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시장은 힘들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2.22 09:00
  • 호수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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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아차리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대중에게 낯익은 누군가가 어느 전통시장에서 어묵이나 떡볶이 같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선거 때가 되면 후보자들은 요즘 자주 쓰이는 말인 ‘복붙(복사해서 붙이기)’이라도 한 듯 너도나도 시장을 찾아 ‘그림이 되는’ 사진·영상을 찍느라 법석을 떤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당 관계자나 지지자 등이 구름처럼 몰린다. 무언가를 먹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벗어야 하고, 벗은 채로 말을 하면 비말이 튀기 마련. 코로나19 상황에 미루어 봐도 적절치 않은 행동의 연속이다.

그들과 마주친 시장 사람들은 또 어떨까. 겉으로는 웃으며 반기는 표정인데 속마음도 과연 같을까. 그들과 동행했던 취재기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왜 꼭 선거 때만 찾아와서 이러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장사에 방해만 될 뿐이다”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기자들은 말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괜찮은 그림 하나 만들려고 또다시 시장으로 간다. 누가 뭐라 하든 말든 결사적으로 몰려간다. 그들이 우르르 왔다 우르르 빠져나간 그 자리에는 변한 것 없이 고단한 시장 사람들의 일상만 덩그러니 남을 뿐이다.

그들이 굳이 시장을 찾아가 부산을 떠는 이유는 분명하다. 유권자의 눈길을 끌면서 이른바 ‘서민 코스프레’를 하기에 그만큼 안성맞춤인 장소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을 찾아서 먹고, 시장 사람들과 밀착해 대화하면 ‘서민 친화적’ 이미지가 강해질 수 있다는 단순한 계산이 거기 담겨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 찍기에 집중한 그들의 시장 나들이가 시장 사람들의 현실이나 보통 사람들의 고민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어묵을 사 먹고, 요식행위처럼 악수하며 말 몇 마디 나눌 바에는 차라리 시장 사람들과 따로 만나 좀 더 속 깊은 대화를 하는 것이 훨씬 유용하고 바람직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이미지 정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뿐더러, 이미 눈높이가 올라 있는 유권자들에게 오히려 무례를 범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처럼 고리타분한 방식이 요즘 시기에도 통할 것이라고 고집한다면 그 자체로 2021년 선거의 후보자로서 부적격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여야 주자들이 2월10일 오전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왼쪽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영선, 우상호, 나경원, 오세훈, 안철수, 금태섭 예비후보 ⓒ 연합뉴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여야 주자들이 2월10일 오전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왼쪽 윗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영선, 우상호, 나경원, 오세훈, 안철수, 금태섭 예비후보 ⓒ 연합뉴스

4월에 치러질 두 대도시의 시장 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들 간 경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디에서도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공약다운 공약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로 자기가 가장 적합한 후보라는 말만 내세울 뿐, 두 지역의 미래 청사진을 제대로 펼쳐내는 후보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각 당이 명운을 걸다시피 하며 매달리고 있지만, 명확히 말해 이번 보선은 서울과 부산의 행정을 떠맡을 지자체장을 뽑는 선거다. 누군가에게 대권을 위한 발판을 만들어주거나 당의 체면치레를 하기 위해 치러지는 선거가 아니라는 얘기다. 

정당들은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 다음 대선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겠지만 그건 그들만의 바람일 뿐이다. 유권자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개선해 나갈 지혜와 능력을 지닌 헌신적 행정가를 원한다. ‘도시를 위한 행정’이 아닌 ‘도시를 이용한 정치’를 앞세우는 등 젯밥에만 눈독을 들이는 후보자라면 지금이라도 선거판에서 발을 빼는 것이 낫다. ‘대권 그림’을 만들기 위해 출마한 사람이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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