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승리” 선언한 마크롱에 기다렸다는 듯 ‘줄소송’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4 11: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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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내각 관료들 앞에 쌓인 소송만 84건…국민들 “정부가 코로나 위험 방조”

지난 6월14일 밤 8시(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네 번째다.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대유행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이라는 조심스러운 전제와 함께 “코로나와의 대결에서 1차적인 승리를 거둔 기쁨을 온 국민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상의 ‘승리’를 선언한 것이다.

대통령의 담화가 나온 다음 날인 6월15일을 기점으로 프랑스 전역은 ‘코로나 봉쇄’가 완화되는 ‘녹색 지역’으로 지정됐다. 프랑스의 수도권인 ‘일 드 프랑스’ 지역의 경우, 3월17일 ‘이동 제한령’이 내려진 이후 지속적으로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제한돼 온 터였다. 지난 5월11일 총리 담화에서도 이 지역은 ‘1차 봉쇄 완화 지역’에포함되지 않아, 식당의 경우에도내부가 아닌 외부 테라스에서만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담화에 이은 조치로 수도권을 포함한 프랑스 전역이 코로나 이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승리 선언과 함께 완화 조치 이튿날 쏟아진 것은 환호와 지지가 아닌 코로나19와 관련된 ‘줄소송’이었다. 대검찰청의 수장인 프랑수아 물랭 대검찰청장은 6월16일 프랑스 라디오 RTL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접수된 소송은 총 84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84건 모두 총리를 위시한 현 내각 각료들을 겨냥한 소송이라는 점이다. 프랑스 대통령은 재임 중 부여되는 면책특권에 따라 소송 대상이 될 수 없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 연합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EPA 연합

“지방선거 중단 주장했지만 묵살당해”

정부의 코로나19 부실한 대처에 대한 소송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3월부터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 움직임이 시작됐다. 3월15일 치러진 1차 지방선거 투표 직후 코로나19에 감염된 무소속 후보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더군다나지방선거가 치러질 당시 보건부 장관으로 재직했던 아네스 부쟁 전 장관이 지난 3월17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장관 재직 당시 지방선거를 치르지 말 것을 주장했으나 묵살당했다”는 내부고발 수준의내용을 밝히자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져 갔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인와중에 여권 내부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이 쏟아졌으며, 야권인 극우정당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은 법적 조처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무엇보다 부쟁 전 장관의 발언은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의 중요한 단서가 되고 말았다.

‘이동 제한령’ 기간이 이어지고 사태가 계속되자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와 함께 5월12일에는 소송 건수가 63건으로 폭증했다. 그리고 5월24일에는 74건까지 집계됐다. 소송이 줄을 잇자 간편한 소송을 돕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플랜트 코비드’라고 명명된 이 사이트에서는 복잡한 소송 절차의 이해를 돕는 안내서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3월24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다운로드 횟수가 18만9889건(6월17일 15시 집계)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소는 에두아르 필립 총리와 전 보건부 장관인 아네스 부쟁 그리고 현직인 올리비에 베랑 보건부 장관 등을 상대로 한 것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노동부 장관인 뮈리엘 페니코도 주된 고발 대상이다. 뮈리엘 페니코 장관의 경우 지난 3월26일,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망한 카르푸 매장계산대 직원의 죽음과 관련해 고발 대상에 올랐다.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 기본적인 보호장비가 뒤늦게 지급되었다는 것이 소송에 나선 매장 노조 측의 주장이다. 매장이 위치한 파리 북쪽 생드니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 중 하나다.

노조는 페니코 장관과 함께 프랑스 대형 유통업체인 ‘카르푸’도 함께 고소했는데, 법적 근거는 프랑스 형법 223~226조의 ‘범죄의 불저지 및 구조 불이행 조항’이다. 자신 또는 제3자의 위험이 초래되지 않는 선에서 타인을 위험에서 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실행하지 않았다면 이 조항의 적용 대상이 된다. 유죄가 선고될 경우 5년 이하의 구금형이나 7만5000유로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중범죄에 해당한다.

5월11일 파리 생-라자르 역이 마스크를 착용한 통근자들로 붐비고 있다. ⓒEPA 연합
5월11일 파리 생-라자르 역이 마스크를 착용한 통근자들로 붐비고 있다. ⓒEPA 연합

“배상 요구가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은 것”

이번에 접수된 각료들을 향한 소송은 모두 ‘공화국 법정(CJR)’에서 전담한다. 공화국 법정은 곧 출범을 앞두고 있는 한국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같은 역할을 맡는 프랑스 기관이다. 행정부 각료, 즉 장관들을 수사 대상으로 한다. 흥미로운 건 이 CJR은마크롱 대통령이 당선 직후부터 추진하고 있는 개혁안에 포함된 대상이라는점이다. 다시 말해 마크롱 집권 초반부터 CJR의 폐지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으며, 지난 2017년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마크롱은 CJR제도의 폐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했었다. 노란 조끼 사태와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도 폐지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직 총리와 각료들을 상대로 한 줄소송을 CJR이 맡게 된 것이다.

CJR은 10명의 고위 사법관(판사 또는 검사)으로 구성된다. 현재 접수된 소송에 대한 수리 여부는 6월말쯤 결정될 것이라고 프랑수아 물랭 대검찰청장은 밝혔다. 물랭은 검사 시절 굵직굵직한 테러 사건  때마다 대국민 브리핑에 나섰던 인물로 프랑스 국민의 신망과 인지도가 높으며, 현재 차기 법무부 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상황이 미묘하게 전개되고 있는 만큼 그는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코로나 사태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비영리 단체 ‘Avaic19’를 결성한 에르베 방바나스트 변호사는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전을 두고 “더 많은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덜 책임진다”고 지적하며,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승리’를 선언한 이튿날인 6월15일 프랑스의 확진자는 152명으로 집계됐다. 6월 들어 가장 낮은 수치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관련 담화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신뢰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47%로 나타났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그리고 6월17일 프랑스의 확진자는 344명으로 두 배 넘게 뛰어올랐다. 프랑스 국민이 여전히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를방증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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