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삼권분립] 文정부 국무위원 37%가 현역 의원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6 14:00
  • 호수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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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부 중 현역 의원 입각 비율 가장 높아
“국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 상실”

“만일 동일한 인간이나 귀족이나 국민 가운데 동일한 한 집단이 세 가지 권력, 즉 법을 만드는 권력, 공공의 의결을 집행하는 권력, 범죄나 개인의 소송을 재판하는 권력을 행사하게 되면 모든 것이 상실된다.” 

삼권분립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설명한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가 1748년 《법의 정신》을 통해 내놓은 경고다. 행정권·입법권·사법권의 분리를 뜻하는 삼권분립은 현대에 와서는 분리는 당연하고, 무엇보다도 견제와 균형에 초점을 맞춘다. 각 권력이 다른 권력을 견제하고 서로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권력의 분립은 무너지고 만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2일 국무위원들과 서울 국립현충원을 찾아 현충탑을 참배했다. 문 대통령 뒤로 현역 의원으로 입각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박영선 중기부 장관, 정세균 총리, 유은혜 사회부총리,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이 함께 걷고 있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월20일 3개 부처에 대한 개각을 단행했다. 이 중 두 개 부처에 또다시 현역 여당 국회의원이 지명됐다. 더불어민주당 황희·권칠승 의원이 각각 문화체육관광부·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이들은 청문회를 거쳐 최종 임명될 경우 의원직과 장관직을 겸직할 가능성이 크다.

현역 의원이 장관으로 임명되는 풍경은 문재인 정부에서 전혀 낯설지 않다. 앞서 지난해 12월30일에도 민주당 박범계·한정애 의원이 각각 법무부·환경부 장관에 지명된 바 있다. 그보다 20여 일 전인 12월4일에도 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행정안전부 장관에 지명됐고, 청문회를 거쳐 임명됐다. 초기부터 현역 의원의 입각 사례가 많아 우려가 컸던 문 대통령은 임기 말에 접어드는 시기에도 여전히 현역 의원의 내각 기용을 선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역 의원의 총리·장관 기용 사례는 이전 정부에서도 항상 있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그 경향이 더 짙어졌다. 이제는 이러한 분위기가 너무나 익숙해졌다. 그러나 현직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익숙하다고 넘겨버리기엔 상당히 치명적인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시각이 많다. 앞서 언급한 삼권분립, 특히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10%만 현역 의원 입각…역대 가장 낮아

시사저널은 문재인 정부의 현역 의원 기용 사례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 위해 역대 정부 사례를 전수 분석했다. 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과 의원직을 겸직한 사례만 포함했고, 비례대표 의원으로 국무위원에 임명된 후 의원직을 사퇴한 사례 등은 제외했다.
분석 결과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거쳐간 총 국무위원 48명 중 최근 지명된 인사까지 합쳐 18명이 임명 당시 현역 의원 신분이었다. 비율은 37.5%에 달한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가장 높은 수치다.

김영삼 정부의 경우엔 총 국무위원 118명 중 현역 의원 입각이 20명으로 16.9%로 나타났다. 숫자는 20명으로 가장 많지만, 김영삼 정부 당시 수시로 개각을 단행하는 등 워낙 인사가 잦았던 탓이 컸다. 김대중 정부는 총 국무위원 102명 중 현역 의원이 15명으로 14.7%였다. ‘DJP 연합’으로 정권 창출을 이뤄내면서 유독 정치인 출신이 많이 입각했던 김대중 정부는 초반부터 현역 의원의 내각행이 활발했다. 그러나 임기 말로 갈수록 현역 의원 입각 사례는 줄어든 경향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는 총 국무위원 80명 중 단 8명인 10%만 현역 의원이 입각해 역대 정부 중 가장 수치가 낮았다. 노무현 정부의 특징은 2004년 3월 탄핵 사태 이후 현역 의원 입각 사례가 다소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총 국무위원 52명 중 9명인 17.3%가 현역 의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명박 정부 역시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정권의 위기였던 ‘광우병 촛불시위’ 사태 이후 측근 정치인, 현역 의원들을 많이 기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박근혜 정부는 총 국무위원 47명 중 10명이 입각 당시 현역 의원으로 21.2%였다. 박근혜 정부 또한 초반부 의원의 입각은 거의 없었다가 이후 점차 늘어났다. 이는 다수의 비정치인 지명자가 낙마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인사검증에서 훨씬 수월한 현역 의원들을 지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근혜 정부에선 당시 유일호 새누리당 의원이 국토교통부 장관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두 차례 임명되기도 했다.

