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층간소음분쟁’…코로나19가 만든 또 하나의 풍속도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3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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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원격수업 등 늘면서 울산 1분기 온라인 접수 75건 달해
이웃 간 주먹다짐 번지기도...“관련조례, 법적 강제성 없어 ‘권고’ 그쳐”

아파트 층간소음분쟁이 증가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집콕’ 시간이 늘어나며 ‘층간소음’ 갈등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 갈등을 넘어 이웃 간 다툼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위층에서 수시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이 다퉜습니다. 홧김에 주먹을 휘두른 걸 후회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합니다” 

층간소음 문제로 평소 갈등을 빚던 이웃을 폭행해 다치게 한 40대에게 벌금형이 선고됐다. 울산지법 형사10단독 김경록 판사는 상해 혐의로 기소된 A(40)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3월 10일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서 평소 층간소음 문제로 다툼이 잦았던 위층 거주자 B씨를 불러내 주먹과 발로 얼굴과 다리 등을 수차례 때려 30여일간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지난 5월에도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던 아래층 주민의 현관문 앞에서 부탄가스를 누출시키며 난동을 피우고 현관문을 파손해 10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입힌 B씨(39)씨에 대해 울산지법 제11형사부는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으로 실내에 머무는 경우가 증가하며 층간소음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울산시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으로 실내에 머무는 경우가 증가하며 층간소음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울산시

올해 1분기 울산 층간소음분쟁 작년보다 41.5% 증가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울산지역 층간 소음 분쟁 온라인 접수현황은 75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53건)보다 41.5% 증가했다. 또 올해 1분기 울산지역 현장진단 접수현황은 6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2건)보다 21.1% 늘어났다. 현장진단은 방문상담, 소음측정 등으로 이뤄진다.

공단 관계자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온라인 수업 등으로 실내에 머무는 경우가 증가하며 층간소음 분쟁도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층간소음 문제가 주목을 받았다. 현장진단 담당자 부족 문제를 제기한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층간소음 접수 증가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층간소음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인원확충 등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분쟁조정관리위원회의 저조한 실적을 지적한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주거형태 변화에 따른 공동주택 관련 민원이 증가하고 있으니 정부와 지자체가 민원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층간소음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무료 층간소음 측정 등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인력부족으로 폭증하는 소음 민원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8월 말 기준 전국에서 접수된 소음측정 민원은 7431건이다. 이에 반해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 현장진단 접수 담당자는 13명에 불과하다. 층간소음 현장진단 신청하면 최대 7개월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게 현실이다.

주택법이 규정하는 층간소음은 아이들이 뛰는 소리와 애완견이 짖는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 늦은 시간이나 이른 시간 세탁기나 청소기, 골프연습기, 운동기구 등을 사용하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 등 다양하다. 층간소음 법적 근거는 ‘공동주택 층간 소음 범위 기준에 관한 규칙 제3조’다. 층간소음기준에 의해 직접충격소음의 경우 1분간 소음을 측정해 주간(오전6시~오후10시) 43㏈ 이상, 야간(오후10시~오전6시) 38㏈ 이상의 경우 층간소음으로 인정된다. 이를 바탕으로 분쟁조정위원회나 민사소송 등에 피해 근거로 활용된다.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는 “지차체 소음 분쟁조정의 경우 법적 구속력이나 뾰족한 해결이 없는 실정이어서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파트 층간소음 분쟁조정 실적 한 건도 없어

실제로 울산지역 5개 구군은 2017년부터 공무원과 변호사, 건축학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공동주택 분쟁조정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 한건도 조정접수된 사례가 없다. 남구청 관계자는 “고소·고발과 달리 층간소음 분쟁조정은 양측 모두 동의해야 하는데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만 동의하고 원인제공자로 지목된 사람은 동의하지 않고 법적대응에 바로 나서다 보니 실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주택법이 정하는 층간소음은 뛰는 소리·애완견 짖는 소리·문을 여닫는 소리·늦은 시간이나 이른 시간 세탁기나 청소기 소리 등 다양하다ⓒ박치현 기자
주택법이 정하는 층간소음은 뛰는 소리·애완견 짖는 소리·문을 여닫는 소리·늦은 시간이나 이른 시간 세탁기나 청소기 소리 등 다양하다ⓒ박치현 기자

울산시도 지난 2017년 8월 ‘공동주택 층간소음 방지조례’를 공포했다. 이를 근거로 층간소음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아파트 입주민 관리규약을 개정하고 소음관리위원회 설치, 교육 등을 통해 입주민 간 분쟁을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이러한 분쟁 조정은 법적인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으로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지역 ‘맘카페’에는 코로나19 이후 층간소음 관련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 카페 회원은 “위층에서 몇 시간 째 달리기에, 점프소리 때문에 너무 힘들다. 아이들이 코로나 때문에 바깥에 못 나가는 건 이해하지만 최소한 피해는 주지 말아달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회원은 “위층도 층간소음 당해봐라”’는 식의 복수 팁(?)을 공유하기도 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관계자는 “실내 활동이 많은 겨울에 상담건수가 증가하는 데 올해는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쳐 크게 늘어나고 있다”며 “아래층은 ‘이해’, 위층은 ‘배려’가 중요한 시기”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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