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政治는 빼고 ‘빈 마음’으로 논의해야”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9 11:1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여년 넘게 제자리걸음’ 광주시 자치구 경계조정 다시 도마 위
김점기 광주시의원 “소모적 논란 경계 조정 이제는 매듭지어야”
시의원 “올해 안에 추진해야” vs 광주시장 “공감대 형성이 먼저”

지난 2007년 6월, 당시 박광태 광주시장은 동구청에 대한 초도순시 석상에서 “구(區) 간 경계조정이 선출직 정치인들 때문에 안 된다”며 정치권에 책임을 돌렸다. 이에 해당 정치인들의 즉각적인 반발했다. 북구출신 한 국회의원은 “그동안 광주시가 한 게 무엇이냐”며 “구 간 경계조정을 동구와 북구만의 문제로 축소한 무책임한 발언”이라며 쏘아붙였다. 이처럼 광주시 자치구간 경계조정은 볼썽사나운 잡음만 일으키고 유야무야된 채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게걸음만 치다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광주시내 전경 ⓒ광주시
광주시내 전경 ⓒ광주시

세간에서 소모적 논란의 주범으로 회자되는 광주 자치구간 경계조정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광주시의회 정례회 시정질문에서 광주 5개 자치구의 균형 발전을 위해 10여년째 지지부진한 자치구간 경계조정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김점기 광주시의원은 16일 시정질문을 통해 “‘시장·국회의원·구청장·시의원·구의원 연석회의’라는 논의 기구를 만들어 자치구간 경계조정을 매듭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행정서비스의 효율적 제공과 주민편익, 행정구역간 균형발전을 위해 자치구간 경계 조정은 절실하다”며 “시와 구청, 의회 모두가 한마음으로 시민의 불편을 덜고 광주 전체가 동반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계조정하면?…“행정서비스 효율적 제공·광주전체 균형발전”

광주시는 행정구역별로 인구가 들쭉 날쭉이다. 지난 1980년 당시만 해도 균형을 이루던 동구와 북구의 인구수는 지난해 말 현재 4배까지 차이가 난다. 5개 자치구 중 동구는 9만8628명으로 인구가 가장 적다. 남구 21만7810명, 서구 30만292명, 북구 43만3006명, 광산구 40만5969명 등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인구수에 따른 재정 규모도 동구가 2614억원으로 서구 4481억원, 남구 3510억원, 북구 6646억원, 광산구 5958억원에 비해 열악하다. 

이처럼 기형적인 행정구역이 생긴 것은 신도심과 택지지구 개발 등에 따라 광주의 중심축이 지난 90년대 이후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시세 변화에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오랜 시간 정치·경제·행정·문화 ‘1번지’였던 동구는 1970년대 30만명대였던 인구가 1980년대 20만명대, 1990년대에는 10만명대로 줄었다. 2000년대 들어 도심 쇠퇴와 인구 유출이 심화해 2015년 10만 선이 무너졌다. 2017년 12월에는 광주시 전체 인구의 6.5%에 남짓한 9만5448명까지 감소했다. 

인구 10만명 붕괴는 지방자치단체에 상징적인 의미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동구가 10만명 아래로 떨어진 인구를 2년간 회복하지 못하면서 지방자치법에 따라 행정조직 축소, 부구청장 직급 하향, 교부세 감소 등 제도적인 불이익이 뒤따랐다. 광주 동구는 2000세대 규모 신축아파트의 입주가 이뤄지는 8월 전후로 10만명 선을 회복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족지혈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일선 자치구간 인구의 편차로 인한 폐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는 곧바로 행·재정과 경제력의 격차를 불러왔다. 생활권과 행정관할구역의 이원화로 인한 생활불편도 크다. 특히 동구는 급격한 구세 약화로 ‘자치단체로서의 존립’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오죽했으면 인구 10만명 유지가 위태로웠던 2010년 공직자 가족과 친척, 지인의 위장전입 논란이 불거지는 등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국회의원 의석 수 유지를 위해 짜맞추기식으로 선거구를 동구와 남구를 합친 뒤 다시 동남갑과 동남을로 나누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인구가 적은 구(區)와 동(洞)이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인구가 지나치게 많은 행정구역 또한 행정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인구 1~2000명대의 동사무소에도 10명 안팎의 공무원이 필요해 연간 5~8억여원 정도의 예산이 들어간다. 행정·재정적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에 구간 경계조정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구도심 공동화와 신도심 개발 등으로 자치구간 편차가 갈수록 커지면서다. 

그럼에도 민선자치 후 10여년 넘게 줄곧 제기돼온 ‘자치구간 경계조정’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물론 광주시 자치구간 경계조정은 2011년 10월 한 차례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 주민 반발이 있었지만 북구 중흥1·우산·풍향·두암3동 일부를 동구로, 동구 산수1·2동을 북구로, 북구 동림동·운암1동 일부를 서구로, 남구 방림2동 일부를 동구로, 서구 송원학원 부지를 남구로, 서구 광천동 일부를 북구로 조정하는 안을 단행했다. 그나마 서로 주고받아 크게 손익을 보는 지역이 없어 소폭 수준에서 가능했던 것이다. 

 

‘제자리걸음’…주민반발·행정기관·정치권 이해관계 탓

자치구간 경계조정이 계속 답보상태인 것은 주민 반발과 행정기관, 지역 정치권의 기득권 지키기가 주범으로 꼽힌다. 인구와 면적 감소에 따른 구세(區勢) 위축과 기초·광역의원 및 국회의원 선거구역 등 정치적 함수관계도 결부돼 있다. 여기다 상급단체이면서도 일선 구청 간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거의 수수방관하는 광주시의 협상력 부재도 한몫 거들고 있다. 광주시는 2년 전 1억3000만원의 예산으로 1년여 간 연구용역 끝에 경계조정 3가지 안을 도출했으나 최종안을 그해 11월 최종 용역보고회에서 채택하지 못했고, 이후 절차도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도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에는 전폭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속도’에 있어 제각각 입장이 갈리고 있다. 김 의원은 정치 일정상 올해 안에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행정권과 생활권을 일치시켜 주민 편의를 제고해야 한다”며 “인구·면적에 따른 지역 형평성, 생활 편의성, 역사·문화 정체성 등을 고려해 올해 안에 추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모두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시점”이라며 “정치 논리를 떠나 자치구간 경계조정을 추진한다는 점을 시민들에게 인식시킬 것”을 당부했다. 

이에 대해 이용섭 광주시장은 속도조절론을 폈다. 이 시장은 “경계조정 절차는 자치구의 건의와 자치구의회 의견수렴 등 상향식으로 추진해야 하므로 사실상 자치구간 협의 없이는 추진이 어렵다”며 “급격한 추진보다는 충분한 소통을 통해 시민과 정치권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날 광주시의회 시정질의·답변을 지켜본 한 시민의 따끔한 충고다. “이번에도 볼썽사납게 무성한 잡음만 일으키고 유야무야로 끝날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사안의 특성상 구청간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자칫 혼란만 야기 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다. 불합리한 구간 경계를 시급히 조정해야 한다. 특히 잘못된 구간 편차를 바로 잡는 것은 광주시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단체장과 지방의원, 국회의원 모두들 ‘정치(政治)’는 빼고 ‘빈 마음’으로 논의의 장에 앉아야 할 것이다. 5개 구청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문제여서 누가 옳고 그르다는 식의 논리는 맞지 않다. 어느 쪽이, 어느 방향이 ‘더’ 옳고 합리적인가라는 판단만이 중요하다. 광주시와 해당 구청 그리고 정치권은 ‘주민을 위한 봉사행정’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