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은 백인과 非백인 내전 중”
  • 전영기 기자 (chunyg@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9 10:00
  • 호수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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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한인유권자연대 대표 “1860년대 남북전쟁 양상과 비슷”

미국한인유권자연대(KAGC·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는 1996년 뉴욕과 뉴저지에서 한국계 미국인의 시민적 권리를 높이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250만 명에 이르는 재미교포들의 유권자 교육과 각급 단위에서 정치적 진출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30대 때 KAGC를 창립한 김동석 대표(63)는 아마 풀뿌리 차원에서 미국의 정치 속살을 가장 많이 경험한 한국인 중 한 명일 것이다. 시사저널은 바이든 제46대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남북전쟁 이래 최악의 내전적 상황을 겪고 있는 미국 정치를 들여다보기 위해 뉴욕에 거주하는 김 대표를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1월10일 전화와 14일 이메일로 진행했다.

김 대표와 KAGC는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4명의 한국계 연방 하원의원을 탄생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4명의 한인 의원은 앤디 김(민주당·뉴저지),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당·워싱턴주), 미셸 박 스틸(공화당·캘리포니아), 영 김(공화당·캘리포니아)으로 김동석 대표는 이들과 당파와 관계없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한인 연방의원은 앤디 김뿐이었는데 이제 4명으로 늘어났으니 익사이팅하다. 초당적 입법도 가능할 것”이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미국 민주주의의 앞날에 대해선 걱정이 깊고 탄식이 컸다. 트럼프라는 기괴한 존재보다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를 옮겨 다니는 ‘저소득 백인층’의 성향이 근원적인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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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I 연합·뉴스뱅크이미지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회 공격 사건이 1월6일 있었고, 14일 하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안이 통과되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뒤 트럼프 체포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1월20일 바이든 취임식은 잘 진행되겠나.

“워싱턴이 혼란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선 조직이 움직여 의회 폭력 사건이 벌어졌다. 원래 트럼프 쪽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 날 행사장 참석자보다 더 많은 수의 인원을 모아 4년 뒤 트럼프 출마선언식을 장대하게 열려고 했다. 의회 폭력 사건 이후 역풍이 불면서 트럼프 출마선언식은 움츠러들지 않을까 예상한다. 의회 난입 사건이 있던 날, 연방 상원의원을 뽑는 조지아주 선거에서 흑인과 유대계 등 민주당 후보 2명이 모두 당선했다. 조지아주에서 민주당 상원의원 탄생은 100년 만이라고 한다. 이로써 연방상원의 의석 분포가 민주당 열세에서 우세로 변했다. 대선 승리, 하원 승리에 이어 상원까지 민주당이 ‘트리플 크라운’을 썼다. 따라서 바이든의 취약한 리더십이 어느 정도 보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에게 유리한 또 다른 요소는 공화당 하원의원 150여 명이 속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프리덤 코커스’그룹이 붕괴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공화당 극우파, 트럼프파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정치 불안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증오와 대립의 정치는 트럼프가 부추겼다 해도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예를 들어 조지아주는 백인우월주의가 팽배한 이른바 ‘남부 바이블 벨트’ 중 하나다. 남부 바이블 벨트엔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등이 들어 있다. 이곳에서 오바마 때 움츠리고 있었던 백인들이 트럼프 대통령 4년 동안 공격적으로 스스로 조직화했다. ‘프라우드 보이즈(Proud Boys)’ 같은 극우 폭력단체가 나섰고 KKK 세력들이 부활했다.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네소타 같은 경합주는 산업적으로 쇠락한 ‘러스트 벨트’다. 이곳에선 오바마가 이기기도 하고 트럼프가 승리하기도 했는데 키를 쥐고 있는 유권자가 저소득·저학력의 백인 노동자층이다. 백인 노동자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의 기반이었는데 이들이 민주당의 흑인 대통령(오바마)에 반기를 들고 등을 돌리는 분위기를 틈타 트럼프의 비선 캠프가 전략적으로 파고들었다. 과거 민주당이나 공화당 정부 가릴 것 없이 무분별하게 밀어붙인 세계화로 제조업이 무너지자 백인 노동자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 빈곤과 빈부격차 문제가 심화됐다. 이런 것들이 전국적으로 인종주의 집단들이 조직화된 배경이다.”

트럼프 세력이 결집한 데는 부정선거 이슈도 있지 않았나.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팬데믹 상황에서 우편투표를 활성화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지난해 3월부터 트럼프 캠프는 우편투표로는 이기지 못한다란 결론을 냈다는 보도가 지금 나오고 있다. 결국 우편투표를 부정투표의 온상으로 보고, 이를 상쇄하기 위해 백인우월주의 그룹을 조직화하는 전략을 트럼프 캠프가 쓴 것이다.”

지금 상황을 남북전쟁 수준으로 파악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1860년대 남북전쟁 이후의 내전을 떠올리고 있다. 내란을 선동한 트럼프라는 한 사람을 정리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번 선거전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7500만 명 가운데 상당수가 자발적으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것이다. 미국이 백인과 비백인으로 나뉘었다. 지식인, 전문인, 퇴역 군인이나 퇴직 공무원 사회 내에도 반란군에 동조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다. 유색인종 소수계로 살아가는 이민자들에게 닥친 눈앞의 어려움이다.”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의 종언론도 나온다.

“미국 주도 세계 질서의 종언? 이러한 언급은 맞지 않다고 본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힘을 받쳐주고 있는 인프라는 아직 건재하다고 본다. 그런데 국내 정치가 방황하면서 미국이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이 이렇게 불안해진 것은 전적으로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미국은 지금 정당정치의 재편성 기간이다. 당이 시민들의 정치적 요구를 정책으로 잘 담아 세력을 확대하고 관리해 나가야 하는데 시민들의 급격한 변화를 정치권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세대 교체가 가장 완만하다. 시대감각도 가장 둔하다. 미국의 정치가 정보통신 시대에 맞춰 조화롭게 변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가 노동자, 서민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권이 건강해지고 양당 정치가 안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정치권이 탐욕에 빠져 욕심만 채우다가 트럼프 현상이라는 기괴한 현실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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