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강인에 가려진 다른 유럽파들의 현주소는?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7 12:00
  • 호수 16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의조·이재성 기지개…황희찬은 권토중래 노려

2021년에도 ‘월드클래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활약은 변함없었다. 신축년 새해에 치른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첫 경기에서 득점포를 가동하며 토트넘 입단 후 통산 100호 골 고지를 밟았다. 지난해 말부터 흘러나온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은 손흥민의 거침없는 활약과 맞물려 ‘새로운 호날두’에 적합한 선수라는 호평과 함께 더 번지는 분위기다. 이강인(발렌시아)도 팀 내 불화설과 이적설을 뒤로하고 최근 3경기 연속 선발 출전을 하며 가치를 올리는 중이다. 1월8일 열린 예글라노 데포르티보와의 코파델레이 2라운드에서는 전반 7분 팀의 선제골이자 자신의 시즌 첫 골을 터트렸다. 발렌시아는 이적을 준비하는 이강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유럽파의 현재와 미래가 2021년에도 순조롭게 출발한 상황에서 국가대표 ‘벤투호’의 주축인 다른 유럽파들은 상대적으로 조명을 못 받고 있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이재성(홀슈타인 킬) ⓒ연합뉴스

이재성, 최고의 활약…“2부에서 뛸 선수 아니다” 호평

우선 손흥민과 함께 공격을 이끄는 황의조(지롱댕 보르도)는 지금 어떨까. 그는 힘겨운 전반기를 마치고, 희망의 후반기를 준비 중이다. 프랑스에서 2년 차를 맞은 황의조는 감독 교체라는 변수를 경험했다. 자신의 영입을 주도한 포르투갈 출신의 파울루 수자 감독이 물러나고 장 루이 가세 감독이 보르도의 지휘봉을 잡았다. 벤투 감독에게 추천받은 황의조를 최전방 공격수로 믿고 활용했던 수자 감독의 사임은 선수 입장에선 큰 조력자를 잃은 셈이었다.

게다가 가세 감독은 황의조를 중앙의 스트라이커가 아닌 윙포워드로 주로 활용했다. 측면으로 이동한 황의조는 자신의 장점인 골 결정력과 유연한 연계 플레이를 잃고 헤맸다. 하지만 인내하던 황의조에게 기회가 왔다. 보르도가 수준급 수비에 비해 공격에서는 답을 찾지 못하자(19라운드 기준 20득점 21실점), 가세 감독이 황의조를 다시 스트라이커로 복귀시킨 것이다. 놓칠 수 없는 찬스에서 황의조는 특유의 킬러 본능을 발휘했다. 지난해 12월16일 생테티엔, 24일 랭스를 상대로 골을 터트린 그는 1월10일 로리앙과의 경기에서는 도움을 기록했다. 상대 수비진이 몰린 혼전 상황에서 등을 진 플레이로 동료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힘싸움에서 버티며 원톱다운 존재감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보르도가 겨울 이적시장에서 여전히 스트라이커를 찾고 있지만, 황의조는 생존에 대한 의지로 자신만의 장점을 키워가며 경쟁력을 되살리는 중이다.

가장 많은 유럽파가 뛰고 있는 독일에서는 이재성(홀슈타인 킬)이 가장 돋보인다. 2부 리그인 분데스리가2 소속이지만 현재 유럽파 중 손흥민 다음으로 가장 활약이 많다. 최근 열린 독일축구협회컵 DFB포칼에서 그의 소속팀 킬은 지난 시즌 유럽 챔피언인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를 가졌다. 축구협회에서 양팀 간판 선수를 앞세워 공식 포스터를 만들었는데, 바이에른에서는 세계 최고의 골잡이인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를, 킬에서는 이재성을 내세웠다. 올 시즌 팀에서의 활약도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이재성이 더 무서워진 이유는 전술적인 자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2018년 여름 전북에서 킬로 이적한 뒤 두 시즌 동안 공격수 역할을 강요받았지만, 올 시즌 이재성은 2선에 배치됐다. 자신의 최대 장점인 활동량과 왼발 테크닉을 자랑하며 팀의 전반적인 플레이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골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난 덕에 상대 진영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수비를 돕는 데도 소홀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Ein vielseitiger Spieler(다재다능한 선수)’라 불리기 시작했다. 분데스리가 레전드인 토르스텐 마튜슈카는 “그는 2부에서 뛸 선수가 아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덕분에 킬은 승승장구하며 선두 경쟁 중이고, 승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팀과 함께 승격하든, 아니면 이적을 거치든 이재성을 다음 시즌 1부 리그에서 볼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역시 독일 2부 리그에서 뛰는 백승호(다름슈타트)도 전세 역전에 성공했다. 시즌 초반에는 마르쿠스 안팡 감독의 외면을 받았다. 설상가상 부상까지 겹쳐 힘든 한 시즌이 예상됐다.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와의 리그 9라운드에 선발 출전해 맹활약하며 팀의 4대0 대승을 도우며 반전에 성공했다. 안팡 감독은 그 뒤 지금까지 계속 선발 한 자리를 백승호에게 맡기는 중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의 포지션 변경을 고민하다가 다시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깝게 자리를 옮긴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바르셀로나 유스 시절부터 장기였던 뛰어난 볼 터치와 빠른 이동 드리블을 활용했다. 지난해 12월23일에는 DFB 포칼 2라운드에서 시즌 첫 골을 기록하며 자신감을 한껏 높였다.

