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든, 그 곳이 곧 ‘자라섬’이었다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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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으로 열린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이젠 물리적 범위를 벗어난 하나의 ‘브랜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온라인에서 열렸다. ‘재즈’라는 쉽지 않은 장르로 15년 넘게 롱런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뮤직페스티벌 중 하나지만, 코로나19 앞에서 온라인 개막이란 초유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3일간만 열렸던 것과 달리 올해 축제기간은 10월 9일부터 25일까지였다.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의 열기, 공간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사운드, 아티스트와 가까이에서 교감하는 짜릿함은 없었으나, 누구든 티켓 값이나 이동에 대한 부담 없이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을 만끽할 수 있었다는 건 코로나19의 역설이었다.

약 보름 동안 매일 저녁 유튜브에서는 재즈공연 영상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장소에서 온라인 공연을 즐기며 채팅으로 소감을 전했다. 누군가는 집에서, 누군가는 운전을 하며, 또 누군가는 동네 공원에서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어디에 있든, 그곳이 바로 자라섬인 셈이었다.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된 '자라섬뮤직페스티벌' ⓒ유튜브 캡처
10월 9일부터 25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된 '자라섬뮤직페스티벌' ⓒ유튜브 캡처

무명의 ‘자라섬’을 단숨에 핫스팟으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이보다 역사가 긴 뮤직페스티벌(이하 뮤페)은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정도뿐이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등장한 이후 2007년을 기점으로 굉장히 많은 뮤페들이 등장했는데, 지금 우리나라 뮤페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축제들 중에는 이 시기에 시작된 것들이 많다. 그랜드민트페스티벌, 월드디제이페스티벌, 서울재즈페스티벌이 모두 그러한 경우다.

이때부터 뮤직페스티벌의 양적인 수도 많아졌지만 내용 또한 풍성해졌다. 90년대까지 뮤페는 곧 ‘록페(rock festival)’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록 장르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공원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며 재즈나 인디밴드의 공연을 감상하는 그림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자라섬이 공원은 아니었지만, 재즈페스티벌을 통해서 그린스페이스와 피크닉, 그리고 공연 관람이란 세 가지 요소들이 결합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뒤이어 서울의 올림픽공원과 서울숲에서 열리는 재즈페스티벌들이 탄생하면서, 이런 문화는 곧 도시에서 공원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경기도 가평군의 자라섬 내 잔디광장.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가 설치되던 장소다. ⓒ김지나
경기도 가평군의 자라섬 내 잔디광장.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메인 스테이지가 설치되던 장소다. ⓒ김지나

무엇보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가평의 버려져 있던 외딴 섬 ‘자라섬’을 지역의 핫스팟으로 만들었다. 예전에는 자라섬이 어디에 있는 섬인지도 사람들이 잘 몰랐다고 한다. 자연 관광 일색이던 가평이 문화예술의 거점이 됐고, 자라섬은 ‘재즈의 섬’이란 타이틀을 갖게 됐다. 서울에서 아무리 좋은 뮤페가 열려도, 오리지널은 자라섬이라는 프라이드가 생겼다.

게다가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축제기간 중 메인 스테이지 외에 가평읍 곳곳에서 작은 공연들이 열린다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카페, 주점, 심지어 카센터까지 충분히 괜찮은, 아니 오히려 더 ‘재즈’의 자유분방함과 어울리는 훌륭한 공연장이 된다. 다른 뮤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평소보다 몇 배 많은, 그리고 문화예술에 목말라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메인 행사장만 왔다 가지 않고 며칠을 가평에 머문다. 덕분에 경제적인 효과는 물론, 가평 일대에 평소와 다른 활기와 자극이 넘치는 것이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핵심이다.

옛 가평역 일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음악역 1939' ⓒ김지나
옛 가평역 일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음악역 1939' ⓒ김지나

지역과 공생하는 이상적인 모델

‘자라섬’과 ‘재즈페스티벌’은 공생 관계다. 자라섬과 같은 특수한 장소가 없었다면 재즈페스티벌의 문화는 이만큼 꽃피지 못했을 것이고, 재즈페스티벌이 아니었다면 자라섬이 이 정도의 브랜드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작년 초 오픈한 가평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는 옛 가평역 일대를 음악 관련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1939는 가평역이 개장했던 해를 의미한다. 공연장과 스튜디오, 로컬 푸드 매장까지 갖추면서 음악도시 가평을 대표하는 거점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장소가 생뚱맞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영향의 크다.

그런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이 자라섬에서 열리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올해 자라섬은 가평이란 물리적 범위를 벗어난 ‘브랜드’였다. 앞으로는 사람을 불러 모아서 지역을 활성화하는 방법 대신 이 브랜드를 이용한 새로운 문화기획이 필요하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를 갖춘 가평에 필요한 나머지는 지역의 크리에이터들을 중심으로 하는 ‘휴먼웨어’일 것이다. 이번 온라인 뮤페가 다음 스텝을 내딛는 첫 번째 계기가 되길 바라며, 또 한 번의 센세이션을 일으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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