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92%’ 서울시의회…성폭행 터져도 잔소리뿐이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1.02.15 14:00
  • 호수 163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의회, 조사권 갖고도 발동 안 해…“문제를 문제로 안 보니 해결 방법도 몰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사건에는 ‘전조 증상’이 있었다. 성추행 피해자인 비서 A씨가 이미 비서실 상급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것. 그런데 서울시를 감시해야 할 서울시의회는 해당 사건이 터졌을 때 견제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 일부 야당 의원이 일회성으로 질타한 게 전부였다. ‘여당이 장악한 서울시의회의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A씨가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아무개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건 지난해 4월14일. 4·15 총선 하루 전날 밤이다. A씨는 곧 정씨를 고소했고, 입건됐다는 소식이 4월23일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후 비서실에 대한 감사권을 지닌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가 4월28일 임시회를 열었다. 당시 이성배 서울시의원(국민의힘)이 고한석 당시 비서실장에게 사건에 관해 물었다. 아래는 당시 회의록 일부다.

 

이성배 의원 : 4월14일에 시청 직원들과 비서실 소속 직원들이 회식을 하고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알고 계시지요?

고한석 비서실장 : 네.

이성배 : 아니, 15일이 무슨 날입니까? 빨간 날이라고 이렇게 회식하신 겁니까? 회식은 누가 잡은 거예요, 이거를?

고한석 : 부서회식은 아닌 걸로 알고 있고요.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끼리 사적으로 만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중략)

이성배 : 술 취할 정도로 먹고 밤늦게까지 드시고 이것 어떻게 생각하세요. 변명의 여지가 있으십니까?

고한석 : 명백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성배 : 그리고 이게 언론에 난 건 또 언제 났습니까, 처음에 언론에 난 건?

고한석 : 4월23일로 알고 있습니다.

이성배 : 네, 그때 20일 지나서 났다고 저도 지금 자료에 나와 있는데 그러면 그동안에는 뭐 하신 겁니까. 14일에 이 사건이 났는데 약 일주일 정도를? 티 안 나게 하려고 감추신 거예요?

고한석 : 아닙니다. 피해자가 피해사건 발생 이후 경찰서에 고발은 했으나 다른 문제제기를 시 내부에서는 하지 않아서 시 내에서는 그거를 파악할 수 있는 어떤 정보나 계기가 없었습니다.

뒤이어 이성배 의원은 “각별히 신경 써서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 고 실장은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의원은 운영위 위원 13명 중 유일한 야당 소속이었다. 그 외에 당시 성폭행의 발단이 된 회식자리를 두고 의원들은 “코로나 사태에 사적 모임을 했다”(이영실 의원), “규정을 어기고 법인카드를 썼다”(노식래 의원) 등의 비판을 했다. 성폭행 의혹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 없이 변죽만 울린 셈이다.

2월3일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특별시의회 건물 전경ⓒ시사저널 박정훈

회식 성폭행 터졌는데 “법인카드 썼다” 타박

이성배 의원은 시사저널에 “운영위원들끼리 간담회를 할 때도 성폭행에 관해선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전했다. 심지어 “그때만 해도 알려진 게 거의 없었으니 ‘여성이 잘못했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의원도 더러 있었다”고 말했다.

운영위는 진상 규명 방법에 대해 더 이상 논의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정례회의 때도 성폭행 피의자 정씨에 대해 침묵했다. 6월정례회를 마지막으로 운영위 위원 구성은 모두 바뀌었다. 시의회 전반기 임기가 끝났기 때문이다. 이성배의원은 “절차에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실체적 진실을덮은 거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상임위원회가 나서기도 했다. 시의회의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해 4월24일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을 상대로 임시회를 열었다. A씨가 정씨를 고소한 바로 다음 날이다. 보건복지위에서 한 명뿐인 야당 소속 김소양 의원(국민의힘)은 “경찰의 수사 개시 통보 전에 왜 내부에서 재빠르게 조사 착수를 안 했나”라고 물었다. 송다영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수사 개시 통보가 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특별히 정보만 가지고는, 지라시 수준의 정보였기 때문에 그걸 갖고 인사 결정까지 하기에는 좀…”이라며 말을 맺지 않았다.