역대 정부 사례에서 위기 이후 현역 의원 내각 배치 비율이 높아진 것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현역 의원의 국무위원 기용은 정권 차원에선 가장 안정적인 선택지다. 국정 장악력을 높일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다. 다만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와는 다소 다른 경향을 보인다. 초반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현역 의원을 다수 기용해 왔다. 개각 때마다 국무위원의 30% 가까이는 현역 의원으로 채웠다. 이유는 뭘까.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인사 기준을 높였던 초기엔 청문회 통과가 용이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며 “중반 이후부터는 자기 사람을 쓰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대통령제인 미국·프랑스,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 엄격히 제한

현행 국회법 제29조 제1항은 ‘의원은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직 이외의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고 밝힌다. 즉 총리 혹은 국무위원은 겸직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는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권력구조와는 맞지 않는 기형적 형태로 평가된다. 우리나라가 이러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은 내각제를 고려했던 제헌헌법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입법과 행정이 융합돼 있는 의원내각제에선 실제 의원이 장관을 겸직하게 돼 있다.

대통령제에선 삼권분립이 명확히 분리된다. 행정부·입법부·사법부는 서로를 견제할 책무가 있다. 그런데 입법부에 속한 의원이 동시에 행정부의 일원이 된다는 건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아 보인다. 견제 기능이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역 의원이 장관이 돼도 입법·표결 등 의원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외국 사례는 어떨까. 우리와 같은 대통령제인 미국은 상·하원 의원이 임기 중 다른 공직을 겸직할 수 없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미 연방헌법(제1조 제6항 제2호)은 “상원 또는 하원의원은 재임 기간 중 신설되거나 봉급이 인상된 어떠한 공직에도 임명될 수 없고, 공직에 있는 자는 재직 중에 의원이 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따라서 의원이 국무위원으로 임명될 경우 의원직을 즉각 사퇴한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요소를 결합한 형태의 혼합형 대통령제인 프랑스도 헌법(제23조 1항)에 “국무위원은 의원직, 전국적 직능대표, 공직, 직업활동을 겸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의원직을 사퇴해야 하는 미국과 달리 장관에 임명되면 직무 정지를 통해 일시적으로 의원으로서 활동을 할 수 없도록만 하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영국 역시 의원이 국무위원을 겸직할 경우 권한을 일부 제한한다. 청문회 등 내각에 대한 견제 활동에 참여할 수 없고 법안 발의도 못 하게 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역 의원의 장관 입각에 문제가 있다는 데 대해선 크게 이견이 없다. 다만 여야가 바뀔 때마다 야당이 주장하고 여당은 침묵하는 식이다.

박근혜 정부였던 2016년 유승희 민주당 의원이 의원의 장관 겸직 금지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법안에서 유 의원은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은 의원이 총리, 국무위원 등의 직을 겸직하면서 국회 상임위원회와 본회의 등에서의 활동을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다”며 “이는 헌법 정신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로,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의 권한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국민의힘 등 야당이 의원의 장관 겸직을 적극 비판하는 상황이다.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현 내각, 장관 3분의 1이 현역 의원…다수가 ‘친문’

역대 정부와 비교한 수치만 봐도 드러나듯 문재인 정부의 경우 더 논란이 많다. 문재인 정부에선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까지 지낸 정세균 당시 민주당 의원을 총리로 지명해 비판이 거셌다. 전례 없던 인사였다. 당시 “삼권분립이 파괴될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시 문 대통령도 우려를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정세균) 총리님만 한 적임자가 없고, 제가 총리님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가치가 삼권분립 논란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정 총리 임명 강행 이유를 밝혔다.

최근 지명된 개각까지 모두 완료된다면 문재인 정부 현 내각의 3분의 1은 현역 의원으로 채워진다. 18명 중 6명이다. 게다가 그중 다수가 ‘핵심 친문(親문재인)’으로 불리는 문 대통령의 측근들이다. 장관으로 지명돼 청문 과정에 있는 권칠승·박범계·황희 의원은 모두 친문으로 분류되는 ‘부엉이 모임’ 출신이다. 전해철 행안부 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류홍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처럼 현역 의원을 계속 국무위원에 기용한다면 다른 의원들도 장관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그 자체로 여권에선 행정부를 견제할 생각이 사라질 것”이라며 “특히 지금처럼 여당이 거대할 경우엔 독재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도 “삼권분립에는 인사의 분리도 포함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입법부와 행정부에 동시에 속한다면 과연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될 수 있겠느냐”며 “여당이 정부를 뒷받침하는 것은 맞지만 한편으로는 의회의 기능으로서 정부를 견제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되지 못하고 서로 짜고 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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