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동 중단 고리1호기 해체작업 “3년째 겨울 잠”
  • 부산경남취재본부 박치현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2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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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 공청회 열지 못해 해체 계획서도 제출 못해
고리4호기 사용후핵연료 포화율 98% 달해
임시저장시설 건설 문제 논란, 해법 찾지 못하는 정부와 한수원

고리 1호기가 영구정지 3년째를 맞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17년 6월 18일 자정을 기해 고리1호기의 가동을 멈추고 핵연료 냉각작업에 들어갔다. 고리1호기는 1978년 4월 상업운전을 시작해 40년 동안 15만5260 기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했고, 이제 나이가 많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40년 만에 가동중단된 고리원전1호기ⓒ한수원
40년 만에 가동중단된 고리원전1호기ⓒ한수원

발전을 멈춘 고리1호기는 해체를 해야 한다. 그런데 과정이 순탄치 않다. 가동을 멈춘 지 3년이 지났지만 한국수력원자력은 해체 계획서를 아직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 원전 인근 9개 자치단체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계획서를 내야 하는데, 공청회 한 번 열지 못했다. 공청회를 누가 주도할지를 놓고 자치단체 간의 갈등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법에 따르면 원전 주변 지역 중 면적이 가장 넓은 울산 울주군이 '주관' 자치단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부산 기장군이 강하게 반발했다. 고리1호기가 행정구역상 기장군(부산시 기장군 장안읍 고리)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논란이 일자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력안전위원회가 아예 '주관' 자치단체를 없애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했으며 오는 9월 안으로 공청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고리1호기 해체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문제가 관건

공청회를 거쳐 제출된 고리1호기 해체 계획서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승인을 받더라도 또 다른 걸림돌이 있다. 원자로를 가동하면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어떻게 처리할지다. 그동안 값싼 전기를 위해 원전을 돌렸지만 반감기가 최대 수십만 년인 핵폐기물의 보관장소는 어떤 지역도 환영하지 않았다.

원자로를 가동하면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반감기는 최대 수십만 년에 이른다ⓒ한수원
원자로를 가동하면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반감기는 최대 수십만 년에 이른다ⓒ한수원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원전 안에 임시 저장 수조를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현재 고리원전 임시 저장 수조에 담을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는 모두 8,100여 다발로 2024년이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4년 후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진다. 

방법은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담아 둘 영구처분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최종 처리장 부지 선정 논의부터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의 반대가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임시저장시설 설치를 원전을 낀 자치단체에 떠넘겼다.

사용후핵연료 저장 문제가 불거진 것은 최근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인 맥스터(건식저장시설) 증설’을 위한 주민 설명회가 3차례나 무산되면서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세다. 중장기 저장시설 방안에 대해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을 만드려는 정부 정책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를 계기로 고리원전 역시 '임시저장시설' 건립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현재 국내에는 월성원전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만 있을 뿐,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이 없다.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관리방안은 최종 결론 도출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영구처분시설은 부지 선정부터 최종 건설까지 최소 36~40년이 걸린다. 

이 때문에 당장 2022년 3월 완전 포화에 달하는 경주 월성원전(중수로)의 경우 추가 임시저장시설로 맥스터 7기를 증설해야 할 판이다. 고리원전(경수로)의 경우도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고리원전 3·4호기가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이 각각 97.2%, 98.0%에 달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및 임시저장시설 건설 문제가 발등의 불이 됐다. 고리원전에는 고리 1~4호기, 신고리1·2호기가 있지만, 고리원전 부지 내에 아직 임시저장시설은 없는 상태다. 그래서 고리1호기를 해체하면서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는 갈 곳이 없다.

 

주민 반대로 오갈 데 없는 사용후핵연료  

정부는 경주시, 부산 기장군, 울산 울주군, 경북 울진군, 전남 영광군 5곳에 각각 지역실행기구를 두고, 대표성을 지닌 지역실행기구에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건설 문제를 결정토록 사실상 위임한 상태다.

이에 따라 부산 기장군은 조만간 ‘고리원전 지역실행기구’(11명)를 출범시켜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의 확충 관련 고려사항 및 주민 동의여부 등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그러나 고리원전 지역실행기구에 인접지역인 해운대·금정구 등 주민은 구성원에서 배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여론수렴과 중장기 로드맵도 없이 임시저장시설 확충 카드를 먼저 꺼내든 게 화근이었다. 

원전 소재 지역 주민들은 “사용후핵연료를 50년 정도 보관하게 될 임시저장시설은 사실상 핵폐기장이나 마찬가지”라며 반발하고 있다. 탈핵부산시민연대도 임시저장시설 확충 문제를 지역주민에게 떠넘기지 말고 ‘중장기 관리방안에 대한 국민의견 수렴’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탈핵을 선포하면서도 원전 4기가 추가 건설 중이고, 특히 고리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처리방안도 없이 해체를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고리1호기처럼 노후돼 수명이 다한 원전은 해체해야 한다. 현행 원자력안전법(원안법)과 시행령에 따르면 발전용원자로 운영자(한수원)는 원전이 영구정지된 날로부터 5년 이내 해체계획서를 작성,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고리 1호의 경우 2022년 6월19일이 기한이다. 해체계획서 제출 기한을 5년으로 정한 것은 원전 가동이 중단돼도 즉시 해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자로 내부에 열을 낮추는 냉각 과정에만 5년이 걸린다. 원전이 가동을 멈추면 원자로 내부 온도는 정상가동에 비해 1% 수준으로 낮아진다. 하지만 나머지 1%의 온도를 제거하는 데 4~5년이 소요된다.

한수원은 2032년까지 고리1호기 해체작업을 마친다는 계획이다. 15년간 해체작업에만 최소 6000억 원, 중·저준위 방사설 폐기물 처분과 사용 후 핵연료 관리 등을 감안하면 1조원이 넘는 작업이다.

고리1호기 해체는 수많은 산을 넘어야 한다. 지자체간 갈등이 해소되고 주민들의 동의를 얻더라도 더 큰 산이 버티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문제 해결 없이는 원전해체도 불가능하다. 영구 정지된 고리원전 1호기는 3년 째 동면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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