이어진 질의 과정에서 지적은 계속됐다. “서울시장이 직속 비서실에서 터진 사건에 대해 다른 사람 통해 사과하는 건 부적절하다”(김화숙 의원), “비서실 직원 중 아무도 성인지 교육을 받지 않았다”(이영실 의원) 등이다. 그러나 진상 규명이나 개선을 위한 안건을 따로 올리지 않았다. 김소양 의원은 “사실상 의회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방법이 없진 않다. 지방의회는 감사 청구를 통해 지방정부를 견제할 권한을 갖고 있다. 행정사무감사는 매년 1회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그 외에 특정 사안이 있으면 ‘행정사무조사 요구안’을 발의할 수 있다. 이 경우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서울시의회 총 의원 109명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은 101명이다. 92.6%다. 여당이 절대 다수인 상황에서 시의회에 견제 역할을 바라는 건 속절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10대 시의회에서 조사 요구안이 통과된 사례는 전반기 2년 동안 한 건에 불과하다.

지난해 11월 정기 감사 때도 성추문과 관해선 별다른 지적이 없었다. ‘2020년도 서울시의회 행정사무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운영위는 시정·처리 요구사항 54건과 건의사항 35건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성비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성배 서울시의원(국민의힘)ⓒ서울시의회 제공

1/3 동의 없인 조사 못 해…“할 수 있는 게 없다”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은 “시의회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다 보니 그 해결 방법도 잘 모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하다못해 성명이라도 낼 수 있었겠지만, 민주당 시의원들은 중앙당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였다”고 전했다. 권 의원은 시의회에서 홀로 진보 정당 의석을 지키고 있다.

민주당 내에선 그동안 피해자 A씨를 ‘피해호소인’으로 불러왔다. 피해 사실을 확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시의회 전반기 운영위원장을 맡았던 민주당 소속 서윤기 서울시의원도 A씨와 관련해 “시장께 피해를 호소하는 당사자의 아픔에도 깊은 위로를 드린다”고 발언했다. 지난해 7월14일 후반기 임시회 개회식 때다.

이와 같은 생경한 표현은 올 1월2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인정한 뒤에야 사라졌다. 다음 날 민주당은 논평에서 ‘피해자’란 표현을 쓰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서윤기 의원은 시사저널에 “민감한 부분이라 인터뷰가 조심스럽다”며 일절답변을 거부했다.

시의회가 침묵하는 사이 여의도 국회가 움직였다. 지난해 4월27일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곽상도 국회의원을 필두로 진상조사팀을 꾸렸다. 조사 대상에는 정씨 성폭행 사건을 비롯해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태 등이 포함됐다. 이후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 터지자, 곽 의원은 “(정씨 사건에 대한) 묵살이 또 다른 성폭력을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오는 2월22일 서울시의회의 2021년 첫 임시회가 열린다. 그간 서울시장 비서실을 둘러싼 성비위를 따질 근거는 갖춰졌다. 서울중앙지법은 1월14일 정씨의 준강간치상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부는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행도 사실이라고 판시했다. 국가인권위도 1월25일 박 전 시장의 언동을 성희롱으로 인정했다.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의회 차원에서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란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기사·회의록·판결문 통해 재구성한 비서실 성폭행 사건 전말

사건은 4·15 총선 하루 전인 작년 4월14일 밤에 일어났다. 정씨와 A씨, 전 서울시장 비서 등 4명이 술자리를 가졌다. 회식이 끝난 오후 11시경 A씨는 술에 취했다. 정씨는 A씨를 데리고 서울의 한 모텔로 갔다. 정씨는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A씨에게 성폭행을 가했다.

A씨는 정씨를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사건이 대중에게 알려진 건 발생 9일 뒤인 4월23일 오후 4시45분, 언론 보도를 통해서다. 3시간쯤 뒤인 오후 7시30분경 서울시는 경찰로부터 수사 개시 통보를 받았다. 정씨는 당일 휴가를 쓰고 조퇴한 상태였다. 서울시는 정씨를 직무에서 배제시켰고, 다음 날 직위해제 조치했다. 그해 9월 정씨는 불구속 기소됐다.

사건 이후 A씨는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다. 처음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사건 전부터 박원순 전 시장에게 성추행을 당해 왔지만, 정신과적 진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 A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며 신뢰했던 정씨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정씨 자녀의 생일도 챙겨줄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공판이 열리자 정씨 측은 “A씨 몸만 만졌다”는 취지로 호소했다. 앞서 A씨 옷에서 정씨의 정액은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옷이 침대 밖에 떨어져 있었고, 그에 대한 경찰의 감정도 이틀 뒤에나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 A씨가 드문드문 기억나는 장면을 진술한 부분이 신빙성 있다고 봤다. 서울시는 정씨에 대한 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다. 내부 규칙에 따라 기소된 성폭력 가해 직원은 최고 파면까지 당할 수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