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냐? 임성재냐?…이제 PGA 중계서도 행복한 고민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01 11:00
  • 호수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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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우, 4년 만에 세 번째 우승컵 안아…세계 무대에서 임성재와 ‘투톱’

1월25일 미국프로골프(PGA)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최종일 라운드. 대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킨타의 PGA 웨스트 스타디움 코스 16번홀(파5) 티박스로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김시우(26·CJ대한통운)는 힐끗 리더보드를 봤다. 먼저 경기를 끝낸 세계랭킹 10위 패트릭 캔틀레이(미국)가 이날 61타를 치며 22언더파로 단독 선두에 나섰기 때문이다. 1타 차로 뒤지고 있던 김시우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시우가 티샷한 볼은 무난하게 페어웨이에 올랐다. 역전을 노린 김시우는 과감한 모험을 택했다. 266야드 남은 거리에서 5번 우드를 잡고 세컨드 샷에서 바로 핀을 공략한 것이다. 1.5m만 왼쪽으로 흘렀으면 키보다 높은 벙커에 빠질 뻔했으나, 운 좋게도 그린에 올랐다. 이글 욕심을 냈으나, 버디에 만족하며 캔틀레이와 동타가 됐다.

이것이 강한 기운을 불어넣었던 걸까. 아일랜드 그린 17번홀(파3)에서 그는 ‘천금의 버디’를 잡으며 1타 차로 선두에 나섰다. 그리고 편안하게 마지막 18번홀(파4)을 파로 마치며 1타 차 우승을 확정했다. 김시우는 2017년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 이후 3년8개월 만에 정상에 올랐다. 우승상금 113만4000달러(약 12억5329만원)에 마스터스 출전권과 2년간 투어카드는 그에게 신축년 새해의 큰 선물이 됐다. 세계랭킹도 48위로 껑충 뛰며, 50위 이내에 주어지는 US오픈·디오픈 등 메이저대회와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등 특급 대회 출전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 또한 보너스다. 김시우의 이번 우승으로 한국 남자골프는 최경주(51·SK텔레콤)가 2002년 첫 우승한 이후 PGA 무대에서 18번째 우승컵을 안았다.

(왼쪽)김시우, 임성재ⓒ연합뉴스

고교 2년 때 곧바로 미국 투어에 뛰어들어

“최종일 경기를 앞두고 잠을 설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우승해 정말 행복하다. 무엇보다 이 골프장에 오면 항상 좋은 기억이 있다. 처음으로 PGA투어에 진출할 기회를 이 코스에서 얻었다. 17세에 이 코스에서 투어 퀄리파잉스쿨(Q스쿨)을 통과했다. 그래서 항상 이곳에 오면 자신감 있게 플레이를 했다. 이번 주에도 그때 기억을 살려 조금 더 편안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이런 좋은 기억 때문에 우승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김시우의 이번 우승은 큰 의미를 갖는다. 자신뿐 아니라 한국 남자선수들의 정상 도전 ‘불씨’를 살려냈다는 점에서다. 여자골프가 LPGA 무대를 평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남자골프는 지난해 3월 임성재(23·CJ대한통운)가 혼다 클래식에서 우승했을 뿐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김시우가 세계 골프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4년 전인 2017년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었다.

그는 국내 투어(KPGA)보다 미국을 먼저 노렸다. 6세 때 싱글의 실력을 갖고 있던 부친 김두영씨(66)를 따라 연습장에서 클럽을 잡은 것이 골프와의 인연이 됐다. 재능을 타고난 것일까. 주니어 시절 연습 삼아 출전한 대회에서 처음 우승한 뒤 연이어 우승 행진을 벌이던 그는 2007년 주니어상비군에 발탁된 뒤 국가상비군과 국가대표를 지내며 ‘꽃길’을 걸었다.

2011년 국가대표 시절 최경주(51·SK텔레콤)의 PGA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을 TV로 지켜보면서 그는 목표를 세계 무대로 돌렸다. 그리고 신성고 2학년이던 2012년 미국 PGA투어 퀄리파잉스쿨을 통과해 골프 역사상 최연소 데뷔 기록(17세 5개월 6일)도 남겼다. 하지만 김시우는 만 18세 이상만 정규 회원으로 인정하는 투어 규정에 따라 생일이 되기 전까지 투어카드를 받지 못해 오히려 슬럼프에 빠졌다. 2013년 고작 PGA투어 8개 대회에 나서 기권 한 번과 컷 탈락 일곱 번에 그치며 힘겹게 딴 투어카드를 날렸다. 그야말로 ‘멘붕’이 왔다. 처음으로 프로 세계가 ‘험난한 길’임을 실감한 것이다. 그나마 위안이 된 것은 CJ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돈 걱정을 하지 않고도 경기에만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부리그에서 보낸 인고의 3년이 값진 ‘약’ 돼

2부 격인 콘페리투어로 내려가서 3년간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80cm에 85kg의 탄탄한 체격에서 300야드 이상 날리는 장타력을 주무기로 ‘아메리칸 드림’에 다시 도전했다. 콘페리투어의 값진 경험은 ‘약(藥)’으로 작용했다.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투어 분위기는 물론 서로 다른 코스 스타일과 잔디를 공략하는 실전 감각을 조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7월 스톤브래이 클래식 우승에 이어 8월 센티넬오픈 준우승으로 상금랭킹 10위에 오르며 PGA투어 재입성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6년 윈덤챔피언십에서 생애 처음으로 정상에 올랐다. 만 21세 2개월 때였다.

그의 기본기에서 80%는 부친의 레슨 덕이다. 그러다가 스윙에 불안을 느낀 2017년,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위해 코치를 물색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코치였던 션 폴리를 새 스윙코치로 영입했다. 그동안 스윙을 교정하면서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김시우에게는 또 한 번의 모험이었지만 스윙에 큰 변화가 왔다. 백스윙 때 머리를 좀 더 고정하고, 하체를 많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상체의 큰 꼬임을 통해 강한 스윙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효과는 그해 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나타났다. 대회 최종일 3타를 줄여 합계 10언더파 278타를 쳐 공동 2위 이안 폴터(잉글랜드), 루이 우스트히즌(남아공)을 3타 차로 따돌리고 여유 있게 우승컵을 안았다. 21세 10개월 17일에 이뤄낸 두 번째 우승 타이틀이다. 세계 랭킹 1위 더스틴 존슨(미국)을 비롯해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제이슨 데이(호주), 조던 스피스(미국), 마쓰아먀 히데키(일본), 리키 파울러(미국) 등 내로라하는 최고의 골퍼들이 총출동한 대회에서 우승한 김시우가 월드스타로 발돋움한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아시아 선수 중 최초로 2018~19 시즌 신인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 단숨에 세계랭킹 17위로 PGA의 중심축이 된 임성재. 그리고 올 시즌 3승째를 획득한 김시우. 이제 국내 골프팬들은 PGA투어를 보면서 행복한 고민에 빠질 듯하다. 한국의 ’투톱‘ 김시우와 임성재가 우승 다툼을 펼치며, 둘 중 ‘누가 먼저 메이저 타이틀을 손에 쥘까’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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