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한령 해제되면 ‘BTS 쓰나미’ 몰려온다…대륙의 공포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9 07:25
  • 호수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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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물류업체 윈다의 BTS 굿즈 택배 배송 중단 사태, 그 이면의 속셈은?

10월19일 중국 물류업체 ‘윈다’의 한국지사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BTS(방탄소년단) 굿즈 배송 관련 문의가 많이 온다”며 “지금은 BTS 굿즈의 배송을 잠시 중단한다”고 공지했다. 그 이유를 “원인은 우리가 모두 아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식은 곧 웨이보의 핫이슈 5위에 오르면서 중국 SNS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11일 중국 환구시보의 보도로 촉발됐던 BTS 관련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국 내 BTS 팬덤인 아미는 강력히 반발했다. 윈다가 BTS를 이용해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한 중국 아미는 웨이보를 통해 “그동안 BTS 굿즈는 해외직구와 공동구매로 전혀 문제없이 한국에서 사왔다”며 “팬들이 물류회사에 배송 문의를 과도하게 할 상황도 전혀 아닌데 윈다가 BTS를 걸고넘어진다”고 성토했다. 실제로 현재 BTS를 비롯한 한국 아이돌그룹의 앨범과 굿즈는 중국에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한국에서 직구할 경우 여러 물류업체를 통해 운송된다. 게다가 윈다는 중국 물류업계 5위로 시장 지배력이 미미하다. 최근에는 경영상 어려움으로 임금 체불을 일으켜 직원들이 파업하면서, 배송에 차질을 빚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물류회사까지 BTS를 마케팅에 이용

따라서 이런 현실을 잘 아는 중국 네티즌은 SNS에 “자사가 겪는 문제에 BTS를 끌어들여 애국적인 행동인 것처럼 오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격분한 일부 중국 아미는 웨이보에 ‘쓰레기 윈다’ ‘윈다 꺼져라’ ‘윈다 고소’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비난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중국 네티즌은 윈다의 조치를 치켜세웠다. 이들은 “윈다야말로 진정한 애국기업이다” “앞으로 윈다만 이용하겠다”고 칭찬했다. 이렇듯 일정한 성과를 달성하자, 윈다 한국지사는 당일에 웨이보 게시글을 내렸다. 또한 게시글을 삭제한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윈다가 일으킨 해프닝은 중국에서 BTS가 공격받았던 원인과 배경을 뚜렷이 보여준다. 최근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및 외교 갈등,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타격 속에서 애국주의와 내부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8월에 개봉했던 《팔백》이 대표적인 사례다. 《팔백》은 1937년 중일전쟁 기간 800명의 국민당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워 이겼던 영웅담을 담은 영화다. 본래 지난해 7월에 개봉될 예정이었지만 무기한 연기됐다. 배급사는 그 이유를 ‘기술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기술적인 이유’는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팔백》이 제작되자 중국 일각에서는 “역사의 단편으로 본질을 뒤엎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이는 국민당군이 중일전쟁에서 나름 기여하긴 했으나, 공산당이 더 큰 역할을 했고 국공내전에서 승리했던 역사를 가릴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지난해는 사회주의 정권 수립 70주년이었다. 《팔백》에는 상영 내내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가 등장한다. 또한 국공내전에서 공산당군을 괴롭혔던 쑨위안량 장군을 영웅으로 묘사했다. 중국 당국으로서는 언짢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중국 내 정세가 변화했다. 미국과 격하게 일전을 벌이는 데다, 미군과 싸웠던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다. 따라서 항일을 소재로 외세와 싸우는 《팔백》은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쓸모가 있었다. 실제 《팔백》 곳곳에는 애국주의를 고취하는 요소가 담겨 있다. 군인들은 전투를 하면서 “중화민족 만세”를 외친다. 특히 사항창고 사수를 책임진 셰진위안 여단장은 병사들에게 “우리 중국은 아직 희망이 있다”며 용기를 북돋는다. 이는 어제의 항일투쟁을 빌려 오늘의 중국인들에게 항미(抗美)의식을 고취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성 장치는 중국 정부의 입맛에 맞았다. 중국 정부가 《팔백》의 개봉을 허락했던 이유다. 현재 중국에서는 애국주의 및 한국전쟁과 연계한 문화 콘텐츠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극장가에서는 9월에 여자배구팀의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연승 기록을 담은 《탈관》이, 10월23일에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금강천》과 애니메이션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 동시 개봉됐다. 11월에는 《빙혈장진호》가 개봉된다. 또한 지난 10월12일부터는 국영 CCTV가 매일 20부작 다큐 《항미원조 보가위국》을 방영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제작이 연기됐던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 영화 《영웅련》과 《보가위국》 등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선보인다. 이렇듯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일인 10월25일을 전후해 고조됐던 애국주의 움직임에 BTS는 뜻하지 않게 제물이 되었다. 국수주의 마케팅을 통해 주류언론으로 성장한 뒤에도 강경 애국주의로 여론을 선도하는 환구시보, 획일적인 체제 교육 속에서 자라나 자국에 대한 자긍심이 드높은 중국의 일부 1020세대, 애국주의를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기업 등이 시류를 이용해 공격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주목할 요소가 하나 더 있다. K팝의 컴백을 두려워하는 중국 C팝 팬들과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행태다. 이는 중국 네티즌들이 BTS를 공격하는 와중에 포착됐다. 예전부터 SNS와 커뮤니티를 통해 한류를 적대시했던 중국인들은 국수주의로 물든 1020세대로, ‘샤오펀훙(小粉紅)’이라 불렸다.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샤오펀훙은 한류에 열광하는 여성들을 경멸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부 여성들이 BTS 팬이었음을 자처하면서 팬덤 탈퇴를 주도했다. 이들은 그동안 구입했던 BTS 앨범과 굿즈를 사진으로 인증하면서 ‘아미 탈퇴’를 선언했다.

 

K팝 컴백 두려워하는 중국 업계와 팬들

문제는 그들의 개인 SNS가 BTS와 무관한 C팝 그룹과 가수의 사진 및 뉴스들로 도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은 여러 중국 아미를 통해 폭로됐고 필자도 확인했다. 그들은 “과거에는 정말 BTS 팬이었다”며 항변했으나, 올해 들어 BTS 관련 글과 사진을 올린 기록은 없었다. 일부 네티즌은 평소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다가 최근 들어 갑자기 BTS에 대한 비난 댓글을 집중적으로 쓰고 있다. 이와 관련해 중국 엔터업계의 한 관계자는 필자에게 “BTS와 나름 경쟁관계에 있다고 느끼는 중국 기획사가 BTS를 깎아내리기 위해 역바이럴을 펼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한한령(限韓令)이 해제되면 중국에서 단기간에 팬덤을 확장할 수 있는 한류로 K팝이 손꼽히기 때문이다. K팝은 한한령 이후에도 온라인을 통해 ‘입덕’한 팬이 늘어났다. 지난 10월2일 발매된 블랙핑크 정규앨범은 중국 팬들이 50여만 장을 구매했다. 심지어 중국 팬들은 2016년 1월 쯔위(子瑜) 사건으로 자국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트와이스의 앨범조차도 발매 때마다 10여만 장을 구입했다. 중국 아미도 BTS가 공격당한 이후 실제 ‘탈덕’한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소속사가 직접 운영하는 웨이보의 공식 계정 팔로워는 12일 563만 명에서 21일 현재 560만 명으로 3만 명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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