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감염 여파에 재소자부터 백신 접종?…美도 격렬 논쟁
  • 이혜영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1.01.0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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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우선접종 시도하다 여론 뭇매맞고 철회
정부, 2월 접종 앞두고 교정시설 순위 고심 거듭할 듯
3일 오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부모님은 코로나에 걸린 줄도 몰라요'라는 내용이 적힌 손 팻말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 연합뉴스
3일 오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한 수용자가 '부모님은 코로나에 걸린 지도 몰라요'라는 내용이 적힌 손 팻말을 취재진에게 보여주고 있다. ⓒ 연합뉴스

'구치소발(發)' 코로나19 집단감염 확산세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대규모 감염이 발생한 후 다른 교정시설로 옮아붙으며 국내 신규 확진자 규모는 다시 1000명 대로 올라섰다. 

상황이 악화하자 시민들 사이에선 초읽기에 들어간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 교정시설 재소자들도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보다 백신 접종을 먼저 시작한 미국에서도 범죄자 우선 접종에 대한 논란이 커지면서 보건당국과 주(州)정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美, 재소자에 '우선 접종' 공방

3일(현지 시각) 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콜로라도주는 고령층과 기저질환이 있는 시민보다 교도소 수감자들에게 백신을 먼저 접종하려던 계획을 세웠다가 이를 철회했다.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 중인 이들을 일반 시민보다 우대해 백신을 우선 접종하는 것에 대한 여론의 거부감과 비판이 들끓은 데 따른 것이다. 

범죄자에 대한 우선 접종 계획을 둘러싼 논쟁은 온라인에서 더욱 격렬하게 펼쳐졌다. 콜로라도주 주요 인사와 네티즌들의 십자포화가 이어지자 결국 주 정부는 재소자 우선 접종 계획을 백지화했다. 

콜로라도주가 당초 재소자 우선 접종을 실시하려 했던 것은 집단감염 확산세를 억눌러 주 전체의 방역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교정시설처럼 많은 사람이 한정된 공간에서 공동으로 생활하는 시설은 집단감염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고, 출퇴근하는 교도관들이 감염되면 급속한 지역사회 전파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계에 도달한 의료 체계도 이같은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 

의학저널 랜싯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콜로라도주에서 발생한 15대 대형 집단발병 가운데 14건이 교정시설이나 대학 기숙사와 같은 공동생활 시설에서 발생했다. 미국 전체적으로도 50대 집단발병 중 40건이 교정시설에서 나왔다.

매슈 위니아 콜로라도대 생물윤리·인간성 센터 소장은 "누가 접종 자격이 있느냐를 윤리적으로 따지는 식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이 길어지고 사망자만 늘어날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싱크탱크 '교도정책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미국 내 10여 개 주가 방역을 위해 재소자 접종을 서두르고 있다. 뉴저지, 워싱턴 등은 이미 재소자들에게 접종을 시작했고 코네티컷, 델라웨어, 뉴멕시코 등 7개주는 현장 의료진, 요양원 거주자 다음으로 재소자에게 접종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이 지난해 12월3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모더나와 코로나19 백신 계약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청장)이 지난해 12월31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모더나와 코로나19 백신 계약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도 집단감염 확산에 접종 순위 고심

미국의 이같은 상황은 국내에서도 재현될 우려가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4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르면 오는 2월부터 한국도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접종 순위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교정시설 내 집단감염이 계속 이어질 경우 순위가 앞당겨 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이날 기준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와 관련한 누적 확진자는 1084명이다. 전국 교정시설 기준으로는 총 1020명이 양성 판정을 받았다. 전수검사를 확대하면서 확진자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음성 판정을 받고 타 교정시설로 이송된 수감자 중 뒤늦게 확진 판정을 받는 사례도 속출하면서 추가 확산의 불씨도 남아 있다.  

현재까지 우선접종 권장 대상자로는 의료기관 종사자, 집단시설 생활자 및 종사자, 65세 이상, 19∼64세 위험도가 중등도 이상인 만성 질환자, 소아청소년 교육·보육시설 종사자 및 직원, 코로나19 1차 대응요원, 경찰·소방 공무원·군인 등이다.

교정시설도 집단시설 내 포함되지만 국내 역시 미국 등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재소자 우선 접종에 대한 거부감이 클 것으로 예상돼 여론의 반발과 접종 순위를 어떻게 조율할 지가 관건이다. 

앞서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지난달 28일 브리핑에서 우선 접종 순위에 대해 "보건의료체계 기능 유지를 위한 고위험 의료기관 종사자와 요양병원, 요양시설 등 집단시설에 거주하는 노인을 최우선순위로 고려한다. 100만 명 내외가 대상이 될 것"이라며 1월 중으로 세부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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