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 무시, 전남도는 죽었다”…나주 주민들, ‘만장’ 시위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10.2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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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혁신도시 주민들, SRF발전소 문제해결 촉구 집회
‘전남도청 항의집회’ 주민들, 전남도·도지사 동시 저격
주민들 이유 있는 항변…“행정권한 줬어도 행사 못해”

준공된 후 3년째 가동을 못하고 있는 ‘나주 고형연료(SRF)열병합발전소’ 가동 문제는 전남 나주혁신도시의 최대 현안이다. 하지만 해법 마련에 나섰던 민관협력 거버넌스가 최근 파탄을 맞은 반면, 한국지역난방공사의 일방적 가동 강행이 초미의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격앙된 주민들이 관련 기관을 찾아 만장시위를 벌이는 등 갈등이 커지고 있다. 10월 26일 오전 전남 무안군 삼향면 남악리 전남도청 정문 앞 도로. 나주혁신도시 주민 200여명은 ‘나주SRF열병합발전소’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이곳에서 ‘쓰레기 연료(SRF) 열병합발전소 가동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집회에서 김영록 전남지사에게 “광주 쓰레기 반입을 막아내고, 나주 SRF문제를 즉각 해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남 나주혁신도시 주민 200여명은 26일 오전 전남도청 정문 앞 도로에서 “아이들이 마루타냐”가 적힌 만장기를 들고 ‘쓰레기 연료(SRF) 열병합발전소 가동 규탄 집회’를 열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나주혁신도시 주민 200여명은 26일 오전 전남도청 정문 앞 도로에서 “아이들이 마루타냐”가 적힌 만장기를 들고 ‘쓰레기 연료(SRF) 열병합발전소 가동 규탄 집회’를 열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나주혁신도시 주민 200여명은 26일 오전 전남도청 정문 앞 도로에서 만장기를 들고 ‘쓰레기 연료(SRF) 열병합발전소 가동 규탄 집회’를 열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나주혁신도시 주민 200여명은 26일 오전 전남도청 정문 앞 도로에서 만장기를 들고 ‘쓰레기 연료(SRF) 열병합발전소 가동 규탄 집회’를 열었다. ⓒ시사저널 정성환

주민들의 절규 “아이들이 마루타냐. SRF문제 즉각 해결하라”

나주혁신도시 주민들은 코로나19를 감안한 ‘차량 투쟁’을 위해 오전 10시쯤부터 각자 승용차와 SUV 차량 등을 이용해 집회장에 속속 모였다. 주로 30~40대 젊은 주부들이 몰고 온 차량은 채 30여분이 지나지 않아 도청 서쪽 정문 앞 양쪽 100여m 도로를 가득 채웠다. 집회를 이끈 나주시민임시비상대책위원회 측은 전남도에 분노와 항의를 표시하고 강력한 경고를 전달하기 위해서 ‘도민을 무시하는 전남도는 죽었다’는 의미로 만장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이 도열해 펼쳐 든 20여장의 만장기에는 ‘SRF 결사반대’ ‘손실금 9천억 웬말이냐’ ‘쓰레기 혁신도시’ ‘아이들이 마루타냐’ ‘나주 농산물 지키자’‘제대로 숨쉬고 싶다’ 등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일부 만장기에는 퇴출을 요구하는 관련 기관장 이름도 기재돼 SRF사태에 대한 나주 주민들의 분노를 짐작케 했다. 범대위에선 이른바 ‘SRF 6적’으로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전남도, 나주시, 광주시, 산자부, SRF를 이용한 국회의원 등을 꼽는다. 이날 시위는 참다못한 주민들이 SRF 6적 중 ‘1적’으로 여긴 전남도와 김영록 전남도지사를 찾은 셈이다. 