반면 황희찬(RB 라이프치히)은 힘든 시간을 맞았다. 오스트리아의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보여준 기량을 인정받아 독일 1부 리그의 떠오르는 강호 라이프치히로 이적할 때만 해도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시즌 초반 팀 내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잘츠부르크와 달리 라이프치히는 주전 대부분이 각국 국가대표급 선수들이다. 분데스리가 최상위 클럽의 내부 경쟁 수준은 예상보다 훨씬 높았다. 게다가 대표팀에 차출됐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까지 받았다. 음성 판정을 받고 다시 몸을 만드는 동안 무려 6경기나 결장해야 했다. 현재 라이프치히는 바이에른 뮌헨과 승점 2점 차의 치열한 우승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 입장에선 굳이 잘하고 있는 지금의 주전들을 바꿀 이유가 없다. 잔여 시즌 동안 황희찬은 현재처럼 후반 교체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올 시즌은 새로운 무대에 대한 적응기로 받아들이며 다음 시즌에 대한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

권창훈(프라이부르크)도 이렇게 안 풀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상황이 꼬였다. 시즌 초반에는 교체로 꾸준히 출전하며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그러나 황희찬처럼 대표팀에 합류했다가 역시 코로나19에 걸렸다. 완치 후에도 쉽게 기회를 잡지 못했다. 1월3일 호펜하임전에서 ’깜짝 선발’로 나서 66분을 소화하며 팀의 3대1 승리를 도왔다. 후반기에 반격을 기대케 했지만, 팀 훈련 중에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100% 컨디션을 찾으며 기회를 잡으려던 찰나에 다시 시련이 찾아온 것이다. 아직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권창훈은 올여름 K리그로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 친정팀인 수원 삼성으로의 이적이 유력한데, 중요한 순간마다 부상으로 좌절한 유럽 생활 전반부에 대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을 듯하다.

(왼쪽)황의조(지롱댕 보르도), 황희찬(RB 라이프치히) ⓒ연합뉴스

코로나19로 신음한 황희찬·권창훈과 달리 황인범은 입지 탄탄

러시아에서 뛰고 있는 황인범(루빈 카잔)은 리그 전반기를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휴가를 보내는 중이다. 혹한이라는 특성상 1, 2월의 휴식기가 긴 탓에 고향에서 모처럼 마음 편히 쉬는 중이다. 지난해 8월 북미 메이저리그사커의 밴쿠버 화이트캡스를 떠나 카잔에 합류하며 유럽파가 된 황인범은 레오니드 슐러츠키 감독에게 큰 신임을 받고 있다. 컵대회를 포함해 19경기 중 16경기에 출전하며 주전을 꿰찼다. 황인범도 대표팀에 갔다가 코로나19에 걸렸는데도 3경기밖에 쉬지 않았다는 건 팀 내 입지를 증명한다. 대표팀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체 경기를 조율하며 공격 능력을 뽐냈다.

이승우(신트트라위던)는 벨기에 무대에서 고전 중이다. 시즌 초반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지만 감독 교체 후 다시 상황은 급변했다. 새로 부임한 페테르 마에스 감독과도 전술적인 궁합이 맞지 않았다. 최근 4경기 연속 엔트리에도 들지 못한 이승우는 터키 쉬페르리가 괴즈테페 임대 이적설이 나오고 있다. 괴즈테페는 현재 16위로 강등권에 근접한 팀이다. 이승우에겐 또 한 번의 위기지만, 만약 팀을 강등권에서 구해 낸다면 유럽 생활에 새 전기를 맞이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