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파문에 다시 소환된 ‘미투’…보궐선거 ‘女風’ 탄력 받나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1.01.26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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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진보야당’ 독자노선 수정 불가피…민주당도 예의주시
보궐선거 女후보들 “이번 보선은 성추행 심판” 한목소리

정의당발 성추행 파문에 오는 4월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판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의 성비위를 질타하면서 독자노선을 구축하려 한 정의당으로서는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것은 물론 존립 위기에까지 내몰렸다. 여당도 전 시장들의 성비위가 다시 부각되면서, 당혹감 속에 여론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여성 후보들은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이슈를 부각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보궐선거 판에서 여풍(女風)이 두드러지는 양상이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에서 머리를 만지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20일 오전 국회에서 신년 기자회견에서 머리를 만지는 모습 ⓒ 시사저널 박은숙

존폐 위기 내몰린 정의당, 보궐선거 ‘무공천’ 거론

성폭력 근절을 외쳐 온 정의당에서, 그것도 진보정치 세대교체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김종철 전 대표가 성추행으로 사퇴하면서, 정의당은 창당 이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일각에서는 “진보도 별다를 게 없다” “진보가 더하다”는 실망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김 전 대표는 같은 당 장혜영 의원을 상대로 부적절한 행위를 한 이후에도 공식 석상에서 성범죄 근절을 외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비판에 직면했다.

무엇보다 당장 3개월 앞으로 다가온 보궐선거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의당은 전 시장들의 성비위 사건을 질타하면서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는 없다는 방침을 고수해 왔다. 진보정당의 차별화된 정책으로 승부수를 띄워 이번 선거를 차세대 진보정치를 육성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당 대표가 같은 사유로 사퇴하면서, 정의당으로서는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이에 따라 보궐선거 무공천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주재한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회의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무공천 방안과 관련해 논의를 일부 진행했고, 시도당과 부산시당‧서울시당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장 후보 등록을 마친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공식 선거운동을 중단한 상태다. 

정의당은 일단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하고 당 대표 보궐선거와 성평등 대책 마련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후 재보선 전략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정의당 지도부는 재창당 수준의 개혁 작업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고려해 지도부 총사퇴나 비대위 체제 전환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당 수습 방안은 이날 오후 비공개 대표단 회의에서 거론될 전망이다. 

왼쪽부터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 시사저널·연합뉴스
오거돈 전 부산시장(왼쪽),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 ⓒ 시사저널·연합뉴스

악재 번질라…민주당 ‘노심초사’

위기감은 정의당뿐만 아니라 범여권을 비롯한 진보 진영 전체로 번지는 모양새다. 특히 여당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비위가 강제 소환되면서 보궐선거에 악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뜩이나 불리한 지형에서 젠더 이슈가 표심에 영향을 미친다면 서울과 부산 모두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서다. 

민주당이 ‘경악’이라는 표현을 쓰며 수위 높은 비판 입장을 낸 것도 이러한 파장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전날(25일) 논평을 통해 “정의당은 무관용 원칙으로 조치를 취해야 하며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충격을 넘어 경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으로 인한 국민의 충격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앞으로의 파장은 더욱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야권의 비판의 화살은 민주당을 정조준 했다. 최형두 국민의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을 향해 “민주당은 사과 태도에 관한 한 정의당의 10분의 1이라도 따라가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최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은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으로 만들며 2차 가해를 일삼았다”며 “정의당에 요구한 것처럼 박원순 사건, 윤미향 사건도 ‘무관용 원칙’으로 조치하라”고 요구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1월13일 이태원 식당가 거리에서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나경원 국민의힘 전 의원이 1월13일 이태원 식당가 거리에서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성범죄 방지대책 주목…야권 女후보들 ‘두각’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야권 후보들은 진보진영의 성추문 논란을 선거 때까지 끌고 갈 전망이다. 부동산 공약 못지않게 성범죄 방지 및 사후 대책을 구상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어서다. 특히 여성 후보들은 남성 정치인들의 성범죄가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여성 시장’ 필요성을 부각하는 태세다.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 21일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에서 한 ‘서울시장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란 주제 발표에서 “이번 선거는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발단이 됐기 때문에 여성을 시장 후보로 내는 것이 우리 당과 야권이 여성인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 전 시장은 서울시청 6층 시장실을 성폭력 대책 전담 사무실로 변경해 성범죄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외에도 서울시 고위공직자 사무실 벽의 유리화, 고위공직자 전담 성범죄 신고센터 설립 등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도 “박원순-오거돈-안희정-김종철-녹색당 사례 등으로 이어지는 좌파 지자체, 정당 등 정치권내 위력에 의한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겠다”며 여성 후보로서의 강점을 드러냈다. 조 구청장은 서초구에서 운영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미투직통센터’ 서울시로 확대·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 역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조사 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장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해 전권을 위임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한편 여권 후보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날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전임 시장의 성비위나 성범죄 대책 관련 언급은 없었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월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공식 출마 선언을 했다. ⓒ연합뉴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월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공식 출마 선언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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