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차마 하지 못할 일
  • 송혜진 숙명여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5 17:00
  • 호수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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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제도가 있던 조선시대, 증손자를 본 어느 할아버지 얘기다. 손자 내외는 일 때문에 한양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생후 6개월 된 아이를 둔 손주며느리가 또 임신이 되어 젖이 부족했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이 걱정에 손자 내외는 본가에 도움을 요청했다. 얼마 전에 출산한 노비를 유모로 청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할아버지가 급히 손자에게 편지를 썼다.

“젖먹이 딸린 여종을 유모로 데려간다니 안 될 일이다. 아이를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아니냐. ‘남의 자식을 죽여 제 자식을 살리는 것’이니 절대 안 될 일이다. 그럼 어찌해야겠느냐. 우선 대여섯 달 동안 젖을 함께 먹여 키울 이를 찾아보고, 이곳 여종의 아이가 죽이라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데려가도 될 것이다. 그리한다면 두 아이 모두 살 수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기어이 한양으로 불러들여야겠다면 차라리 여종의 아이까지 데려가거라. 그래서 여종이 두 아이에게 함께 젖을 먹이는 것이 좋겠다. 그렇지 않고 여기에 아이를 두고 어미만 가게 하는 것은 어진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 마음이 몹시 불편하구나. 다시 생각해 보아라.”

할아버지의 이 단호한 말씀을 어찌 거역할 수 있으랴. 제대로 먹지 못하는 아들 걱정에 유모를 청한 것인데, 할아버지께 ‘어진 사람으로서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불호령을 들었으니 이 한 말씀에 손자는 얼마나 뜨끔했을까.

오래전에 읽었음에도 때때로 생각나는 이 편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장손 이안도(李安道·1541~1584)에게 보낸 글로 《퇴계문집》에 전하며, 대대로 회자되는 유명한 얘기다.  문득 이 편지의 뒷일이 궁금해 좀 더 알아봤다. 내심 ‘여종과 아이를 함께 한양으로 보내어 두 아이를 모두 잘 키웠다더라’라는 훈훈한 해피엔딩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퇴계가 68세 때 태어난 증손자 창양은 엄마 젖이 부족한 탓인지 병치레가 잦았다. 방편의 하나로 유모를 청했던 것인데, 퇴계의 생각은 달랐다. ‘남의 자식을 죽이며 내 자식을 살리는 것은 사람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일’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대신 약을 지어 보내는 등 다른 방법을 찾아봤지만, 결국 증손자는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다. 증손자의 요절 소식에 비통한 심정을 담은 또 다른 퇴계의 편지에서 전후 사정을 살필 수 있다. 아들을 잃은 손자 내외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그때 노비를 유모로 보내주었더라면…’이라는 하소연이 없었을까만, 그런 생각은 결코 드러내지 못하는 속마음이었을 것이다. 인정상 그리하지 못한다는 가르침이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1월7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양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갖다 놓은 사진과 꽃 등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1월7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양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갖다 놓은 사진과 꽃 등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세상을 분노에 떨게 한 ‘정인이’ 양부모의 소행과 어린 생명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겪은 일들을 살펴보며 참담함과 안쓰러움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정인아 미안해’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법과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의 목소리, 개선안을 찾아보겠다는 당국의 입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듯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얼마 안 가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비슷한 일들은 또 일어날 것이라는 회의론도 적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차마 하지 못할 일’ ‘인정상 그리하지 못할 일’이라는 경각심을 되새기기 위해서라도 이번 움직임은 좀 더 오래, 제대로 이어져야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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