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기업인 동상이 곳곳에…그 불편한 진실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1.02.03 08:00
  • 호수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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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생존 기업인 동상 20기 세워져…비리로 구속되거나 구설 오른 인물도 있어

동상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으로 만든 기념물을 의미한다. 동상을 세울 땐 이미 생을 마감한 인물의 업적에 대해 역사적 평가가 매듭지어진 후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이 때문에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면 건립 과정에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의 동상에 대한 논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충북 음성에 세워졌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동상은 2017년 한때 그가 대권에 도전하면서 ‘선거법 위반’과 ‘우상화’ 논란을 일으켜 결국 철거됐다. 10년 전 충북 청남대에 설치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상은 존치 여부를 두고 여전히 갈등 중이다.

최근 횡령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원 안)의 흉상이 2016년 5월2일 창원대에 세워졌다.ⓒ뉴시스

학교발전기금 내면 교내에 동상 건립

이렇듯 동상을 설치하는 것, 특히 생존 인물의 동상을 세우는 건 좀 더 엄격하고 광범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필요로 한다. 박찬걸 충남대 조소과 교수는 “동상은 권위를 상징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이기도 하다. 그런데 역사의 평가는 고사하고 이후 삶을 예측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우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국내에는 생존 인물의 동상이 전국 곳곳에 상당수 세워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대부분은 기업인들이었다. 이에 대한 확인에 나선 시사저널 취재진은 생존 기업인 동상 20기(흉상 16기, 동판흉상 3기, 전신동상 1기)를 찾았다. 전신동상은 1기였고, 대부분은 흉상으로 모두 16기였다. 동판흉상도 3기 발견했다. 

기업인 동상은 주로 학교에 세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20기 중 16기가 대학교(14기), 고등학교(1기), 초등학교(1기)에 설치돼 있다. 이 외에 사업장(3기)과 기념관(1기) 등에도 생존 기업인 동상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인 동상이 학교에 몰려 있는 건 해당 기업인이 거액의 발전기금과 장학금을 기부했기 때문이다. 일부 대학은 ‘발전기금 기부자 예우지침’에 따라 기부자의 동상을 세우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신동상을 세웠다가 논란이 되자 철거한 박헌준 프리드라이프 명예회장 동상이다.ⓒ시사저널 박정훈

서울대에는 학내 최대 기부액을 기록한 이종환 삼영화학 명예회장 동상이 있다. 2012년 이 회장은 서울대 도서관 신축공사 때 600억원을 기부했다. 이 때문에 서울대는 신축 도서관 이름을 이 회장 호(號)인 ‘관정’을 따서, 관정도서관이라고 지었다. 2015년 2월5일 관정도서관 준공식에서는 이 회장 동상 제막식 행사도 함께 진행됐다.

제주대(4기)와 창원대(2기)에는 학교에 수억원을 기부한 여러 기업인의 동상이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동상이 세워진 생존 기업인 중 각종 비리와 사건·사고에 연루돼 구설에 오른 인사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예상된다.

제주대 사슴동산에는 양즈후이 랜딩그룹 회장, 오헌봉 유성건설 회장, 김명신 대림화학 회장, 고추월 월자제지 회장의 동상이 세워진 것으로 확인됐다. 동상이 세워진 생존 기업인 중 유일한 외국인인 양즈후이 회장은 현재 행방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50세로 동상이 세워진 생존 기업인 중 가장 젊다. 2017년 6월21일 제주대에 인재육성 발전기금 10억원을 기부하면서 학내에 동상이 세워진 것으로 파악된다.

