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성폭행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직접 원인 인정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5 10:00
  • 호수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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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피해자가 박원순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건 사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아무개씨. 그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1월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 조성필)는 준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정씨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도 명했다.

재판부는 “항거불능의 피해자를 간음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히고, 직장 동료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으며, 서울시 직원으로 사건이 언론에 알려져 큰 피해를 입었다”며 “피의자가 범행 일부를 인정하고,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정씨는 21대 총선 전날인 지난해 4월14일 피해자를 비롯한 비서실 동료 직원들과 회식 술자리를 가진 뒤, 술에 취한 피해자를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피해자는 다음 날 정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서울시는 정씨를 직무에서 배제한 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직위 해제했다.

여성단체 회원들이 1월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검찰 재수사와 수사내용 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단체 회원들이 1월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검찰 재수사와 수사내용 공개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 서울시에 “2차 가해를 멈춰 달라” 촉구

정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신체 일부를 만진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강간 혐의는 부인했다. 정씨 때문에 피해자가 장기간 심리치료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피해자가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은 것은 자신 때문이 아닌, ‘제3자에 의한 성추행’과 언론보도에 의한 2차 가해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3자에 의한 성추행 당사자는 고 박 전 시장이다. 피해자 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이번 사건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업무상 위력 추행 사건의 피해자와 같은 인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법원은 정씨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 진술이 수사기관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와 정씨 사이의 기존 관계에 비춰보면 경험하지 않은 사실을 의도적으로 꾸며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고통받은 건 사실이지만, PTSD의 직접적 원인은 정씨의 범행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지난해 5~11월 심리치료를 받은 상담 내역을 살핀 결과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건 사실”이라면서도 “전부터 오래 알고 지낸 정씨에 대한 배신감과 억울함, 타인에게서 피해를 받을 것 같은 불안감 등 정씨의 범행으로 정신적 충격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피해자 측은 판결 이후 탄원서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피해자의 탄원서 전문이다. ‘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과거 성실히 쌓은 노력의 산물을 잃었고 미래 소망을 잃었습니다. 평범하게 출근해서 점심 먹고 퇴근 후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족들과 웃으며 보내는 보통의 삶을 잃었습니다.’

더불어 피해자는 서울시에 “2차 가해를 멈춰 달라”고 촉구했다. 피해자는 “서울시청 관계자는 피해자에 대한 직접 정보, 영상물을 외부에 제공한 자가 누군지 확인해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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