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추미애의 오만, 진보의 재앙
  •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3 17:00
  • 호수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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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작가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악을 고발한다. “그때 우리들은 역사를 만들었네. 지금 자네들은 정치를 하고 있고….” 혁명 1세대의 공적에 대해 루바쇼프는 이전 동료인 이바노프에게 이렇게 말하지만, 이 말은 공허하다. 오만한 권력은 자신들의 목적을 내세우며 도덕과 정의를 조롱거리로 만들기 때문이다.

사회학에서 바라보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보편적 시민권이다. 영국 사회학자 토머스 H 마셜은 시민권을 ‘평등한 지위’로 정의하면서 세습된 특권 대신 균등한 기회를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군사독재가 무너진 폐허에 세워진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특권에 반대했다. 이것이 우리가 투옥의 고초를 겪으며 피 흘려 얻은 핵심 가치다. 이런 점에서 최근 추미애 장관의 행보는 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비록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지만, 국회의원 아들의 민원을 공무원인 보좌관이 해결한 것은 공사의 분리를 무시한 권력 남용으로 볼 수 있다. 경향신문 사설에서 지적한 대로 ‘군대에 있는 일반 시민의 자녀도 서씨처럼 수월하게 휴가를 연장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추 장관의 발언 태도 등과 관련한 야당의원들의 의사진행발언을 듣고 있다. ⓒ박은숙 기자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국정감사에서 추 장관의 발언 태도 등과 관련한 야당의원들의 의사진행발언을 듣고 있다. ⓒ박은숙 기자

둘째, 추 장관이 국회에서 한 ‘27번의 거짓 해명’도 지탄을 받았다. 한겨레도 사설에서 “그동안의 발언과는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셋째, 언론을 대하는 태도도 문제다. 진보적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추 장관 측이 언론을 상대로 고소하는 행위를 강하게 비판했다. 추 장관이 취재기자의 사진을 공개한 행위도 선을 넘었다. “소설 쓰네” “장편소설” 운운하는 추 장관의 천박함도 논란을 일으켰다. 국민이 부여한 장관직은 최고 직위지만 교양과 도덕은 최하 수준이라는 평판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권력자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철저한 오해다. 공동체의 안전과 번영을 위한 지도자의 덕목을 가리킨 것이지 사리사욕을 찬양한 것이 아니다. 민주 정부에서도 장관은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받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과 주식 투기에 골몰하거나, 자녀 입시와 병역 특혜를 위해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적법과 불법만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정치는 법률적 판단에 앞서 정의에 관한 도덕적 판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스타급 정치인이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갔다가 국회의원으로 복귀해도 조롱과 멸시를 받는 것 또한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권력에 취한 사람들은 모든 문제를 권력 게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옳고 그른가보다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를 먼저 따진다. 우리 편이 잘못한 걸 알아도 무조건 감싼다. 유튜브에서 기세를 올리는 당파적 언론이 앞장선다. 정쟁이 격화될수록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는 커진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프레임과 음모론은 잠시의 선거공학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 진보정당에 해악이 더 클 수 있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 무시되거나 실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유들 중 세 가지만 적는다. 첫째, 진보세력은 균등한 기회라는 원칙을 강조했기 때문에 스스로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둘째, 병역·교육 등 공정 이슈에 민감한 청년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 셋째,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서민을 위한 개혁이 어려워진다. 결국 우파 서민주의와 반진보주의 분위기를 키울 수 있다(클린턴과 블레어의 실패 이후 부상한 트럼프와 존슨을 보라).

진보세력은 역사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권력자의 사익보다 국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지금 추미애는 진보의 재앙이 되고 있다. 진보적 지식인과 언론에서 나오는 우려와 비판을 대답 없는 메아리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선공후사의 의식, 상대에 대한 관용, 도덕적 겸손의 덕성을 갖춘 정치인을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정의롭지 못한 장관의 입보다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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