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책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11.0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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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많은 사람이 슬픔도 많아서》ㅣ정용철·사진ㅣ좋은생각 펴냄ㅣ200쪽ㅣ1만3000원

《느리게 사는 즐거움》의 저자 젤린스키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100개의 근심걱정 중에 96개는 쓸 데 없는 것이다. 이중 40개는 중국 고사 기우(杞憂, 하늘이 꺼질까 걱정하는 것)처럼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것들이고, 30개는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일로서 부질없는 짓이다. 22개는 아무렇게나 결정을 해도 크게 상관 없는 사소한 것들이고, 4개는 우주의 섭리로서 사람이 걱정해봐야 뾰족한 수가 없어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100개 근심걱정 중 열심히 대책을 찾아 헤쳐나가야 할 것들은 겨우 4개에 불과하다. 이것을 깨달은 티벳 사람들은 예로부터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이 없겠다’고 했다던가.

그걸 뻔히 알면서도 과거의 일을 되새기며 번뇌에 쌓이는 것이 사람의 한계일까. 필자는 종종 20대 후반에 보냈던 몇 년의 ‘허송세월’을 되새기며 괴로워한다. ‘만약 내가 그때 어떻게 했더라면 이리저리 잘 살았을 텐데’ 하는 한탄이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인과(因果)와 필연으로 결속됐는데 그 몇 년이 밑거름이 됐는지 허송세월이었는지 판단은 인간의 영역이 아닌 신의 것이라 현재가 아닌 과거, 미래는 모두 무효다. 오직 ‘지금 어떠하냐’가 중요할 뿐이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최근 17년 징역형을 선고 받은 ‘이아무개씨’를 보면 더욱 그렇다. 학생회장, 현대건설, 서울시장, 대통령으로 이어졌던 그의 찬란했던 과거는 17년 징역형 앞에서 전체 무효다. 그에 비하면 이제까지 특출 난 것은 없을지라도, 그를 교훈 삼아 남은 인생을 망치지 않도록 노력할 기회와, 앞으로 찬란할지도 모를 기회가 남아있는 필자가 그리 꿀릴 것도 없다는 ‘좋은 생각’마저 하기에 이른다.

《좋은생각》은 지난 30여 년 국민 도덕 교과서 역할을 해온 월간지다. 《좋은생각》 이전에 월간 잡지 《샘터》가 있었다. 사람 살아가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가슴을 적셨다. 특히 소설가 고(故) 최인호의 연재 에세이 ‘가족’이 유명했다. 그 이전에는 고(故) 한창기 발행인의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 있었다. ‘한국 잡지의 역사는 한창기 이전과 이후로 갈린다’고 했을 만큼 잡지 출판의 획을 그은 ‘명품’이었다. 만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나 청년기, 성인이 되는 동안 위에서 언급한 잡지들 중 하나를 자주 또는 꾸준히 읽은 사람이라면 그의 사람 됨됨이는 물어볼 필요조차 없을 것이라 감히 장담한다. 어떤 책을 읽으며 자라는가가 인성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기 때문이다.

《사랑 많은 사람이 슬픔도 많아서》는 20~21세기에 걸친 월간지 《좋은생각》을 창간했던 정용철의 산문집이다. ‘하루에 좋은 이야기 하나라도 접하면 그 사람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으로 만들어졌던 《좋은생각》을 한 권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느낌으로 《사랑 많은 사람이 슬픔도 많아서》를 추측하면 틀림이 없겠다. 그가 이 책을 낸 이유는 ‘거짓으로 보낸 젊을 시절을 뒤로 하고 진실을 향해 시들어 가기로 한’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신을,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서’다.

정용철은 ‘언어’에 대해 “꽃으로도 칼을 만들 수 있다. 언어는 꽃이지만 칼도 될 수 있다. 언어는 누군가의 삶을 단숨에 벨 수 있고,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언어는 정직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그래야 서로에게 꽃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러므로 언어의 바탕은 사랑이요 희망이다. 언어는 우리가 (미래를 위해) 서로 주고 받는 최고의 선물이다”고 썼다. 시인 장석주는 “세상에 지지 않으려고 누구보다 애쓰며 산 자기 자신에게 선물로 주고 싶은 책”이라고 말했다. 요즘 시국에 비췄을 때 필자가 말로써 유명한 아무개 씨에게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책값이 아깝기는 하겠지만.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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