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택배노동자 ‘극단적 선택’ 추정…“우리 직원 이하로 봐”
  • 서지민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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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택배노동자 생활고 비관한 자살 추정 사건 발생…유서에 ‘열악한 처우’ 지적
올해 들어 택배노동자 사망사고 11건
10월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추모 국화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0월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기업 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추모 국화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지역의 한 택배노동자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서에는 택배 업무의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처우 등이 담겨 있었다. 최근 택배노동자의 과로로 추정되는 사망사고가 연달아 발생한 가운데 이번 죽음까지 이어지며 택배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다. 

20일 전국택배노동조합과 경남 진해경찰서는 이날 오전 3시경 로젠택배 부산 강서지점 소속 A(5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진해경찰서는 A씨가 발견 당시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씨는 A4 용지 2장짜리 자필 유서를 작성한 후 촬영해 동료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는 ‘억울합니다’라고 시작해 택배사업을 하면서 시설 투자나 세금 등으로 생활고를 겪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동료에게 보낸 유서 외에 부모에게 보내는 5~6줄짜리 유서에도 ‘생활고에 시달려 빚이 많으니 상속은 포기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가족, 지인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평소 A씨가 채무가 많았고, 경제적 어려움을 자주 호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는 유서에서 택배 업무 환경의 열악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유서는 ‘한여름의 하차작업은 사람을 과로사하게 만들 수 있는데도 150만원이면 사는 중고 이동식 에어컨도 사주지 않았다’, ‘화나는 일이 생기면 하차작업을 끊고 먹던 종이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던지며 화를 내는 소장의 모습은 우리를 직원 이하로 본다는 것을 알았다’고 전했다. 또 지점장이 직원 수를 줄이고 수수료를 착복하는 등의 부당한 지시를 내렸다는 내용도 있었다.

10월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지난 12일 숨진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소속 B씨가 사망하기 4일 전 동료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여 주고 있다. ⓒ연합뉴스
10월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지난 12일 숨진 한진택배 동대문지사 소속 B씨가 사망하기 4일 전 동료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보여 주고 있다. ⓒ연합뉴스

A씨의 죽음으로 올해 사망한 택배노동자는 총 11명이 됐다. 특히 이달 들어서만 과로사로 추정되는 사망사고가 2건이 발생했다. 지난 12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진택배 서울 동대문지사 소속 택배노동자 B씨의 문자 메시지에는 “저 집에 가면 5시, 밥먹고 씻고 바로 터미널 가면 한숨 못자고 나와서 터미널에서 또 물건정리 해야해요”라며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언급한 내용도 있었다. 

정치권에서도 택배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개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이 늘어나면서 택배 물량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을 어떻게 멈출지 환노위가 국감 기간뿐 아니라 이후에도 대책 마련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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