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없이 현상분석만…文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1.01.18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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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5년차 文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평가
부동산 문제 사과 없이 대책만…정인이 사건에 실언도

집권 5년차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경제‧사회 전방위를 아우르는 각종 현안에 대해 솔직한 견해를 밝혔다. 지난해 1월 이후 1년 여 만에 열리는 기자회견인 만큼, 문 대통령의 답변 한 마디 한 마디에 관심이 집중됐다.

무난하게 마무리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일부 답변이 부적절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인이 사건’ 대책 관련 파양 언급이 대표적이다. 또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겠다고 공언했지만, 직접적인 사과의 단어는 없었다. 때문에 행정부의 수반인 문 대통령이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은 인정, 정책 실패는 사과 안 해

문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부동산 투기 차단에 역점을 뒀지만 결국 부동산 안정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면서다. 이어 문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대책으로 공급 확대를 골자로 하는 특별 대책을 설 연휴 전까지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두고 문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자인했다는 보도가 이어졌으나, 문 대통령의 발언을 자세히 뜯어보면 ‘송구하다’는 등의 발언은 없었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한 이유로 정책 실패가 아닌 유동성 증가와 1인 가구 확대를 꼽았다. 문 대통령은 “유동성이 풍부해져 부동산 시장으로 자금이 몰리게 되고 세대 수가 급증하면서, 우리가 예측했던 공급 물량보다 수요가 초과해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부추겼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야권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서울시장 출마자들의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은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공급부족이 집값 폭등의 원인이었음을 고백한 점은 진일보했지만 공급부족을 초래한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고집에 대한 인정은 없었다”며 “향후 대책 또한 여전히 잘못된 방향을 고집하고 있어 집값 안정은 무망하다”고 비판했다. 오신환 전 국민의힘 의원도 “문 대통령은 문제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며 “자신이 정책이 초래한 부작용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황당한 대답은 나올 수 없다”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발표한 신년사에서는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사과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들께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며 “주거 안정을 위해 필요한 대책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공식 사과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었다. 다만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신년사 때처럼 직접적으로 사과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발언 일파만파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아동학대 재발방지 대책과 관련해 실언을 하기도 했다. 양부모의 상습 학대에 시달리다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양 사건에 대해 언급하던 중 ‘파양’을 학대 방지 대책으로 내놓으면서다. 문 대통령은 “입양 부모의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취소한다든지, 또는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여러 방식으로 입양 자체는 위축시키지 않으면서 입양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두고 일제히 비판하면서 부적절한 발언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입양아동을 마치 물건 취급하는 것 같은 대통령의 발언은 너무나 끔찍했다”면서 “문 대통령은 오늘 대단히 심각한 실언을 했다. 해당 발언을 즉각 철회하고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문 대통령의 인권의식이 의심스럽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월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윤 갈등 때도 ‘유체이탈’ 화법 비판 직면

이처럼 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할 문 대통령이 제3자처럼 이야기한다는 이유에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 갈등 국면에서도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하는 시선이 많았지만, 문 대통령은 장기간 침묵으로 일관했다. 문 대통령은 추미애 장관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한 지 2주가 지난 12월7일에서야 공식적으로 “혼란을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문 대통령은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으로서 정치력을 발휘해 ‘추미애-윤석열’ 갈등을 완만히 풀 수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법무부와 검찰은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놓고 함께 협력할 관계인데, 그 과정에서 갈등이 부각된 것 같아 국민에게 정말 송구스럽다”고 사과하면서도, “갈등이 생기는 것이 민주주의국가에서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검찰총장보다 검찰선배인 법무부 장관, 또 검찰 선배인 민정수석을 통해서 아무런 갈등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시대가 더 좋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법무부와 검찰 사이 갈등이 생기는 것이) 오히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보다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여권에서는 문 대통령의 소통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코로나19로 인한 전례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과 소통하려는 대통령의 노력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정 현안 전반에 대해 솔직하고 소상하게 설명했다. 책임감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대책도 다양하게 제시했다”며 “국민이 희망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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