부호들의 이민은 환대하는 모습이 모순적이라는 조롱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저소득 노동직을 주로 도맡았던 동유럽인들에 대한 큰 반발로 브렉시트를 유도해 이들을 쫓아내고, 다음 수순으로 부유한 홍콩 시민들을 유입해 코로나바이러스로 침체기를 겪고 있는 영국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얄팍한 속내를 비판했다.

6월4일 홍콩에서 톈안먼 사태 31주년 추모 집회가 열렸다. ⓒAP 연합
6월4일 홍콩에서 톈안먼 사태 31주년 추모 집회가 열렸다. ⓒAP 연합

코로나 사태 이후 영국의 ‘對中 여론’ 악화

중국 정부는 영국이 홍콩 시민들에게 영국 시민권을 허가할 경우 즉각적인 대응과 보복을 펼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홍콩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에 직접적으로 투자 가능한 금융 창구 같은 역할을 해 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양국 체제가 막을 내리고 중국에 흡수되기 전 홍콩의 부호들이 해외 이주 및 자금 해외 이동을 기획하는 움직임이 늘었다. 작년 시위 때도 상황을 주시하기만 했던 홍콩 시민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시위가 재개되고 중국의 국가보안법 도입이 현실화하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규모가 측정되지는 않았지만 자금 이동과 같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으며, 그 주 목적지는 중국과 가까워 중국 본토 시장 접근성이 큰 싱가포르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외에도 영국·캐나다·호주 등이 홍콩 부호들의 여권 쇼핑 물망에 올라 있다.

지난해까지 영국 정부는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중국은 영국 대외무역 전체 수입량의 7%와 수출량의 4%를 차지하는 등 영국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과의 무역 규모가 축소되어도 중국과의 교류 증가를 통해 이를 보완하고자 했다. 또한 10만 명 이상의 중국 유학생이 영국 대학에서 높은 외국인 등록금을 지불하며 유학 중이며, 영국이 자국 내 5G 구축을 위한 화웨이의 투자를 일부 수용하는 등 양국 간 교류가 활발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초기 이를 은폐했던 중국 정부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영국의 여론은 올해 들어 바뀌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낮추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했으며, 홍콩 시민들에 대한 영국 이민법 개정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이와 같은 영국의 움직임과 더불어 최근 주변 유럽연합 국가들 사이에서도 홍콩 사태와 관련해 중국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에 함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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