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잘 지는 법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4 09:00
  • 호수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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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본다. 수치가 많이 바뀌어 있지만, 놀랄 일은 아니다. 매번 발표되는 결과가 둘쭉날쭉한 것은 이제 새삼스럽지 않다. 조사기관이나 조사 방식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정반대의 그래프가 나타나기도 한다. 바로 최근에 연달아 발표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만 봐도 그렇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1위를 차지했지만 다른 조사에서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선두에 올랐다. 이처럼 롤러코스터를 탄 듯 오락가락하는 결과 탓에 매번 발표되는 수치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오히려 수치 등락보다는 추세를 집중해서 보는 편이 낫다.

숫자 속에 숨은 민심을 예리하게 끄집어내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여론조사 결과만큼이나 제각각이지만, 전반적인 추세에서 대통령 지지율이나 여당 지지율이 최근 들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특히 최근 법무부 장관-검찰총장 간 마찰에서 여권에 불리한 일들이 잇달아 불거지는 등 악재가 겹치면서 더욱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대통령의 레임덕이 좀 더 일찍 찾아올 수 있다는 경고도 적지 않게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금의 지지율 하락이 향후 지속적인 ‘추세’로 자리 잡을지는 알 수 없지만, 여권으로서는 이탈하는 민심을 붙잡을 획기적인 반전 카드가 절실한 상황이다. 어렵사리 법안을 통과시켜 곧 출범하게 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조차 스스로에게는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쓴 채 띄운 공수처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여권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야당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다수 의석을 가진 여권에 대항할 무기와 의지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권의 실수를 지켜보자. 대신 우리는 실수하지 말자”라는 지도부의 생각대로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었지만, 그 같은 ‘가만히’ 전략이 앞으로도 계속 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 ‘가만히’가 되레 스스로의 운신을 방해하는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력과 능력이 없는 곳에는 민심도 없다.

이제 막 지나간 2020년은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거의 1년 내내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겪었던 고통의 크기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그렇다고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거나 웃음을 보탠 적도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정치의 언어가 과거보다 더 순해졌다거나 정치의 몸짓이 더 단정해졌다는 소식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정치가 오히려 국민의 시름과 우울을 더 깊게 했다는 말만 어지럽게 떠돌았을 뿐이다.

정치가 국민을 웃게 하진 못할망정 국민을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지난 한 해에도 정치의 국민 괴롭힘은 극심했다. 서로 이기려고만 했을 뿐, 잘 지는 법을 배우거나 실행하려고 한 적이 전혀 없었다. 한 번 잘 진 사람이 다음 싸움에서 제대로 이길 수 있다는 간단한 이치조차 깨닫지 못한 채 거칠게 맞부딪치기만 했다. 여당은 야당 탓, 야당은 여당 탓이라고 했지만 국민이 보기에 그 모든 것은 그냥 ‘당신들 탓’이다. 서로 이기려고 승리에 몸 달아 했지만, 그 승패를 판단하는 주체는 국민이라는 것을 당신들만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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