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새로운 음식문화 등장과 행동하는 시민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4 16:00
  • 호수 16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가 지속되면서 배달 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저소득층과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저렴한 편의점 음식이 새로운 문화로 부상한 지 오래며,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간단한 혼밥 문화도 일상적 도시 풍경이 됐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부유층은 음식에 대한 취향에서 다른 계층과 구별되는 문화적 취향을 과시하려고 시도했다. 1990년대 서울 강남에 고급 레스토랑이 연이어 문을 연 이래 다양한 이국적 음식과 미식 문화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사회의 양극화처럼 음식의 양극화도 심화됐다.

고씨의 점심, 비프셀러드와 케모마일. 고씨는 스마트폰 앱에 음식의 칼로리를 기록하며 '셀프 자극'으로 체중을 조절하고 있다. (임준선 시사저널 기자)
ⓒ시사저널 임준선

최근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과학적 지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건강뿐 아니라 미용 효과를 고려하며 채식, 과일, 저지방, 항산화 음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이요법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음식은 단지 생존의 수단이나 즐거움의 대상이 아니라 칼로리와 영양소까지 측정하는 전문가적 분석 대상이 되고 있다.

건강에 나쁜 음식에 대한 경고가 넘치면서 사람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식품 첨가물, 방부제, 합성조미료(MSG)뿐 아니라 유전자 조작 식품(GMO)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린이에게 피부 질환, 성 조숙증, 정서 불안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과자, 사탕, 컵라면 용기, 종이컵, 일회용 식기, 패스트푸드 포장지, 플라스틱 등에 있는 인공 첨가물과 환경호르몬에 대한 공포감도 커졌다.

1986년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에서 현대사회가 원자력·방사선·핵무기의 위험과 함께 식품의 위험에 직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위험이 인간의 지각 범위를 벗어나고 산업의 논리 속에서 체계적으로 재생산되면서 현대사회가 위험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벡의 책이 출간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광우병 쇠고기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가공할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서도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확산되면서 식품 안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폭발했다. 오랫동안 음식은 일상생활과 관련이 크지만 비정치적 이슈로 간주되었는데, 광화문을 점령한 촛불집회를 통해 이명박 정부를 뒤흔드는 폭풍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탈규제와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지지한 정부는 예기치 못한 비판에 직면하면서 식품 안전과 규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모색됐다. 친환경 또는 유기농 식품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급증하면서 대안농업의 필요성도 대두됐다. 처절한 공장식 축산업과 지구 환경을 위협하는 육식 문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채식주의가 서서히 깨어 있는 시민의 관심을 얻고 있다. 무분별하게 외국 프랜차이즈 상품을 수입하거나, 빵집과 편의점 등 골목상권까지 지배하는 재벌 3세 오너들의 몰염치와 탐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졌다. 개발도상국 농민을 지원하는 공정무역과 선진 산업국가의 윤리적 소비자운동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음식은 지역적인 동시에 지구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제 음식은 영양학적 차원을 넘어 문화적·정치적·윤리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되고 있다. 유기농, 채식주의, 공정무역 운동, 슬로 푸드(Slow Food), 일회용품 안 쓰기 운동, 윤리적 소비주의가 대안적 음식문화로 관심을 끌고 있다. 음식 소비는 단순히 경제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기는 어렵고,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이 만든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 불확실성과 성찰성의 시대에 음식의 의미는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식품을 소비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중요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19세기 미식에 관한 최고의 책 《미각의 생리학》의 저자 브리야 사바랭이 말한 대로 “영혼이 있는 사람만이 먹을 줄 안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