양즈후이 회장은 최근 현금 145억원을 통째로 도난당한 사건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제주신화월드 랜딩카지노의 설립자다. 핵심 용의자로 지목된 랜딩카지노 재무임원은 양 회장의 측근인 것으로 알려졌다. 145억원이 양 회장의 비자금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양 회장은 2018년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중국 공안에 체포된 이후 종적을 감췄다고 한다. 현재는 랜딩카지노 경영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행방이 묘연한 양즈후이 랜딩그룹 회장(왼쪽)의 흉상 제막 기념사진. 오른쪽은 허향진 전 제주대 총장ⓒ연합뉴스

양즈후이·강덕수 등 부적절 인사도 상당수

창원대에는 기업 비리로 기소돼 수년간 재판을 받았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동상이 있다. 2016년 5월2일 창원대는 학교발전후원회장을 역임하며 14억원의 발전기금과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이유로 강 전 회장 동상을 학내에 건립했다. 강 전 회장은 ‘샐러리맨 신화’로 불리며 한때 재개 13위까지 오른 STX그룹의 창업주다. 하지만 2014년 회삿돈 횡령, 개인회사 부당지원, 분식회계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STX그룹이 해체됐다. 강 전 회장은 STX그룹 해체의 원흉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1월8일 대법원은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강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확정했다.

기업인의 전신동상을 세웠다가 논란이 되자 철거된 경우도 있다. 상조 업계에서 최초로 자산 1조원을 일군 박헌준 프리드라이프 명예회장이다. 2020년 2월22일 프리드라이프가 소유한 전국 쉴낙원 장례식장에 박 명예회장의 실물 크기 동상이 설치됐다. 상조업 발전에 기여한 박 명예회장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뒤 박 명예회장이 프리드라이프 지분을 사모펀드에 매각하면서 ‘먹튀’ 논란을 뒤로한 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박 명예회장 동상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프리드라이프는 동상을 모두 철거했다고 한다. 그 역시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자녀 회사 일감 몰아주기, 대리점 갑질, 끼워 팔기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자신의 모교에 동상이 세워진 대기업 총수도 있다. 광주고에는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의 동상이 있다. 자수성가형으로 알려진 김 회장은 어렵게 광주고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고에 김 회장의 동상이 세워진 건 2013년 3월4일이다. 광주고에 인재육성기금 10억원을 쾌척한 공로로 동문장학회에서 김 회장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중견 제약사 오너인 류덕희 경동제약 회장도 모교인 성균관대에 동상이 설치돼 있다. 류 회장 동상은 2017년 5월10일 성균관대 총동창회관인 글로벌센터에 세워졌다. 그는 성균관대 총동문회장 등을 지내며 학교에 총 91억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월드컵경기장 기념관에는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동상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 이사장 동상은 2008년 9월20일 서울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 기념관에 설치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FIFA(국제축 구연맹) 부회장으로서 ‘월드컵 개최’와 ‘4강 신화’의 공로로 서울월드컵경기장 기념관 명예의 전당 헌액 대상자로 선정됐다.

2013년 3월4일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흉상 제막식이 광주고등학교에서 열렸다.ⓒ시사저널 박창민 

“최근 동상 의뢰인 중 30~40%는 생존 인물”

이 밖에도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과 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이 IBK기업은행에서 주최하는 ‘기업인 명예의 전당 헌액자’로 선정되면서 동상이 세워졌다. 이 회장 동상은 충남 공주 코스맥스 향약원에, 김 회장 동상은 충북 청주 한국도자기 공장 내에 설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은행은 2004년부터 주거래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기업인 명예의 전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면 헌정자 사업장에 흉상 및 헌정기념비를 건립해 증정한다고 한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최근 기업인들이 생전에 동상을 세우는 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고인이 된 여러 기업인이 생전에 자신의 동상을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기업인 동상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한 조각가는 익명을 요구하며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우는 것을 꼭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이런 걸 부정적으로 봤지만 인식이 많이 변했다. 기업인 2세들이 선친의 모습을 생전에 동상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의뢰인 중 30~40%는 살아 있는 사람이다. 완성된 동상을 보고 감동하는 의뢰인도 많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비판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조은정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초빙교수는 동상에 대해 “이미지는 사고를 지배하기 때문에 동상이 지니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며 “동상을 세우는 기본적인 이유는 업적을 가시화하기 위함이다. 누가 유명하고 위대하다는 건 개념이지, 실제 눈에 보이진 않는다. 동상은 그 개념이 ‘실재한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생존 기업인 동상에 대해 조 교수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한국에 있는 많은 동상이 독재정권 시절에 세워졌다. 우상화의 시절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기업인 역시 동상이 세워짐으로써 우상화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현대사회 시민의 덕목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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