오전 11시30분부터 시작된 집회에서 주민들은 차량 안에서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결사 반대! 결사 반대! 결사 반대!” 구호를 외쳤다. 이어진 주부와 학부모, 청년, 농민들이 나선 각계의 발언시간에선 전남도와 김 지사를 향해 “지난 1년여 동안 전남도가 체면치례로 하는 시늉만 하며 허송세월만 했지 한 게 뭐 있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위임해준 권한도 제대로 행사 못하는 전남도는 죽었다”며 전남도와 도백을 향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 중간 중간에는 차량 수백여 대가 일제히 항의표시로 “빠아앙~”“빠아앙~”“빠아앙~” 경적을 울려댔다. 

전남 나주혁신도시 주민 200여명은 26일 오전 전남도청 정문 앞 도로에서 ‘쓰레기 연료(SRF) 열병합발전소 가동 규탄 집회’에서 한 학부모가 발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 나주혁신도시 주민 200여명은 26일 오전 전남도청 정문 앞 도로에서 ‘쓰레기 연료(SRF) 열병합발전소 가동 규탄 집회’에서 한 학부모가 발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대책위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전남도가 지난 1년여 동안 무성의한 협상 태도를 보였다”며 “전남도와 도지사의 행정권한은 전남도민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다. 전남도와 김영록 지사는 12만 나주시민과 굳건한 연대로 정부를 상대로 잘못된 SRF 정책을 폐기시키고 광주쓰레기는 광주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모든 활동의 전면에 나서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대책위와 도지사와의 면담은 김 지사 측의 갑작스런 사정으로 인해 불발됐다. 이날 오전 코로나19 확진자로 판정받은 나주시청 공무원과 관련 김 지사가 2차 접촉자로 분류되면서다. 이와 관련 대책위 측은 김 지사를 대신해 정무부지사 등 도청 간부들 몇몇이 참석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들은 코빽이도 보이질 않았다. 결국 이날 시위는 분노를 표출한 주민만 있고, 정작 경청에 나서야 할 관이 없는 반쪽 집회에 그쳤다. 이에 일부 참석자는 “이래서 전남도가 죽었다는 극언까지 듣는다”고 성토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김 지사에게 SRF발전소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을 촉구하는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낸 뒤 집회를 마무리 했다. 

 

‘꼬여만 가는’ 나주SRF발전소…거버넌스 파탄

SRF발전소는 1일 440톤에 달하는 광주권 가연성 생활쓰레기로 만든 SRF 반입의 부당성과 고형연료 사용 문제를 놓고 3년 넘게 갈등을 빚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국지역난방공사와 지방정부, 국회, 중앙정부까지 서로 “네 탓이다”고 책임 공방을 벌이면서 더욱 꼬이고 뒤틀린 양상이다. 

나주 SRF발전소 문제는 지난 2017년 9월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후 장장 3년여 동안 연인원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항의시위가 열리는 등 지역의 가장 뜨거운 현안으로 대두됐다. SRF발전소 가동 여부를 놓고 갈등이 커지자 지난해 1월 산자부·전남도·나주시·한국난방공사·범대위(나주시민대책위) 등 5자가 참여하는 민관협력 거버넌스가 구성됐다. 마침내 그해 9월에는 기본 합의도 도출했다. 

하지만, 불가역적인 완벽한 합의점은 찾지 못했다. 거버넌스의 합의안에 주민들이 반발하면서다. 거버넌스는 최근 11월30일까지 SRF발전소 중단에 따른 손실보전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지역난방공사 재량으로 열 공급을 하겠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하지만 범시민대책위는 ‘사실상 SRF발전소 가동에 합의한 것’이라며 거버넌스 탈퇴와 해체를 선언했다. 이로써 지난 9월 21일 제20차 거버넌스 회의를 끝으로 SRF열병합발전소 문제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거버넌스 합의안에 서명한 주민 대표까지 사퇴하면서 남은 주민들은 합의 파기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주민들의 집단행동이 변수로 떠올랐다. 김철민 나주시의원 “열 공급 사항은 시민들의 추인을 받아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합의안을 도출하려고 4자가 기획했다고 저희는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동·손실보상금 놓고 또 시끌시끌…해법 ‘제각각’ 

나주SRF열병합발전소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나주SRF열병합발전소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이해 당사자들의 해법은 제각각이다. 지역난방공사는 합의안에 따라 SRF 가동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주민들은 결사반대다. 중간에 낀 전남도는 지역난방공사 측에 대체 수익 사업을 제안해 SRF 가동만큼은 막아보겠다는 입장이다. 합의안에 따라 가동하겠다는 지역난방공사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주민들 사이 갈등이 심해지면서 가동 여부는 다시 안갯속에 빠졌다.

