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문 대통령, 정치보복이 두려운가
  • 전영기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1 09:00
  • 호수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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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깨문은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는 뜻의 비속한 은어다. 문 대통령의 충성스러운 묻지마 지지자들이다. 대통령은 잘나갈 땐 고마웠지만 임기 말 위태로운 신세에 처해 탈출구를 모색할 시점이 되자 그들이 부담스러워졌다. 당장 이낙연 민주당 대표를 통해 슬쩍 띄운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대깨문들이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박근혜·이명박을 감방에 보내긴 했으나 정권이 교체될 경우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보복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충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이낙연한테 이 문제를 맡겼는데 대깨문들이 속도 모르고 저렇게 사면론을 공격해 대니 야속할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영상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영상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실 문 대통령이 퇴임 후 걱정의 흔적을 처음 보인 것은 추미애가 윤석열을 쫓아내기 위해 허깨비 같은 이른바 검언유착 수사에 골몰하던 지난해 초여름이었다. 추미애 법무장관의 탄압이 심해지고 민주당에서 사퇴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는데 그럴수록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민 지지도는 상승했다. 윤석열은 단숨에 야권의 1등 대권 후보에 올랐다. 

그 무렵 문 대통령은 윤석열에게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흔들리지 말고 임기를 지키면서 소임을 다하라”(지난해 10월24일, 윤석열의 대검찰청 국정감사 발언)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추미애와 민주당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물러나라고 했건만 문 대통령은 임기를 끝까지 지키라고 했다. 대통령이 염려한 것은 윤석열이 대깨문의 박해 속에 물러나 야권 정권교체의 주인공이 되는 시나리오였다. 세월이 흘러 오늘날 추미애는 무대에서 비참하게 퇴출됐다. 윤석열은 물러나지도 않았는데 30% 대권 지지율로 차기 권력구도의 상수가 되었다. 아뿔싸. 문 대통령은 대깨문만 믿고 선무당 칼춤을 췄던 추미애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집권당이 국회 180석에 가까운 공룡 여당이라 해도 대깨문의 불길한 기운은 올봄 서울시장 선거와 내년 대선 가도에 길게 드리워 있다. 대깨문의 활동이 드셀수록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윤석열의 지지율은 올라가는 ‘철의 법칙’을 어찌할 것인가. 결국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 문제는 대깨문이 활동을 멈춰줘야 해결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대깨문은 허깨비일망정 밤낮으로 활동하는 좀비 비슷한 성질이 있으니 어디 멈춰지겠나. 문 대통령의 고뇌는 깊을 수밖에.

1월7일자 문화일보 여론조사를 보니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또 한번 바닥을 뚫었다. ‘매우 잘함’ 항목이 처음으로 20% 아래, 17.8%로 무너져 내렸다. 이쯤 되면 무슨 수를 써도 레임덕 이전인 40%대 국정 지지도를 회복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퇴임 후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한 대통령의 프로그램 중에 탈정치 선언도 들어 있는 모양이다. 민주당만을 위한 진영 정치를 중지하고 여야의 의견을 고루 들어 국민 통합을 추구하는 정책 대통령으로 거듭나겠다는 구상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에겐 그럴듯하게 들리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 대통령에서 정책 대통령만 따로 발라낼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우스꽝스럽다. 잘나갈 때는 정치 대통령을 하다가 욕먹을 일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자 이제부턴 정책 대통령이 되겠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 책임지지 않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라고. 특히 세계사에 없는 전직 대통령 두 명, 전직 대법원장 한 명을 감방에 보낸 문 대통령이 정치에서 잊힌 존재가 되고 싶다고 꾀를 쓴다면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받게 되리라. 청와대도 허황한 소리, 엉뚱한 책략에 골몰하다 대통령한테 욕을 보이느니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시라고 직언할 필요가 있다. 재임 시의 노무현 대통령이 야당에 총리직을 제안한 것 같은 스케일 큰 협치 내각을 선언하는 게 정직한 해법일 수 있다. 대통령은 정치 2선으로 후퇴해야 한다. 하지만 적폐청산의 피맛을 본 대깨문들이 더 순도 높은 증오와 분열을 대통령한테 요구하고 있기에 노무현보다 허약한 정신의 소유자인 문재인이 그들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정 현실을 직시할 자신이 없으면 깨끗하게 민주당을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썼던 방식이고 꼭 성공이 보장되진 않는다. 그래도 대깨문 환경에서 우물쭈물대는 것보다 탈당이 나아 보인다. 

전영기 편집인
전영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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