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불안하지 않으면 정상 아니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7 14:00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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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 171%
코로나19 이후 상황에 대한 우려 키워

2020년 말 시중은행들이 갑자기 신용대출을 중단했다. 대출을 관리하라는 당국의 압박이 초래한 결과다. 물론 대출을 아예 하지 말라고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주시하겠다는 금융 당국의 말은 웬만하면 하지 말라는 소리다. 신용대출만이 아니다. 어떤 조건이든 대출이 어려워졌다. 제출할 서류는 늘어났고 심사는 까다로워졌다. 대출 규제는 부동산값을 잡기 위해 나온 것이기도 하다. 금융위원회는 신용대출로 1억원이 넘게 돈을 빌린 후 규제지역에서 집을 사면 즉시 대출금을 회수하도록 했다. 겉으론 대출 규제지만 실은 부동산 규제책인 셈이다.

적절한 대책인지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가계대출 급증세는 우려할 만한 일이다. 가계부채의 급증이 대출 부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금융 당국이 경계하고 관리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는 2021년 1분기에 다시 가계부채 관리 선진화 방안을 마련해 유동성을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가계부채 규모는 보통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가계신용 또는 자금순환표상의 개인 부채 통계로 파악한다. 가계신용은 ‘가계대출’과 ‘판매신용’으로 구분하는데, 가계대출이란 말 그대로 가계가 생활이나 부업 등을 위해 받는 대출을 의미하고, 판매신용은 신용카드나 할부금융사를 통한 외상거래를 뜻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우리나라의 지난 3분기 가계신용 규모는 1682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가계대출 규모는 약 1585조원으로 주택담보대출 890조원, 신용대출 690조원 정도였다. 판매신용은 96조원 정도다. 3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 1.3%였는데 빛은 오히려 7% 늘어났다. 명목 GDP 대비 가계신용 비율은 101.1%로,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100%를 돌파했다. 나라의 전체 경제 규모보다 커진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든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주요 은행들이 대출 접수 경로를 아예 차단하는 이례적 조치를 내놓고 있다. 사진은 서울 중구 명동 하나은행 ⓒ연합뉴스

무늬만 대출 규제, 실상은 부동산 규제

가계부채 급증에 대해 그동안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정부 당국은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해 여러 번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집값을 잡지 못한 탓이 역시 가장 크다. 실제 가계대출 급증의 원인으로도 역시 주택의 구입, 전세자금 수요와 개인의 주식 투자자금 수요 등이 꼽힌다. 금융 당국의 대출 규제가 근본적인 대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집값이 계속 오르고 가계부채도 빠르게 늘면서 경제 위험 요소로서 ‘금융 불균형’ 상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물경제 상황과 비교해 빚이 너무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모든 부채가 그렇지만 가계부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가계부채는 단기적으로 보면 소비를 늘려 경제성장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미래의 소득이 원리금 상환의 부담보다 크다면 빚을 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가계부채 증가로 인한 소비 증가 효과는 아무래도 단기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채무 부담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내수가 위축되고 소득이 축소되면서 다시 채무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쉽다.

실제로 가계가 빚에 짓눌려 있는 한 민간소비가 회복되기는 어렵다. 2020년 3분기 민간소비는 전년 동기 대비 4.4% 줄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긍정적인 효과와 부정적인 효과가 다 있지만 적어도 201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가계부채 증가가 소비와 경제성장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적절한 가계부채 수준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결제은행에서는 한 국가가 감내할 수 있는 범위의 가계부채 수준을 해당 국가의 국내총생산 대비 85% 안팎으로 본다고 한다. 하지만 상황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위기를 과장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봐도 부채가 증가했다고 해서 곧바로 위기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에도 위기가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가계부채의 주체, 용도 등의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70% 정도는 소득 기준으로 상위 40%에 해당하는 가구가 가지고 있다. 부채 상환능력이 높은 중간 이상 고소득층이 상당한 가계부채를 안고 있는 한, 당장 부실 리스크가 크다고 할 수는 없다. 늘어난 가계부채가 대부분 소비보다는 주택 구입, 아니면 사업자금으로 쓰인 것도 가계부채의 리스크가 커지는 것을 예방한다. 부채가 늘어난 만큼 그에 상응해 자산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가계부채 증가율이 명목소득 증가율보다 높은 건 바람직하지 않다. 채무 상환능력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소득으로 빚을 갚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통계를 잡기 시작한 2002년 이후 가장 높은 171%다. 가계 빚 증가의 중심에는 2030세대와 저소득층이 자리 잡고 있다. 연령대로 보면 30대 이하의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이 가장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집값이 뛰어오르고 전세대출 수요가 급증한 것이 아무래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임경은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와 기업, 가계가 모두 빚잔치

빚까지 끌어모아 주식에 투자하는 청년층의 주식투자 수요 확대도 마찬가지다. 저소득층에서 빚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불안한 요인이다. 경기가 어려워진 탓이겠지만 최근 소득 수준별로 보면 저소득층의 대출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소득 1분위 가구의 채무상환 비율은 61.9%였다. 소득의 60% 이상을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 가계부채 통계에서 빠진 자영업자 대출의 증가도 문제가 크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의 부채는 앞으로 특히 상환에 어려움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가계와 기업을 합친 민간부문의 빚은 사상 처음으로 GDP의 2배를 넘어섰다. 우리나라의 가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의 빚을 모두 합치면 5000조원에 육박한다. 가계와 정부, 그리고 기업 가운데 빚이 증가한 속도를 따지면 가계가 가장 빠르고 그다음이 정부다. 부채의 질 역시 가계가 가장 좋지 않다. 너무 많은 가계부채와 부동산 가격의 급등으로 축적된 위험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다. 가계든 기업이든 정부든 부채 중독은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지난 200년간 전 세계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는 발생 전에 먼저 대규모 부채 증가를 수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나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가장 먼저 부채를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게 될 것이다. 국가와 기업, 가계가 모두 빚더미 위에 서 있다. 불안하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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