손실보상 범위 등도 난제다. 손실보상금이란 직접투표 방식이 포함된 수용성 조사 결과, 주민들이 집단난방을 공급하는 열병합발전소 연료를 액화천연가스(LNG) 100%를 선택할 경우 기존 SRF 발전설비와 부속시설을 매몰 처리해야 될 한국지역난방공사에 보존해줘야 할 비용이다. 현재 대략적으로 SRF 매몰비용은 8001억원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이중 33.9%(2720억원)를 광주시 남구 양과동에 들어선 고형연료(SRF) 자원화시설인 청정빛고을(주)이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금액은 투자비 손실 1561억원, 운영손실 3720억원 등이다. 

일부에선 발전소 운영주체인 지역난방공사가 손실보상액으로 9000여억원을 제시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손실보전 범위에 광주SRF를 생산하는 청정빛고을까지 포함해야한다는 지역난방공사의 주장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게 나주시의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신정훈(전남 나주·화순) 의원은 10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한국지역난방공사 국정감사에서 “나주 SRF 민관협력 거버넌스의 기본합의서에 의한 해결방안이 마련되려면 난방공사가 요구하는 광주쓰레기 자원화시설인 ‘청정빛고을㈜’는 손실보상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황창화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은 “청정빛고을에 대한 손실보존 제외는 광주시에서 난방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보상 소송을 취하 해주면 당연히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답변해 공을 광주시로 떠 넘겼다. 

 

‘으르렁’ 광주시·나주시 감정싸움

이런 와중에 가장 첨예한 당사자인 난방공사와 지역주민 간 갈등에 이어 지방정부와 국회, 중앙정부까지 책임 떠넘기기 공방에 가세했다. 이 때문에 해법 찾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폐기물 처리에 있어 모두가 이해당사자인데도 불구 결코 내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산업부와 환경부는 여전히 입을 꽉 다물며 방관자 역할에 충실할 뿐 뭔가를 해 볼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새다. 

더구나 광주시와 전남 나주시가 갈등 양상을 보여 상황이 더 꼬이게 됐다. “광주 쓰레기는 광주에서 처리하라”는 나주시의 요구에 광주시는 “사실관계 왜곡으로 자극했다”며 맞섰다. 광주시는 12일 입장문을 내고 “나주 열병합 발전소의 가동 여부는 운영 주체인 한국 지역난방공사와 허가권자인 나주시가 결정할 사안”이라며 “합법적인 계약관계에 따라 조치를 하고 시민의 세금이 소홀히 되지 않도록 법적인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나주시가 광주 SRF 반입에 반대했다면 다른 컨소시엄으로 우선협상대상자를 변경해서라도 나주가 아닌 제삼의 장소에서 광주 SRF를 처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8일 나주시가 내놓은 입장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나주시는 “광주 SRF로 겪는 나주시민의 고통을 생각하고 손실보전 협상 촉진을 위해서라도 광주 쓰레기는 광주에서 처리해 달라”고 촉구했다. 지금의 난맥상은 광주시의 이기적인 쓰레기 정책과 난방공사의 무리한 사업 추진이 빚은 결과라는 게 나주시의 입장이다. 

민관거버넌스위원회를 설립해 어렵게 실마리를 풀어가는 와중에 이처럼 다들 상대방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어 정해진 기한인 11월말까지 나주 SRF 해법이 나오기 쉽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주민대표단은 거버넌스를 탈퇴하고 주민들이 집단행동에 본격 나서면서 일이 더욱 꼬이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나주 SRF문제가 ‘최악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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