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에 있을 때 쓸 만한 자격증 하나라도 내 것으로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8 11:00
  • 호수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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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돌봄보다 취미생활 우선…1인 기업으로 창직 준비 좋아

일본 NHK 특별취재팀이 2015년 방송한 TV 다큐멘터리 《노후파산》은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불렀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의 노인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처음으로 알렸기 때문이다. 이후 보도 내용은 책으로도 출간됐으며 우리나라에도 2016년 《노후파산: 장수의 악몽》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본이 나왔다.

산업화가 그랬듯 일본은 고령화도 우리보다 빠르다. 경제가 저성장 및 장기 침체로 흐르는 ‘일본화(Japanization)’는 우리 경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이 나온 이후 국내에서는 일본의 불우한 노인들의 삶을 재조명한 책이 봇물 터지듯 출간됐다.

일본 노인들의 불우한 삶의 밑바닥에는 젊었을 때 제대로 노년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깔려 있다. 그래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일본 노인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막연한 불안감이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런 노후를 맞이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죽고 싶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뭐였나”라는 그들의 절규 뒤에는 독거(獨居)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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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퇴는 도둑처럼 찾아온다

은퇴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의 원인은 외로움에서 비롯된다. 중년의 외로움은 청년 때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전문가들은 소득 감소로 인한 경제적 압박감 외에 직업 상실에 따른 불안, 심리·신체적 무력감 등이 외로움이라는 문제를 만든다고 말한다. 은퇴와 관련해 스타 강사로 이름을 날린 A씨의 이야기다. 남들에겐 “늦게 은퇴를 준비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지만, 정작 자신의 은퇴 준비는 없었다. 갑작스럽게 회사 생활을 정리한 충격에 그는 한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지난해 미래에셋은퇴연구소는 퇴직 후 재취업에 나선 5060세대 1808명을 대상으로 ‘2019 미래에셋 은퇴 라이프 트렌드 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41.0%가 “예상보다 일찍 은퇴했다”, 24.0%는 “퇴직 시기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분의 2가 갑작스러운 퇴직 환경에 직면한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A씨는 몇 년간 충격에 휩싸여 있었지만, 남은 인생을 알차게 보내려고 귀농해 새로운 인생 이모작을 즐기고 있다.

2. 은퇴 준비는 40대부터 시작해야…재능기부도 좋다

무력감은 은퇴자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이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2018년 발표한 은퇴준비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은퇴 준비에 대한 자신감과 노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은퇴준비지수가 2년 전(56.2)보다 낮아진 54.5를 기록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는 “재무·건강·활동·관계로 나눠 분석한 자료에서 재무지수는 다소 좋아진 반면 활동 부분은 인적 관계가 줄면서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은퇴 이후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해 힘들어 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

EBS 《100세 쇼크》 제작진이 펴낸 책 《100세 수업》에 따르면, ‘행복학의 대가’ 에드 디너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소득기준 상위 10%가 나머지 사람들과 보인 가장 큰 차이가 ‘관계’에 있다고 밝혔다.

브레인플랫폼 KCA한국컨설턴트사관학교 수료생들이 함께 쓴 《인생 2막 멘토들》의 인생 2막 성공자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재능기부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한인 기업 코린도그룹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김남규씨가 대표적이다. 아멕스카드, 휠라코리아를 거쳐 코린도그룹에서 근무한 그의 업무는 해외영업이었다. 본부장으로 회사 생활을 마친 그는 외국어 관련 서적을 주로 펴내는 개인 출판사를 여는 한편, 유튜브를 통해 무료 영어강좌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노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부터 버리는 게 좋다고 말한다. 놀기 위해서라도 기초체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취미생활을 위해 동호인 카페부터 가입하라고 주문한다. 중요한 것은 은퇴 준비는 현직에 있을 때부터 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소 주말 하루 정도는 인생 2막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시간으로 삼는 게 중요하다.

3. 손주 돌봄은 멀리, 친구는 가까이

일본 도쿄대 고령사회종합연구소는 최근 고령자의 사회관계에서 가족이 아닌 친구나 이웃과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정작 아직 노년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 중 가족보다 친구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봤다. 이 연구소는 그러면서 노년으로 갈수록 공통된 화제 또는 취미가 같은 사람끼리 자주 만나는 게 행복한 노년생활의 지름길이라고 봤다. 일본 노년 사회에서 무연(無緣) 또는 사회적 고립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은퇴 후 아름다운 삶을 위한 151013 전략》을 쓴 박보영씨는 “늘 공부하고 자기 관리를 하면서 자기 성장을 위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황혼육아’ 즉, 손주 돌봄은 피해야 한다.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의 2018년 은퇴라이프 트렌드 보고서에서 손주가 있는 사람 2명 중 1명이 황혼육아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4. 창업보다 창직이 낫다

창업이 바꾸기 쉽지 않은 업(業)의 개념이라면 창직은 궤도 수정이 쉬운 직(職)의 영역이다. 은퇴 전문가들은 가급적 한 가지 일에 몰두하되 또다시 평생직업을 찾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선 3~5년의 창직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또 전문가들은 모아둔 목돈을 한꺼번에 쏟아 붓기보다 가볍게 1인 기업 형태로 나서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재능기부로 시작해 창직으로 키울 생각이라면 최근 재능기부 플랫폼으로 각광받고 있는 크몽·탈잉·숨고 같은 곳을 이용할 필요도 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이 강조하는 노후 준비의 2가지 원칙은 ‘반(半)연금과 반기술’이다. 반연금이 재정적 문제라면, 반기술은 일의 영역이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선 모바일 등 IT(정보기술) 기술을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 첫 번째 직업과 관련된 일이라면 금상첨화다. 예컨대 교사로 은퇴한 후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증에 도전하는 경우다. 직무 및 자기계발 교육전문기관 ‘아하러닝연구소’의 도영태 대표는 “현직에 있을 때 똑똑한 자격증 하나를 따놓을 것”을 주문한다. 일단 남들이 알아주는 자격이어야 하고 이직에 도움이 되며 3년 안에 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 사적인 민간자격증보다는 오래가는 자격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가리켜 ‘12345’ 자격증 요건이라고 이름 붙였다. 자존심을 죽이고 그 대신 자존감을 키우자는 의견도 있다. 가급적 ‘첫 번째 직업’이나 ‘직함’은 빨리 잊을 것을 주문했다. ‘전직 ◯◯’이 아닌 ‘현직 ◯◯’이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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