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핑퐁게임’에 개미들만 멍든다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6 10:00
  • 호수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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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음 끊이지 않는 사모펀드의 실체 주목…관리·감독 생략된 규제 완화가 원인

라임과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의 파장이 연일 커지고 있다. 올해 4월 4조원이던 환매 중단·연기 사모펀드 규모는 최근 6조원을 넘겼다. 처음 라임 사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자산운용사와 증권사가 펀드의 부실을 숨기고 판매한 사건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실상은 개미투자자들을 상대로 한 대규모 사기극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뿐만 아니라 금융 당국과 청와대, 정치권을 대상으로 로비가 이뤄진 정황마저 나오면서 사태는 점점 확대되고 있다.

라임 사태 피해자들이 펀드 판매사인 대신증권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라임 사태 피해자들이 펀드 판매사인 대신증권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라임·옵티머스 등 규제 피하기 꼼수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사모펀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간접투자 상품인 펀드는 공모펀드와 사모펀드로 구분된다. 공모펀드는 공개적으로, 사모펀드는 사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차이가 있다. 사모펀드는 제한된 투자자들을 모집해 비공개로 운영된다. 공모펀드와 달리 자금운용이 자유로워 기업 간 인수·합병(M&A)이나 적대적 M&A에 대한 경영권 방어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사모펀드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공모펀드에 비해 규제가 적다는 점이다. 충분한 금융지식을 갖춘 자산가들이 자발적으로 투자를 진행하니 당국은 투자자 보호 등의 명목으로 간섭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펀드 가입을 위한 자산·투자 규모와 가입자 수 등을 제한해 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그동안 사모펀드 투자 피해 역시 제한적 범위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는 수많은 개미투자자가 막대한 피해를 봤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국내에 사모펀드가 처음 도입된 건 IMF 외환위기 직후다. 글로벌 사모펀드의 한국 기업 사냥에 대응하려는 목적이 컸다. 이후 국내 사모펀드는 계속 성장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사모펀드 시장이 급성장했다. 금융 당국이 2015년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했기 때문이다. 먼저 진입 규제를 크게 줄였다. 자산운용사 설립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변경한 것이다. 이 때문에 2015년 93곳이던 자산운용사는 지난해 말 292곳으로 늘었다.

또 최소 투자금도 기존 5억원에서 1억원으로 하향했다. 100만 달러 이상의 자산가만 사모펀드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미국에 비해 투자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이로 인해 투자에 전문성이 없는 개미투자자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했다. 그 결과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사모펀드 순자산은 400조원을 넘겼다. 2017년 우리나라 정부 예산(400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규제 완화에는 관리·감독 강화가 동반돼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생략됐다. 되레 증권사들이 자산운용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대형화된 판매사들이 소규모 자산운용사들을 상대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지 못하게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 때문에 사모펀드의 운용자산 세부 내역은 베일에 가려졌다. 결국 사모펀드 규제 완화로 사모펀드 시장에는 부실 자산운용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렇게 설립된 부실 자산운용사들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편법도 동원했다. 국내에선 사모펀드 투자자 수를 100인 이하(규제 완화 이전 49인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그 이상에게서 투자를 받기 위해선 규제가 많은 공모펀드가 돼야 한다. 그러나 라임이나 옵티머스 등 최근 물의를 빚은 자산운용사들은 펀드를 여러 개로 쪼개는 식으로 ‘무늬만 사모펀드’를 만들어 규제를 피했다.

라임의 경우를 예로 들면, ‘라임NEW무역금융12M(개월)’을 출시한 직후 사실상 동일한 펀드인 ‘라임NEW무역금융1Y(년)’를 내놓는 식이었다. 이른바 ‘시리즈 펀드’다.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라임·옵티머스 등 물의를 일으킨 사모펀드 대부분은 시리즈 펀드로 알려졌다. 이들 운용사는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개미투자자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책임 떠넘기는 증권사와 금융 당국

사모펀드에서 불거진 사태들에 연관된 증권사와 금융 당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일단 개인투자자들은 자신들에게 펀드를 판매한 증권사에 1차적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러나 증권사들은 자신들도 자산운용사로부터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마냥 틀린 얘기는 아니다. 증권사의 경우 자산운용사의 자산 편입과 운용 등에 관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증권사들은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펀드를 불완전판매한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투자자들에 따르면 일부 증권사는 펀드를 판매하면서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펀드’ ‘원금을 보장하는 증권사가 기획한 상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라임의 일부 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부실을 인지하고도 펀드를 판매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이 때문에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올해 6월 증권사들에 문제가 된 펀드 투자금 전액을 환불할 것을 권고했다. 여기에 윤석헌 금감원장이 분쟁조정안 수용 여부를 경영실태평가에 반영하겠다며 압박했다. 그러자 펀드를 판매한 모든 증권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금감원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금감원이 증권사들에 사태의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금감원도 투자자들로부터 금융감독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금감원은 사모펀드에 대한 감시·감독 권한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면서 금감원은 다시 금융위원회에 화살을 돌렸다. 금융위의 사모펀드 규제 완화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통계도 있다. 최근 10년간 모든 사모펀드 환매 연기 사례가 2015년 이후 발생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사모펀드 환매 연기 건수는 모두 361건이다. 이 중 2011년부터 2017년까지는 환매 연기가 단 1건도 없었다. 2018년 처음으로 10건이 발생한 데 이어 2019년 187건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8월까지 164건이 추가됐다.

그러나 금감원 역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금감원 전·현직 직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서다. 청와대에 파견된 한 금감원 직원은 라임 사태 관련 금감원 조사 문건을 빼돌리고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최근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또 금감원 국장급 직원은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에게 금융계 인사를 소개해 준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사모펀드와 판매사인 증권사, 감독 당국인 금감원과 금융위의 책임 떠넘기기로 개미투자자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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